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무사고 정시견인초과운동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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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제갈윤 작성일14-04-07 23:22 조회2,09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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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것들이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은 광주 518무장봉기에 북한군개입
이 있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발광을 하는 모양이다. 이들은 1979년 6월 북
한 로동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 18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지시로 시작되었
다는 과거 련합뉴스 기사를
근거로 대고 있다. 물론 그 시작은 제5기 18차 전원회의
에서 김일성의 지시로 시작된 것은 사실이라 할 수 있지만 이후 탈북동포의 증
언에 의하면 역시 김일성은 자신이 일으킨 광주 518 무장봉기의 성과를 선전하
기 위해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바가 있다고 한다.
( 1980년대 후반에 북한에서 나왔던 당시의 간부용 강연 자료에 의하면,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과 관련해서 김일성이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
의에서 직접 발언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고 한다. 당시 무
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은 철도부문의 궐기운동이었다.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동은 단순히 우리나라 경제혁명을 위한 운동
이 아니라 1980년 5월 18일 남조선의 광주에서 일어 났던 영웅적인 인민
항쟁의 정신을 끊임없이 이어가자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또한 남조선혁명
과 조국통일을 위해서 광주인민봉기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우리
혁명전사들의 넋을 기리고 위로하자는 것이 ‘5.18무사고정시견인초과운
동’속에 있는 중요한 과제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따라서 시작은 제5기 제 18차 전원회의의 명칭을 따서 시작된 518무사고정시
견인초과운동은 결국 김일성의 고백?을 통해 80년 광주 518 무장봉기의 성과
를 선전선동하기 위한 슬로건임이 밝혀진 것이다.
그 외에도 518청년호 프레스 역시 광주 518 무장봉기의 성과를 선전선동
하기위해 갖다 붙은 명칭임을 알 수 있다. 제 5기 제18차 전원회의에서는
‘3대수송방침’ 집행상황과 수송난해소책이 의제였다.
유색금속 150만톤 고지 점령 문제와 기계공업부문에서 프레스화, 형단조화, 용
접혁명, 절연물혁명 실현문제 조직문제는 로동당 제6기 6차 전원회의
(1982.8.29) 의제였다.
광주518이 북한군의 개입이 없었다고 발광하는 것들의 주장대로라면
518청년호 프레스는 66청년호 프레스가 되었어야 할 것이다.
결론은 광주 518 무장폭동의 성과를 선전선동하기 위해 갖다붙인 518 무사고
정시견인초과운동과 518청년호 프레스를 통해 광주 518무장봉기는 김일성의
작품임이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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