'설마..?'가 문제다 - 임진왜란, 6,25 그리고 현 북핵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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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피터 작성일15-05-26 12:18 조회2,3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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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가 문제다 - 임진왜란, 6,25전쟁 그리고 현 북핵 위협
김피터 박사
#.1.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류성룡이 썼다는 ’징비록‘을 사극화한 드라마를 실감있게 보았다. 일본열도 통일을 이룩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정벌하고 명(중국)으로 처들어 가려는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과거의 사무라이 중심체제에서, 군대를 대규모 집단 보병 전투부대로 편성하고, 서양에서 들여온 총포로 무장을 시켰다. 16만 병력으로 조선 정벌에 나설 계획이다. 대마도에 전진 기지가 구축되고,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가 부산항 진격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이런 다급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러나 조선 정부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져, 당파싸움만 계속하고 있었다. 조정대신들은 일본의 침공 위협에 대해서도 당파간에 서로 다른 해석과 정책을 내놓고 있었다. 일본에 갔던 ‘통신사’ 대표들도 당파에 따라 서로 정반대의 다른 보고를 내놓았다.
선조왕은 동인파 김성일의 ‘왜의 침공은 없을 것이다’라는 보고를 받아드렸다. 왕과 대신들은 그렇게 믿고 싶었을것이다. 그래서 ‘왜난’은 없다. 민심이 동요되지 않도록 하라‘라는 어명이 내려기까지 했다. 가까이 있는 대마도에 첩자 몇 명만 보내도 일본의 침공이 임박했음을 즉시 간파할수 있었을텐데, ’정보‘와 ’안보‘를 무시했던 조선정부는 “전쟁은 없다. 평화가 계속될 것이다”라는 정책을 내걸고, 아무런 국가 방위에 대비를 하지 않고 ’낮잠‘만 자고 있었던 셈이다. 1592년 5월 23일, 드디어 유키나가가 이끄는 일본의 선봉부대가 부산진을 향해 물밀 듯이 쳐들어왔다. 이후 조선반도는 초토화되었다,
#.2. 그로부터 350여년이 지난 1950년, 6,25 전쟁때의 상황은 어땠었는가? 북한의 김일성은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모택동의 승인과 지원을 약속받고, 남침전쟁 준비를 치밀하게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약 20만의 병력을 전쟁수행을 위한 조직으로 완료하고 맹훈련 및 침공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중공군내의 조선계 장병을 지원받아 제 5, 6사단을 편성하고 최전방에 배치시켰다. 그들은 항일전쟁의 전투경험이 있는 유능한 전투병들이었다. 3,8선 인근의 주민들을 모두 철수시켰다. 5월초에는 전투부대들이 3,8선에 전면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런 위급상황이 닥처오고 있었는데 남한의 지도부나 군수뇌부는 그에 대한 정보도 없었고,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은채, 무기력하게 ‘잠’만 자고 있었다. 전쟁 직전인데, 최전방 사단장급 지휘관들을 대거 교체했다. 새로 부임한 그들은 현황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비상경계’령도 풀어, 6월 23일에는 장병의 3분의 1 이상이 외출, 외박을 나가 각부대는 거의 텅비어 있었다. 전쟁 전날(24일밤)에는 육본 장교클럽에서 댄스파티가 열려 전방 지휘관을 포함한 지휘부 장교들 거의 전원이 술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 중앙일보에 연재중인 JP(김종필, 당시 육본 정보참모부, 북한담당 정보장교)의 중언에 의하면, 북한의 남침 임박 징후들을 발견하고, 남침 전면전이 임박했다는 ‘종합 적정판단서’를 제출했었다고 한다. 또한 24일 아침에는 긴급 참모회의를 열게해서 북한군의 심상치않은 동향 및 남침 임박 상황에 대하여 브리핑를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참모들은 ‘설마 북한군이 처들어 올까? 국지 도발은 있어도 전면 침공은 없을것이다’라며 그 모든 상황보고에 대하여 외면하고 지휘부도 그 보고를 무시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설마 북한군이 전면전으로 처들어 올리는 없다’는 ‘맹신’이 그때 국가 지도층이나 군 지휘부에 팽배해 있었다고 JP는 증언하고 있다.
드디어 25일 새벽, 북한군은 탱크 240여대를 앞세우고 병력 약 20만으로 남침 전면전에 돌입했다. 그런데도, 그날 오후 2시 대통령이 주재한 ‘각의’에서 채병덕 참모총장은 “전면전 공격은 아닌 것 같다. 우리 군은 적을 반드시 격퇴시킬것이다‘라는 허황된 보고를 하였다. 전적인 ’정보부재‘, 무사안일, 무방비의 리더쉽, 정치권의 정쟁, 전쟁은 없을것이라는 평화에 대한 맹신 등, 6,25 직전의 한국 상황은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 정부 상황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3. 그러면 현재, 북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한민국의 대비 상황은 어떤가? 북한은 이미 핵의 소형화를 이룩했고, 미사일에 장착 발사할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잠수함에서 발사할수 있는 탄도 미사일, SLBM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대한민국의 대비 상황은 어떤가? ‘원점타격’같은 실현 불가능한 큰소리나 하고 있지 정작 북의 핵공격을 막을수 있는 철저한 방어 시스템이나 태세는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 방한했던 캐리 미 국무장관이 ‘사드’ 배치 문제를 언급했다고 해서 언론 매체들이 온통 난리를 피기도 했다.
누구를 위해, 또 무엇때문에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가? 지금 한반도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것은 중국과 북한이다. 중국이 한국의 안보를 보장해 주는가? 물론 천문학적인 비용도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국가방위’ 아니겠는가? 한국 정부에서도 ‘사드’배치가 북의 핵 및 미사일을 방어하는데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지 않는가?
북 잠수함의 SLBM 공격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북을 능가하는 잠수함 전력을 극대화시켜야 하는데도 정치권 및 지휘부는 아무것도 하지않고 뒷짐만 지고 있다. 국가 예산이 부족하다면 국민들의 자발적 모금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재벌들도 나서서 ‘방위성금’을 헌금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미일 양국의 군사 협력체제를 강화시킨 ‘개정된 미일방위협력지침’과 이에 연결되는 일본의 ‘집단자위권’에 대해서도 왜 우려 내지 반대를 하는가? 한미방위조약에 연결되는 미일 군사 밀착은 한반도 유사시 한국측에게 오히려 큰 유익이 될 것이다.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 ‘감정’적으로만 내닫지 말고, 철저한 한미일 공조 내지 긴밀한 협력으로 북핵 및 미사일 위협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4. 가장 중요한것은 ‘설마 북한이 동족인 남한을 향해 핵공격이나 SLBM 발사를 하겠는가?' 라는 막연한 ’믿음‘이 남한 국민이나 지도부 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것이다.
‘임짐왜란때는 ’설마 야만국 왜가 처들어 오겠는가?‘ 하다가 완전히 망했고, 625 전쟁때는 ’설마 북한군이 전면전으로 침공해 오겠는가‘ 하다가, 처참한 참화를 당했다. 지금은 어떤가? ”설마 북한이 동족인 남한을 향해 핵공격을 하겠는가?“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다가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무서운 비극적 운명에 처해질수도 있다는것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설마’가 사람잡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역사적으로 그 ’설마‘는 언제나 현실로 닥쳐온적이 많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을 크게 외쳤었다. 만반의 국가방위 대책을 마련하고, ‘설마’가 아니라, ‘만일’에 대비하는 철저하고도 완벽한 ‘대비책’을 빈틈없이 당장 강구해 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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