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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에 관한 미국 비밀문서- 駐韓 美軍 司令部 [G-2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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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야113 작성일14-04-11 12:37 조회1,92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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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화순항


미군 비밀문서

[4 3 종합보고서] 흔히 [G-2 보고서]로
불리우는 해방공간의 주한미군사령부 정보참모부 보고서는
미군정 기간에 남한을 통치한 제24군단과 그 예하부대인 6사단 7사단 40사단의 정보기록물을 뜻한다.
이 정보보고서는 미군정 시절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본대가 철수하던
1949년 6월 17일까지 남한의 각 지역 중요상황이 일지처럼 생생하게 기록된 방대한 양이다.
이 기록들은 비밀문서로 보관돼 오다
미국의 '정보자유법'에 의거,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공개되고 있다.
여기에 소개하는 1949년 4월 1일자의 정보보고서는 '제주도 사태'를 종합분석한 최초의 문서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미군 보고서는 이데올로기 차원에서는 그들의 국익과 부합되게 '우익적 관점'에서 기록되고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제주 4 3도 제주도의 특수성 보다는 "이데올로기 대립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현장"으로 보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 제민일보-  

PS:
제민일보
제주 상주 좌파계열 신문사
- 전야-

駐韓 美軍 司令部 [G-2보고서]
(1949년 4월 1일자) 제주도 보고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한국의 불안정한 지역이었으며,
지난 한 해 동안 1만5천명이 살해당했고 가옥의 3분의 1이 파괴되는 등 적대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현장이었다.
현재 제주도는 점차적으로 평온을 되찾고 있으며 3월의 지난 3주간은 지난 1947년 3월 1일 이후 가장 조용한 시기였다.
제주도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주의 역사, 민중, 지리, 그리고 현재 소강상태 이전의 반란자에 대한 군작전 기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지 리: 반도 남쪽에서 6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화산섬인 제주도는 대략 너비 20마일, 길이 50마일 정도가 된다.
좁은 해안지역이 섬 중앙에 위치한 6천개의 오름을 거느린 한라산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지형을 보이며,
산이 많은 섬의 내부는 관목과 잡풀이 많고 아주 비탈진 지형이다. 제주도는 화산 폭발시의 암석으로 뒤덮여 있고,
모든 작은 규모의 밭들은 돌담으로 둘러쌓여 있다. 이 돌담은 섬내 횡단여행과 군작전에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다.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섬의 유일한 도로는 거치른 주변도로 하나 뿐이다. * 민 중 역사적으로 섬주민은 삼성(三姓)에서 유래됐다고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일제지배 이전과 이(李)왕조 6백여 년간 제주도는 본토로부터 정치적 반항자들의 유배지였다.
일반적으로 낮은 계층의 주민들은 본토의 같은 계층의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능과 신체적 조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정직하고 독립적이며 간섭을 싫어하는 동시에 본토관리나 이주자들과 관련한 도둑질과 부정취득을 매우 싫어한다.
여성들은 많은 양의 노동을 하고 있고, 남성들은 감시기능 장사 사냥 어업에 자신들의 시간을 더 쏟아붓고 있다.

* 역사 (이 보고서에는)
해방후
주민갈등의 배경을 제공하기 위한 것 외에 섬의 역사에 대한 어떠한 가정이나 가벼운 터치도 없다.
제주를 정치적 소외자에 대한 유배지로 수세기동안 활용해 온 점과 행정의 불모지대화는 제주섬에 점차적으로 분리주의 철학을 심어놨다.
민중의 분리주의 의식은 60마일이나 되는 지리적 간격보다도 더 넓었으며
이러한 의식은 제주도를 한국의 한 지역으로서 보다는 속국으로 취급하는 본토정부의 정책에 의해 더욱 심화돼 갔다.
일제도 제주도를 전남지방의 한 구역으로 지배했으면서도 제주도를 본토와 좀더 밀접시키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일본인 관료들은 섬주민들의 혁명의식에 대한 양보로서 제주인들에 대해 본토지역 주민들보다 좀더 관대한 태도를 취해왔다.
결과적으로 반일감정은 한국의 타지역보다 덜 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 지도자들은 일본제국의 확대로 인한 인력유출 때문에 군사력이 부족해짐에 따라
섬주민들을 일본군대의 의무복무와 노역으로 내몰았다. 이러한 행위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서야 멈췄으나
섬주민들은 '강제'에 재빠르게 항거, 공산주의자들의 주도하에 저항운동을 시작했다.

