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이 북한군 개입사실을 알고있었다는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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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새벽달 작성일15-05-08 21:59 조회4,634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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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부정하기에 급급하던 518 북한군 개입사실이 사진한장에 의해 명백히 밝혀졌다..
그렇다면 518기념재단과 광주시는 북한군 개입사실을 정말로 몰랐을까?
이들이 미리부터, 혹은 518북한군 개입설이 나온후 518에 북한군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근거가 있다.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518당시 광주에서 사망한 북한군 사망자 숫자까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음 자료는 북한 청진시에 있다는 "인민군영웅들의 열사묘"비문 뒷면에 기록된 문구다,
"
여기 청춘의 고귀한 심명을 당과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친 님일세 서용규..(158명 명단)~ 동우외 삼백삼십이명의 인민군 영웅
열사들이 잠들고 있다"-사람들이여! 걸음을 멈추고 용사들의 불멸의 애국정신을 추억하라, 피로서 조국을 지킨 인민군 영웅열사들의
혁명 정신과 찬란한 위훈은 후손만대에 길이 빛나리라!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화인 시켰다. <158+332=490명 전사>
최근 인터넷에서확인한 내용은
5.18기념재단의 자료에 의하면 사망자 240명, 행방불명자 409명 상이5019명이라 한다.
그런데 공식통계는
사망자 166(무연고자 12기 포함)명, 행불자 64명, 상이 및 연행, 구금자가 3,642명 등 총 3,872명(`99. 5. 10현재)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고 한다.
공식통계 행불자 64명이 어떻게 409명으로 둔갑했을까?
이것은 분명 북한군 개입사실을 알고 행불자 숫자를 조작해 북한군의 존재를 행불자로 조작하려 했다는 근거로 볼 수 있다.
댓글목록
삼족오님의 댓글
삼족오 작성일
5.18 당시 뉴스 등과 현지인들의 말을 들으면
몇일만 버티면 해방군이 내려 온다.
그때가 되면 전국으로 확산된다.
광주의 해방구를 목숨바쳐 사수하라
민중혁명에 성공하면 북한처럼 평등하게 살수 있다며
사실상 공산주의체제를 표방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처음은 국가전복 내란준비행위로 체포구속된 김대중 석방을 외치며
광주시민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고 무장을 하게 했지만,
시일이 가면서 공산주의체제로 변해감을 알게 된 광주시민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고 등을 돌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광주출신시민군지도부는 고민에 빠지고 끝까지 전투를 하자며 외부인으로 구성된 강경파 몰래
공수특전사 지휘부측에 진압요청과 도청지하실에 설치된 폭약 기폭장치를 해체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이것을 보면 광주시민들이 북한체제의 공작임을 알고 등을 돌리고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광주시민들이 속음 것을 알았다고 보면 됩니다.
김영삼정권시 5.18광주국가전복내란행위사건을 민주화운동이라고 면죄부를 주고
희생자나 부상자들에게 보상금을 주게 되면서 정치적 단체가 되면서 북한체제의 개입을
부정하게 됩니다.
당시 대낯에도 총기 등으로 시민군들이 시민들을 죽이는 사건들이 왕왕 일어나 공포속에 살았다고
광주시민들을 증언들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