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에 대한 패배적인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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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VERGREEN 작성일14-08-31 13:27 조회2,39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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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 다수는 일본의 식민사관과 북한의 대남 역사 심리전술에 부화뇌동 된 자신을 모르고 삼국통일의 주연이 신라인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신라를 당이라는 외세를 끌어들인 민족 반역자로 몰아세우며 북쪽 고구려 형님(지금 북한)이 통일의 주체가 못 되어 국토마저 좁아졌다고 푸념을 하는 그들이 무슨 역사에 대한 고찰력이 있겠는가.
그들은 현대판 려당 연합(중공, 북조선)의 6.25 남침 정당성과 결코 포기하지 않는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에 간접적인 동조를 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역적 불만에 사로잡힌 호남인들과 적화에 실패한 북조선이 신라에 패망한 옛 백제와 고구려인의 심정으로 편협한 사고를 드러내고 있는 비굴한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다. 영토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 모두 일제가 왜곡 조작한 역사관으로 공부했던 교육자들로 부터 가르침을 받아 왔으니 말이다. 지금은 좌익이 교육계를 일사분란하게 장악하고 있으니 역사는 더욱 묻힐 것이다. 언젠가 생을 바쳐 연구한 재야학자들의 먼지에 쌓인 다양한 역사책을 읽어 볼 날이 오면 왜곡 된 진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디 우리역사의 사필귀정을 빌어마지 않는다.
통일신라는 당나라까지 물리쳐 당의 땅까지 노획물로 취했으니 원래의 삼국보다 더 큰 영토를 가졌던 대국이었다. 실상 당의 영토는 통일신라의 반 토막도 되지 않았다. 당이 세계의 대제국이라는 말은 헛소리다. 중국의 사대사관에 속지 말고 일본의 식민사관에 속지마라. 역사에 있어서 그들은 한 통속이다.
당시 일본은 한반도 남부 도래인들(신라, 가야, 백제)의 정권이며 그 시기에는 백제계가 쥐고 있었다.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그 시절에 김춘추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백제를 치는 연합군을 결성하자는 외교 사절로 일본에 건너갔다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밤을 도와 도망쳐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다. 김춘추의 삼국통일에 대한 결의는 백제에 죽임을 당한 딸의 복수심으로 더욱 박차를 가하였던 것이다.
역으로 고구려가 통일하였다면 전쟁에 진 신라와 백제의 부흥군은 일본과 연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와 원수지간인 당도 일본이 주도하는 이 전쟁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고구려와 얼마나 싸워왔는데 죽 쒀서 개주는 꼴을 보고만 있겠는가? 결국 4개국 연합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당시에 나라 이름도 없었던 일본은 도래인 들의 피비린내 나는 정권 쟁탈 각축전으로 제대로 국가의 틀도 잡히지 않은 실정이었기에 정권 실세가 백제 의자왕의 여동생, 조카들이라 의욕은 앞섰으나 힘은 약했다. (실제 일본은 나당 연합군에 패망한 백제를 구하러 왔다가 대패하였다) 강국이 아닌 일본은 당과 연합 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앞서 신라, 백제와의 전쟁에서 기력을 소진한 고구려는 4개국연합에 멸망할 확률은 100%다(고구려가 내분으로 분열된 상태에서 나당 연합군에 패망한 사실을 상기하자)
전쟁이 끝나면 당과 일은 새 국가를 세울 때까지 지켜 준다는 명분으로 떠나지 않고 삼국의 땅을 운영하려 들 것이 뻔하다. 실제 ‘나당 연합군’이 승리한 후 당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100여 년 전 구 한 전, 후 무렵 변란마다 개입했던 청과 일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힘 있는 나라가 도와주고 순순히 물러나는 일은 없었다. 요즘 같은 열린 세계화의 시대라도 동북아의 문제아들 러시아, 중국, 일본을 보면 답이 나온다.
4개국 연합군이 승전하면 그 다음 순서는 백제와 신라가 새로 출범 할 신생 통일국가의 자치권을 거머쥐려고 당과 일본을 등에 업고 치열한 로비와 박 터지는 세력 다툼을 전개하든지 영토 분할에 촉각을 곤두세우겠지만 그것은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마치 청, 일을 뒤에 두고 대원군과 민비가 정권 암투를 벌이던 꼴과 같고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을 뒤에 두고 남북이 싸운 꼴이나 같을 것이다. (아~ 우리의 운명은 이래나 저래나 이때나 저때나 같은 모습이란 말인가?)