1945년 가을
일제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됐을 때는
공산주의자의 지하운동이 이미 존재했었고,
이는 빈약한 행정기구의 압력 아래서 규모나 강도면에서 성장했을 뿐 아니라 비공산주의자에 대한 포섭도 증가했다.
1946년 후반,
섬사람들에 대한 양보로서 제주도는 도(道)의 지위를 차지한다. 현재 제주도지사는 임관호이며 10개월째 재직중인데 섬토박이다.
미군정하인 1947년 3월 1일 경찰이 제주읍에서 좌익행사 참가자 일단을 습격,
몇명의 사람을 죽이기 전까지는 제주섬에서 공산주의자에 의해 고무된 소요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경찰에 대한 즉각적인 보복이 공격적인 섬주민들에 의해 일어났고 이는 몇 해에 걸쳐 계속되는 유혈사태를 유발하게 된다.
소요는 몇달동안은 산발적이었으나
1948년 4월 상황은
실질적으로 심각해져 섬 주둔 1,200명의 경찰만으로는 상대적 안정조차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게 됐다.
따라서 임시적인 한국정부는 군대로써 경찰력을 보강하게 된다.

* 초기 군 작전 :1948년 4월 최초로 한국군 1개 대대가 섬에 파견된다.
다음달에 그 대대는 11연대의 핵심으로 기용되며, 다른 2개 대대가 본토 주둔 연대에서 파견돼 온다. 사실상 11연대에 의해 행해진 좋은 일이라곤 없었다. 그 구성원들 대부분이 공산주의자거나 좌익에 동조적이었다.
부대원중 일부는 반란군에 합류하기 위해 산으로 도주하기도 했고, 연대장 박대령은 부하에 의해 살해되기도 했다.

1948년 7월에
11연대는 철수하며 9연대가 이를 대신한다.
9연대는 11연대의 '무대응' 정책을 즉각적으로 테러에 대한 무차별적 진압으로 대치한다.
이러한 9연대 정책은 반란자들과의 전쟁에서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11연대는 이와 동시에 모든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중산간지대에 위치한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게릴라부대에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공공연한 가정아래
마을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을 채택했다.
주민학살의 대부분은 1948년 12월까지의 9연대의 점령기간 동안에 자행됐다.
그러한 계획은 외형상 주효한 듯이 보여 1948년의 최근 2개월 동안 제주도에서의 반도 활동은 상대적으로 거의 없었다.
그러나 사실상 9연대의 무차별 진압작전은 새로운 형태의 반란으로 전환케 했다.

12월에 9연대가
2연대에 의해 대치됐을때 새로운 흐름의 게릴라 테러가 닻을 올렸다.
함병선대령이 지휘하는 2연대는 처음에 해변의 부락에 숙소를 정했다.
함대령은 섬사람들에 대한 계도 선전계획과 함께 반도들의 하산을 호소했다.
재산(在山) 무장반도에 대한 공격행위의 중단은 그러한 계획을 웃음거리로 만들었으며
이에 고무받은 게릴라들은 방어부대의 코밑에 있는 해안부락까지 공격, 식량을 구해가기도 했다.
그러자 2연대는 다소 공격적이 됐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는 주로 반란군을 도와준 혐의를 받고 있는 해안부락민들에 대한 보복에 한정됐으며 종종 부락민들을 재판의 혜택도 없이 즉석에서 대규모로 처형하기도 했다.
* 유 대령의 도착:
반도들에 대한 작전은 통합부대장인 유재흥 대령이 제주도에 파견된 3월 2일 이후에야 실제로 성공하기 시작한다. 유대령은 일본군 장교의 아들이며 그 자신이 2차대전중 일본 제2방어사단의 박격포 대대장을 지냈다.
제주도 파견 전까지는 육군사관학교 부교장이었다. 그는 두루 유능한 장교이며 미 고문단에 매우 협력적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대를 해변에서 밀어올려 게릴라들과 대치중인 산으로 보냈다.
그는 사면계획을 채택해 중산간 주민에 대한 무분별한 사살을 중지토록 요구했다. 현재의 정책은 작전중 잡혔든 자발적으로 항복했든 간에 산에서 내려온 모든 사람을 구금하는 것이다. 여자 어린이 노인은 대부분 피난민으로 분류되고 있는 반면, 전투가능 연령의 남자들은 피난민 지위가 부여되기 전에 철저히 검색되고 교육되어진다.
유대령 도착이후
300명의 반도들과 그 동조자가 사살당했고 1,500명이 수감됐으며, 소총 22정과 권총 1정이 회수됐다. 무장반도들은 은신처를 이곳저곳으로 옮기느라 고통받고 있다. 3월 9일에는 軍 1개 소대의 매복을 피해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정면공격이나 마을 기습 역시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 무장 게릴라 1948년 여름까지 제주도 남로당원은 5만명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판단되나 사실상 정치적으로 무지한 농어민중에서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진짜의 동경이나 지지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당원들의 지시가 해방후의 사회혼란이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만병통치가 될 것으로 설득당했다.
많아야
수백명에 불과한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이 저항운동의 핵심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전투적이고 열광적이며 잘 조직돼 있는 이들은 그들 숫자에 비해 대단히 분쇄적이다.
그들의 힘이 처음으로 분명히 입증된 것은

