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봉욱(鄭 鳳旭)'장군님을 本 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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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inf247661 작성일15-01-31 16:18 조회3,280회 댓글6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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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군대! ,,. '백 인엽 - 한 신 - 채 명신 - 정 봉욱 - 박 정인'장군님의 정신을 본 받아야! ,,.
특히, '鄭 鳳郁(정 봉욱') 少將님을 본 받아야!
1950년 경북 다부동 전투 시, 무자비하고도 불합리한 북괴군 독전에 항의,
북괴 제13보병사단 포병 대대장 '정 봉욱' 中佐(중좌)' - 소령보다 높고 중령보다 낮은
북괴군 영관 장교 게급 - 는 부하들을 인솔, 미제8군에 집단 귀순! ,,.
,
,, ,,, ,,. 보병 제5사단장 '박 정희'준장 밑에서 포병참모로도 근무했고, ,,.
{'박 정희'는 사단장을 2회 역임; 제5사단(열쇄부대), 제7사단(칠성부대)}
이후, 1961.5.16 군사 혁명 발발 당시에는 제1야전군 군사령부 포병참모 {대령}으로 혁명 가담!
그 이전, 1958년도 경에는, 제7사단장 - 박 정희 - 백 남대 - 정 승화 - 정 봉욱 - 이 재전 - 차 규헌 - 등으로 제7사단의 명맥을 이음.
1967년 후반 ~ 1969년 초반 어간에, 제7사단장 재직 시, 북괴군 13여명이
군사 분계선인 江原道 화천 북방; 江原道 금성군(金城郡) 금성천 MDL{군사 분계선}을
불법 도보로 도하, 아 제7사단지역으로 도발해 들어오자;
사단 직할 155mm HOW 를 해당 지점에 포격토록 사단포병단장{대령}에게
명령했으나, 포병단장은 "정말 쏩니까? 아니, 쏘면 어떻게 합니까? ,,." 주저, 불응하자;
'정 봉욱'사단장님게서는 즉시 師團 憲兵 大隊長에게 명령, 사단포병단장을 체포.구금케 하고는
직접 사단 포병 155mm HOW 대대 FDC 로 Jeep를 달려, 몸소 사격 제원을 산출,
해당 지점에 155mm HOW를 포격케 하고는! ,,.
불법 남하, 월경, 도발한 북괴군 8명을 砲殺(포살) 확인, 나머지는 북상 도주!
1주일 뒤, 유공자 포상식을 화천군 군수, 경찰서장, 각 긱관장들을 소집, 사단 연병장에서
훈장, 포장, 표창 수여식을 사단배속 미 군사고문관단 참석하에 성대히 거행!
휴전 이후, 비무장지대에 105 mm HOW도 아닌, 155mm HOW 를 포격, 불법 월경
남하, 도발한 북괴군을 포살, 격퇴시킨 건 이게 처음이었다 함! ,,.
북괴는 동료 시체도 유기하고 혼비 백산, 북상 도주 후, 일절 대응 못.않함! ,,.!
{'七星 略史'에서}
'정 봉욱'소장님은 그 뒤, 임기를 이미 약 2년 넘게 한 상태라,
교대 시기도 되었었지만, 미군군사고문관단{대령}도 크게 놀라,,.
{당시는 사단에도 미군군사고문관단이 배속되어져 있었음}
이어서 육군보병학교에서의 소위 양성 배출이 너무 업무 과중하여, 새로 소위 양성학교인
제3사관학교를 창설, 업무를 인계하자; 초대 학교장으로 경북 영천 충성대로 영전 전속하심!
{사단장에서 소위 양성하는 학교장으로의 전속은 영전임. 특히 병과학교장은 큰 영전. 보병학교장}
창설과정에서 많은 비화가 있었다 함! ,,.
그 뒤, 3사교장에서 전남 상무대 육군포병학교장으로 영전성 전속이 거론되어졌지만! ,,.