전쟁으로 패권을 거머쥔 승전국 당과 일은 타고 나기를 신사가 아닌 족속들인데 “아나 니꺼 여기 있다”하며 순순히 돌려주겠는가? 차라리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지. 결국 주객이 전도되어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까지 더불어 지하 반군 세력이 될 것이다. 1300여 년 전의 레지스탕스? 유엔군이 없는 시대라 역사상 그리되면 흡수 소멸하거나 잘 되면 변방의 소수민족으로 남게 된다.
고구려를 숭배하는 자들이여! 논리의 비약이라고 말하지 말라. 예나 지금이나 약육강식은 진리이며 전쟁의 명분은 거기서 거기다. 어디서 애틋한 민족혼이 있더냐? 가장 큰 적은 언제나 같은 계열의 종이었고 제거해야 될 걸림돌은 형제였다. 후대에 와서 같은 민족이라고 그 종을 정리하지만 그때는 서로가 이 세상에서 존재해서는 안 될 철천지원수였을 뿐이다.
일부 지역민들의 오판은 자신들의 조상은 옛적 신라의 삼국통일로 인해 나라를 잃게 된 한 맺힌 백성이었으며 자신들은 그 조상들의 후예로 130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그 자리에서 대물림을 하면서 살아오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다 저 멀리서 온 앵글로 족과 색슨 족의 침범으로 영국 땅의 토종인 켄트 족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쪽으로 대부분 건너갔으며 일부는 도버해협을 건너 지금의 프랑스 땅으로 독일 땅으로 건너갔다. 그러니 백제의 혈통을 찾으려거든 일본과 중국을 기웃거려야 한다. 귀족이나 백제 난민은 멸망 전, 후 2차에 걸쳐 일본으로 대거 건너갔고 왕손과 또 다른 귀족들도 수많은 백성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 그들이 일본의 역사책을 만들었고 한민족에서 벗어나려 지금도 왜곡 교육을 시키는 중이다.
지금과는 천양지차가 나는 당시의 인구수를 생각해보면 백제라는 존재는 거의 말살 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아무리 일정 때 못쓰던 대규모 수초지역을 대단위로 개간하였다지만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호남은 한반도 최대의 평야이고 곡창지대다. 그렇다면 그 비워있는 곡창지대로 흉년에 시달리던 신라인들이 이동 할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삼국통일 후 20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경북 상주 출신 신라장군 견훤이 호남에서 후백제를 세울 때 나라의 기반인 백성이 모자라 부자지간에 원수가 되면서까지 아버지 아자개의 백성인 상주 민과 부속 지역민들을 옛 백제 땅으로 대거 이동 시켜 나라를 세웠었다. 그러니 토박이 백제백성을 찾아보기란 꽁보리밥에서 쌀알 찾기 일 것이다.
태어난 고장의 애향심으로 역사를 부정하지마라. 전라도나 충청도가 고향이라서 자기가 백제의 후손이라고 자부하는 사람 중에 김 씨와 박 씨와 석昔 씨는 더욱 입을 다물어야 한다. 신라의 왕손이며 대표 성씨가 김, 박, 석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이昔씨가 희성이 되어 있는 것은 여러 설이 있다. 삼국통일 전쟁 당시 신라 김씨 일가에게 멸족이 되었다는 설과 고려인이 예맥濊貊족 석씨가 왕이었던 것을 감추려 濊예에서 소리나는 昔(예, 석)자로 만들어 귀해진 것이라는 설이다)
고대의 역사란 그늘에 가리거나 꼬여있는 부분이 많지만 삼국시대는 5천년 역사에서 얼마 멀지도 않은 시대인데 엉터리 타임머신을 타고 잘못 배운 역사관으로 1300여 년 전의 사건을 북한의 입장에서나 전라도의 입장에서 또는 신라를 미워한 일본의 입장에서 고구려가 통일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신라와 경상도를 증오하는 고구려 숭배자들이여! 김일성도 김 씨고 어쨌든 김대중도 김 씨다. 그들의 조상은 바로 경상도 땅의 신라인이었다. 아참! 박지원이의 조상도 신라인이었다. 호남에 사는 박씨들은 분리 독립을 원하였는지 여기 저기 호남 박씨를 만드는 안간힘을 썼지만 그래봤자 그 뿌리는 같으니 어디 실컷 이들부터 물어뜯어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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