1948년 5 10총선이었다.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폭동이 제주도 전역에서 일어났다.
52명의 민간인과 약간명의 경찰과 공무원들이 살해당했고, 국회지역구 3개구중 2개구가 투표무효화됐다.
현재까지도 제주도 2개 지역의 의석이 빈채로 남아있다. 현재 남아있는 무장반도들은 약 250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1천~1천5백명에 달하는 재산(在山) 지원자들과 동조자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반도의 위치와 조직변동은 나날이 그 기조가 바뀐다.
그러나
3월 27일 현재 파악되는 전투서열은 다음과 같다. ===
게릴라 지도자 김시원(KIM Shi Won) : 35세, 공산당 지도자, 군대경험 없는 제주도 토박이.

이덕구 : 32세, 무장반도부대 지도자, 한 때는 일본육군에 복무.
김평호(KIM Pyung Ho) : 이전에 한국군 9연대 장교였음. 탈주후 반도훈련학교를 이끌고 있음. 반도 훈련학교는 산(958-1138)속에 위치해 있음.
(역자 주=위의 山의 좌표는 정확하게 '물장오리'를 가리키고 있다. 또는 조금밑에 있는 '태억장우리'로 추정할 수도 있다) ===
게릴라부대와 부대위치 게릴라 12군단 :
YONG DIM SAW (966-1138)에 위치. 일제 99식총 72정, M-1총 10정, 카빈 15정, 자동소총 3정으로 무장한 1백명으로 구성돼 있음.
(역자 주=위의 영문지명은 좌표상 성판악 동쪽에 있는 '검은오름'과 '붉은오름' 사이를 가리키고 있다)
게릴라 8군단 : SONG PAN Oram (961-1135)에 위치.
1백명의 대원중 30명이 비무장. 일제 99식총 50정, 카빈 10정, M-1총 6정 소유
(역자 주=위의 지명은 발음상 '성판악'이며 좌표에서도 정확히 성판악을 가리킨다)
게릴라 23군단 : 산중(955-1132)에 위치. 일제 99식총 10정, 카빈 1정, M-1총 1정으로 무장한 12명이 대원.
 (역자 주=위 좌표는 한라산 정상 동남쪽에 있는 돈내코 등반코스의 '평지 대피소'부근을 가리킨다)
게릴라 3군단 : TOL Oram (944-1131)에 위치. 30명의 대원중 20명은 비무장. 99식총 8정, M-1총 1정, 카빈 1정 소유.
(역자 주=위의 지명은 발음상으론 '돌오름'인데 좌표상으로는 영실 등반로 입구와 돌오름 사이를 가리킨다)
훈 련 소 : 산중(958-1138)에 위치. 소규모 파견대로 무기는 소량.
(역자 주=위 좌표는 물장오리 부근)
도당 사령부 : 산중(955-1144)에 위치. 50여명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나 무장인원은 극소수. 이 사령부(본부)는 3월 26일 한국군에 기습당해 반도 11명이 숨지고 4명이 생포됨. 이때 총 1정과 라디오 1대, 무기의 일부분들을 모아놓은 것 등이 노획됨. (역자 주=위 좌표는 '삼의악' 지경)
면 사령부 : 섬의 12개 면마다 조그만 面공산주의 본부가 있다.
각 본부에는 3~5명의 지도요원이 있는데 이들은 탄약을 총구로 재는 낡은 일제 훈련용 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비무장 게릴라지원자 : 이들은 산 전역에 흩어져 있으며 1천~1천5백명 정도로 추산된다.
3월 2일 이래 지원자 300명이 살해당했고, 1,500명이 생포돼 현재 억류중에 있다.

