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대부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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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리true 작성일17-05-28 21:07 조회2,579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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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브레진스키(1928.3.28.~2017.5.28. 폴란드) 사망
2017-05-28 세계일보
● 카터 -백악관 안보보좌관 - 對 소련 강경책 - 힘의 외교 주도
● 한국 내정간섭 : DJ 사형땐 北에만 혜택? = 감형 결정
1970년대 지미 카터의 외교브레인으로서 동서 데탕트(미국/소련을 중심으로 한 긴장완화) 기류가 강화되던 시대에 대소련 강공책을 주도해 ‘공세적 현실주의자’로 평가받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6일 삶을 마감했다. 향년 89세.
브레진스키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미국의 3대 외교 거물로 꼽힌다. 그는 도덕정치(인권?)를 앞세운 카터 행정부에서 힘의 외교를 주창했다.
카터는 회고록에서,
“브레진스키는 역사 흐름에 해박했고 제안은 혁신적이었으며 종종 도발적이었는데 나는 그 제안 대부분에 동의했다”고 서술했다.1928년 폴란드 귀족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1976년 카터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은 뒤,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중재해 중동평화 협상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다. 같은 해 중국 베이징을 직접 방문해, 카터 행정부의 미·중 관계정상화 뜻을 전달했다.브레진스키는 2007년 버락 오바마 민주당 경선 후보 지지를 선언해 그의 대통령 당선에 큰 힘이 됐다.
올해 2월에는 NYT 기고문에서,“‘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미국 우선주의’는 그저 자동차 범퍼스티커일 뿐”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 행정부를 비판했다.
● 한국 내정간섭 - 김대중(1924.1.6.~2009.8.18. 전남 신안) 사면압박/ 민주화유공자 양산역할
한국의 민주화에도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80년 ‘5·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DJ) 의 형집행
여부를 놓고, 신군부와 미국 백악관 사이에 긴박한 협상이 벌어졌다.
신군부는 DJ의 목숨을 담보로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했고,
미-백악관은 ‘인권’을 구실로 DJ의 감형을 요구했다.
브레진스키는 1980년 10월 카터에게 보낸 서한에서,
“전두환 대통령이 이곳(백악관)의 구명문제에 대한 사정을 살피려 장교를 보냈다.
그에게 ‘김’(DJ)이 사형을 당하면, 미국 내 수많은 단체가 항의시위를 할 것이며,
이렇게 되면 북한에만 혜택이 돌아갈 것을 명확하게 밝혔다”고 썼다.
결국, 다음해 초 출범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취임 다음 날 전두환(전 대통령)의 방미를
발표했고, 사흘 뒤 전 전 대통령은 DJ의 감형을 선언했다.
브레진스키는 이후에도 미국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을 만나거나 저작, 언론 기고 등으로 한국의 외교 전선에 영향을 미쳤다.
댓글목록
ohun22님의 댓글
ohun22 작성일
전두환의 실수 그때 김대중을 사형 시켰다면 오늘의 이좌익정권 태어나지 않는대
이문죄인 독사정권 반드시 무너뜨러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