당시 '박'통 시절에 간신뱅이{붉죽죽한 '김 장수.김 관진'을 양성한 롬들?}로부터
온갖 벼라 별 모함을 받은 바되어져, 상무대 포병교장을 못하시고 약간 등급이 낮은{당시로서는}
육군제2훈련소{연무대} 訓鍊所 所長으로 전속! ,,.
거기서도 아주 일을 잘 하셨다함!
그 뒤, 계속 모함을 받으시고는 ,,. 끝내 예편하심! ,,. 애석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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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a.com/docs/magazine/shin/2003/07/24/200307240500031/200307240500031_1.html : '정 봉욱'장군님의 말씀 3가지!
http://www.badkiller.kr/bbs/board.php?bo_table=board01&wr_id=287284 : 부추연, '정 봉욱'평가
http://bigfoot9.com/article/345950925497824_699039616855618 : 정 봉욱 소장님 사진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3093&yy=2014#axzz3BMZQrKRL : 다부동 전투 고비, '정 봉욱' 북괴 포병 중좌
http://mr2.co.kr/won/link/?item_no=794793 : 多富洞의 bowling alley{작은 나무공 골목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ulkae&logNo=10168678410 : '鄭 鳳旭'장군님
댓글목록
최성령님의 댓글
최성령 작성일
제가 논산 신병훈련소 시절에
그가 훈련소장이었습니다.
벌써 소문이 돌아 그가 귀순한 장군이라고 했습니다.
훈련소에 많은 것들을 개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밀하게 구타도 있었고
배도 고팠으며
돈을 걷어 내무반장에게 상납도 했습니다.
그러나 개혁의 물꼬를 튼 것은 확실합니다.
그가 아니었으면 개혁이 상당시일 늦었을 것입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정 봉욱'장군님은 '채 명신'장군님이 제2군사령관 하실 적에 제2군 예하 교육사령부{CAC 라고도 호칭, 중장} 휘하의 충남 논산 '제2훈련소{연무대}' 훈련소 소장임을 지내시다가,,.
예전엔 제2훈련소의 位相이 육군보병학교보다도 높아 심지어는 군단장을 마친 中將이 T/O였는데, 점차 소장으로 굳어졌음. 그러나 워낙 방대한 훈련연대들 - 23,25,26,27,28,19,30연대; 교도연대, 수용연대, 보충대, 배출대대, 소본부직할대, 군수지원단 등, 군단 규모이나, 훈련병들인지라,,.
이렇듯 광활한 훈련장등, 부대 관리가 어렵고, 전통적으로 基幹兵(기간병), 조교(助敎)등, 부정.부패가 심하여, 일부러 호된 기강을 바로 잡으면서 강한 전투병 육성에는 최적임자로 여겨져 練武臺 ㅡ 제2훈련소 所長으로 가셨,,.
원래는 전남 상무대 육군포병학교장으로 보직될 예정이었는데, 계급이 대개 준장(☆)이 부임하여 소장(☆☆)으로 진급, 전방 사단장으로 떠나거나, 예편하는 직책인데도, 일부러 '박'통이 포병학교장으로 보직하려 했던 건, 포병 육성이 매우 중요시되는 지라,,. 그러나 간신뱅이들이 워낙 질투하면서 훼방 급, 리간질 등 모함! ,,,. 그래서 제2훈련소로 보직되었는데,,. 아마 잘 되었다면 다시 이번에는 육군보병학교장 {☆☆ 원래부터 사단장 마친 2star가 늘 최고 영전으로 보직. 보병교장 마치면 바로 군단장을 ☆☆☆으로 진급과 동시 군단장으로 진출하는 유일한 학교장. 매우 업무가 벅찬,,.} 으로 임명되셨었을런지도 모름! ,,. '박 정희' 부근에 빨갱이, 수상한 간신뱅이들이 매우 많았다고 여겨짐. 특히 기무사, 헌병대,,. 빠드~득!