* 게릴라 병참 숲
현재 게릴라들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탄약부족이다. 포획하고 탈취한 식량은 풍부하다.
일본군대가 남긴 동굴은 별 문제없이 안전한 은신처 역할을 해주고 있으나, 탄약공급에 대한 준비는 없었다.
한국군으로부터 노획한 경기관총 3정과 박격포는 탄약부족으로 땅에 묻어야 했으며,
생포된 게릴라들에 의하면 현재의 탄약저장량은 M-1소총 실탄이 8백발, 카빈 실탄 90발과 일제 99식 소총 실탄은 400발에 불과하다.
노획한 미제 무기의 탄약은 보안군으로부터 탈취하는 것이 유일한 공급원이다.
그러나 반도들은 99식총 탄약 2천발에 대한 재장전 설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게릴라들이 본토로부터 또는 북한으로부터 병참지원을 받고있다는 소문도 있으나 이러한 보고를 증명할 아무런 증거도 없다.
한국해군정의 지속적인 순찰과 공중정찰및 해안마을에서의 경찰에 의한 빈틈없는 방어는 외부지원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 보 안 군: 현재 반도들에 대항중인 보안군은 한국군부대 2,622명, 경찰 1,700명, 민간인 방어조직인 민보단 약 5만명으로 구성돼 있다.
경찰과 군대간의 일반적인 협조는 잘 이뤄지고 있으나
가끔 외곽의 마을에서 부적절한 지도력의 부대에 속해있는 군인들의 횡포로 인해 발생한 충돌사건들이 보고되기도 한다.
* 한국군: 부대 제주주둔 부대는
2연대의 3개 대대와 정원미달의 1개 특수대대, 전 2연대 작전참모 김명 대위가 지휘하는 50명의 특수부대로 나눌 수 있다.
민간인 복장을 하고 일제 99식총으로 무장한 이 소규모 부대는 선발된 게릴라요원들로서 구성됐다.
이들은 산악을 배회하다 반도들을 만나 사투리로 이야기를 하는등 정보수집에 가장 가치있는 조직이다.
작전병력과 연대본부는 제주읍에 주둔하고 있고,
대대본부의 경우는
1대대가 PYONG TAI JIN JUN(961-1130),
2대대가 KWAN UM SA(957-1142),
3대대가 KYO LAE Ri(969-1141),
특수부대는 NO RO Oram(945-1135)이다.
제주도 주둔 부대원에 대한 훈련은 부대의 소규모성으로 인해 별 진전이 없다.
대다수 군인들은 빨리 본토로 복귀하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그들의 사기는 일반적으로 좋아보이며
모든 공산주의적인 요소는 2연대가 대전을 출발하기전 깨끗이 제거됐다.
 (역자 주=위 영문지명들은 좌표상
1대대는 제1횡단도로에 있는 수악교 부근,
2대대는 관음사의 조금 북쪽, 3대대는 교래리와 산굼부리 사이,
특수부대는 제2횡단도로 1100고지 서쪽의 노루오름)

* 경 찰: 섬 경찰의 대표는 홍순봉이다.
그는 전형적인 한국경찰공무원으로 군과 미국인 고문단에게 협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찰정원 1,200명은 토착인 800명, 본토인 400명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최근 소요기간 동안 본토로부터 500명이 더 보강됐다.
경찰의 대부분은 안전과 세력유지를 위해 해안마을에 집중돼 있으며 군대지휘관의 요구가 있을 때만 군과 합동작전으로 반도 토벌에 이용된다.

* 민 보 단:군경을 지원하고 있는 민보단은
섬주민중 성년남자로 대부분 구성돼 있으며 조악한 죽창으로 무장하고 있다.
대략 5만명으로 추산되는 그들은 밭에서 농사짓기 보다는 보초를 서거나 게릴라 토벌전에 나가는 걸 더 좋아한다.
군과의 합동작전시 일선에서 동행 활동하기 때문에 민간인 전투원들 중에서 비교적 사상자가 많았다.
* 주민: 궁핍 누적되는 반도의 공격과 보안군의 대항 결과로 섬주민 중에는 비극적인 고통과 기아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해 동안 1만4천~1만5천명의 주민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들중 최소한 80%가 보안군에 의해 사살됐다.
섬에 있는 가옥중 대략 3분의 1이 파괴됐는데 30만 주민중 약 4분의 1이 자신들의 마을이 파괴당한채 해안으로 소개당했다.
식량 의복 의약품 등이 부족한 실정이다. 다만 지난 2주동안에 본토로부터의 구호물자가 많은 양 도착했다.
마을이 완전히 파괴돼 버린 45개 마을과 부분적으로 파괴된 43개 마을로부터의 피난민들이 해안마을의 수용소로 이동해왔다.
소개된 주민들에 대한 수용문제(집)는 별로 어려움이 없다.
돌이나 진흙같은 일차적 건축재료가 섬 도처에 깔려있어 하룻밤새 새로운 마을이 생겨나기도 하지만 식량문제의 경우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절박한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평소 제주도는 쌀의 불모지대이지만 잉여 보리와 맛이 좋은 감자가 쌀공급을 위해 본토와 거래돼 왔다.
그러나 지금 농부들은 밭에서 쫓겨났으며 가축도 대부분이 반도와 보안군에 의해 제멋대로 도축 당했다.
현재는 게릴라 활동이 퇴조해감에 따라 농부들은 농사를 짓기위해 산쪽으로 8km까지 이동하는 것을 허가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현 거주지에서의 거리와 가축의 감소로 불편을 겪고 있다.
만일 반도 활동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면
섬은 이번 가을에는 식량자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나 그때까지 본토로부터의 지원이 계속되지 않는다면
분명히 식량이 부족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폭동이나 혼란의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COMMENT :
현재 전체적인 전망이 희망적임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250여 명의 분별없는 무장반도가 사살되든지, 생포되거나 무기를 탈취당하지 않는 상태에서
한국군측의 작전중지는 새로운 테러의 발발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체포된 한 반도지도자는 그의 동료들의 현재 정책은 군대가 철수할 때까지 숨어있는 것이라면서 그 때가 되면 공격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군 지휘자는 전면작전으로 반도들을 은신처에서 찾아내려 하고 있으나
게릴라들은 이동을 계속하면서 활동을 중지해 버려 별 효과가 없다.
현재의 계획은 4월중순 이전에 게릴라들을 완벽하게 제거한다는 것인데 다소 낙관적이다.
그것은 어쩌면 지금 고려중인 다른 계획, 즉 군부대와 민보단으로 섬을 완전히 횡단하는 선을 형성,
산을 빗질하듯 쓸어내려 반도들을 섬의 반대쪽에 진치고 있는 경찰쪽으로 몰아간다는 계획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런 식의 작전은 거리면이나 험악한 지형 등으로 볼때 한달정도 걸릴 것으로 보이나 효과적일 것이다



제주시

댓글목록

전야113님의 댓글

전야113 작성일

상기,
이덕구(무장반란지도자)에 관한 이야기는,
제주 여류작가
한림화의 소설 한라산의 노을(3부작)에서 볼 수 있다 :

참고:
소설가 한림화씨는
1950년 제주 출생으로,
1990년대초 제주 4·3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장편 역사소설인 대표작으로는‘한라산의 노을’을 선보이며 주목을 받은 소설가 
제주가 고향인 그는 제주에 머물며
현재 제주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고, 민족문화작가회의, 제주작가회의,
한국민족예술인 총연합회 등 여러 단체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전야와는
1979년도 여름 첫교류 시작 -
상기 한라산의 노을'{nonfiction-fiction)
창작 재료수집차 함께 한라산을 누빈적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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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람중 제주4.3사건에 관한 미국 비밀문서- 駐韓 美軍 司令部… 댓글(1) 전야113 2014-04-11 1927 10
19408 남과 북 어느쪽이 먼저 내부붕괴 될 것인가 댓글(2) 만토스 2014-04-11 1957 31
19407 김대중의 차명계좌 염라대왕 2014-04-11 2393 86
19406 종복좌익개들의 조용기목사 탄압과 숙청 댓글(1) 중년신사 2014-04-11 1935 21
19405 북한 인권법, 당장 통과 시켜라! 댓글(1) 海眼 2014-04-11 1877 28
19404 대한민국은 빨갱이 공화국 댓글(5) 海眼 2014-04-11 1756 38
19403 안철수,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다 청원 2014-04-11 1838 17
19402 낯짝 뚜겁은 간찰스 댓글(2) rokmc56 2014-04-10 1977 37
19401 새 책 『5·18 사관의 대전환』 샘플 원고 1탄 댓글(11) 시사논객 2014-04-10 2138 35
19400 大國(人)과 小國(人)의 차이! 댓글(2) 토함산 2014-04-10 1636 24
19399 시민단체, 아산사회복지재단(이사장 정몽준) 검찰 고소 블루투데이 2014-04-10 1903 9
19398 경기도 양주 광사동 79mm 현장시추작업 결산보고서 댓글(1) 김진철 2014-04-10 2074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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