거촌님의 댓글
거촌 작성일정봉욱 장군의 기사를 보니 요즘 군의 개판을 보면서 엣기억이 새롭다 .정봉욱 장군은 부평 33예비사단장으로 있으셨다. 정봉욱 사단장이 부임하면서 전방 사단 못지 않게 군기가 철저하여제대병들에게 미인하다며 기간사병들이 불만을 토하는 것을 들었다. 당시 후방 예비사단들은 군기가 개판이었섰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거촌'님! 응답글에 고맙읍니다. '정 봉욱'장군님께서 경기도 부평, 제33사단{지금은 해체되어진}에서 사단자을 복무하신 적도 있었군요? ,,. 제33사단이면 아마 한강 이남이니깐, 당시로는 제1야전군 소속은 아니고, 제2군 휘하의 제6관구사령부{예전의 후방 제2군에 있는, 야전군의 군단에 대응되는 규모의 호칭으로, 관할 지역의 예비사단들을 지휘.구처함,. 지금은 그 관구사령부를 군단이라도 호칭합니다, '노 태우' 때부터,,.}였겠군요. ,,. 아뭏튼, '정 봉욱'장군님은 연령으로나, 장교 임관으로나 육사# 5기보다 더 빠르다고 봐야,,. 아마 북한군 장교 임관으로 볼 때, 육사 # 2기 쯤 보다도 빠를 겁니다? ,,. 각설코요; 시스템 클럽 고문으로 모시는 방안을 고려해 볾은 어떨가를 생각해 봅ㄴ이다. 정서로보나 기타 여러면에서 '채 명신'장군님과도 맞으니,,. 고맙읍니다. 정보! ^*^ 자주 뵙기를 희망합니다. 여불비례, 총총.
송석참숱님의 댓글
송석참숱 작성일
'백 인엽 - 한 신 - 채 명신 - 정 봉욱 - 박 정인'장군님 들은 장군중에서도 뛰어난 장군이셨다.
위두분은 아니지만 채명신 정봉욱 박정인 세분 장군은 애석하게도 조기퇴역 하시게된 이면이 대단히
한국적이란데서 가슴 아프다.
많이 유명하진 안으나 "장보고 이후의 한국역사는 인물훼손의 역사였다"는 함석헌 선생의 개탄의 말씀이
지금도 계속 맞아들어가는 것은 사촌이 땅을사면 배아파 하는 사람들로인한 부끄럽고 속상하는 일이다.
만약에지만 만약에 박정인장군 뜻대로 박정인 장군이 맹호사단에 가셨거나 정봉욱 장군이 가셨으면
안케패스 전투를 그렇게 부끄러운 승리를 하지는 않았을거다 라 생각한다.
지금도 노익장의 애국일정을 소화하시는 박정인 정봉욱 두분 노장군님이 우리곁에 살아 계심을 감사하며
계속 건승하심을 축원합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 '송석 참숯'님의 언급, 평가는 늘 급소를 찌르십니다! ,,. 제가 일일히 응답은 못드려 죄송합니다만,,. ^*^
육사# 3기로 특무대장 '김 창룡'중장님과 동기생이신 '최 세인'대장님도 청렴하시죠. ,,. 1961.5.16 군사혁명 발발 후, 충청북도 도지사 그 시절에 일화는 민간 공무원들이 얼마나 부패했었는지를 가늠케 하죠. 제가 구 자유게시판 휴게실에 썼는데 ,,. 충북도지사 마치시고, 민정 이양후, 군부에 복귀, 제5군단장?, 육사교 학교장, 제1군사ㅑ령관을 지내시다가, 1973.7.15일 부로 제5군단 이서 지역을 새로 창설되ㅐ는 제3야전군{초대 제3군사령관, 중장 '이 세호' 육사교# 2기생}에 분가시켜 주신 분이시죠! ,,. 저는 당시 제5군단 제3사단 제22ㅇ련대 제3대대 제10중대장으로 강원도 금화 육단리에서 제2군단 제15사단과 접하고 있었는데, 최후의 제1군 마지막 FWEA 소총중대장이자 최초의 제3군 최 우측 FEBA 소총중대장이었던 셈! ,,. 그 ㅔ 뜨는 별들이 참으로 엄청났었죠. GOP 협조점 및 FEBA 협조점에 모든 짛휘관들은 모두 모였었는깐요! ,,. 여불비례,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