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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웅 박정희 -- 친일파가 아니라 지략의 애국자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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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람가세 작성일14-02-15 06:04 조회2,097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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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민족의 영웅 박정희 -- 친일파가 아니라 지략의 애국자다 (1)






                                     들어가는 말


민족의 영웅 박정희를 친일파라고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매도해 온 무리들이 있어 그 부당함을 온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그런 무리들은 박정희를 친일파로 매도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왜곡, 날조함은 물론 박정희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도 그 앞뒤 정황은 일체 무시하고 부분적 사실들만 과장하여 오도하고 오로지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각색하여 선전하는 파렴치함을 보여 왔다.

그들은 박정희가 일왕에세 충성맹세 혈서를 써서 보냈다고 각색하는가 하면 박정희가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날조하기도 하면서 국민들에게 온갖 거짓 선전을 해 온 것이다.

그렇게 박정희를 친일행위자로 매도해 온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1. 이른 바 김대중, 김영삼, 노무현 계열의 민주팔이 세력들과 2. 북한 괴뢰정권과 이를 추종하는 종북좌파들과 3. 이 둘에 다 연계된 세력들이며 그들은 모두 박정희를 친일파로 매도함으로써 큰 이익을 얻는 집단들이다.

민주팔이 세력들은 박정희를 독재자, 친일파로 매도해야만 박정희 시대의 정통성을 파괴할 수 있고 나아가 자신들의 민주팔이를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 것이며, 북괴와 종북좌파 세력들 역시 박정희를 친일파로 매도해야 박정희를 칭송하는 남한내 우파 진영 전체를 함께 친일파로 매도하여 남한을 적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무리들의 거짓 선전과 책동을 무력화시키고 박정희가 친일파가 아닌 지략의 애국자, 불멸의 애국자임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은 나라를 구하는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이 글을 쓰는 것이니 독자 여러분들은 모든 선입견을 버리고 객관적인 진실 탐구의 자세로 읽어 주기 바란다. 이 글은 여러 애국자들이 이미 밝혀 낸 사실들에 필자의 생각을 보태 쓴 것이며 앞으로 계속 보강해 나갈 것이다.



                         박정희가 정말로 친일 행위를 했다고 해도

그 것은 1960년대 이후 박정희의 경제 개발과 조국 근대화 업적으로 다 상쇄되고도 크게 남는다는 사실을 미리 강조하고자 한다. 박정희는 친일 행위를 한 적이 없지만 만약에 했다고 해도 이미 사면 받고도 남는다는 말이다.

계산은 정확하게 해야 한다. 설사 박정희가 정말로 친일 행위를 했다고 해도 1. 그 친일 행위가 조국에 끼친 피해와 2. 1960년대 이후 박정희가 이룩한 산업화, 조국 근대화 업적의 크기를 정확히 재서 평가해야 하고, 결론은 후자가 훨씬 더 크고 온 국민이 그 혜택을 입고 있으므로 박정희는 충분히 사면의 대상이 되고도 남으며 따라서 누구도 박정희를 비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면 받은 사람의 과거 잘못에 대해서는 지속적이고 무제한적인 비난을 해서는 안되고 그저 '한 때의 잘못' 정도로 필요할 때에만 잠시 거론해야 하는 것이다.

즉, 이 경우 일제 시기에 대한 역사 비평이 필요할 때 사안에 따라 박정희의 관련 행위에 대한 비판이 '한 때의 잘못'이라는 정도로 언급하는 게 가능하지 작금의 민주팔이들과 종북좌빨들처럼 시도 때도 없이 박정희라는 인물 전체를 친일파요 매국노라고 비난하는 행위는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앞에서도 말했지만 박정희를 비난하려는 자들은 자동차, TV, 컴퓨터, 화장품 등 박정희가 이룩한 산업화의 모든 혜택을 스스로 반납하고 비난해야 할 것이다.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국이었어도 문제없다.
                 이하 일단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국이라고 전제한다.

박정희의 친일 여부를 판정하는 일에서는 1930,40년대의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국이었는지 아니었는지도 참고 사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일단 1. 지난 1930,40년대의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국이었고 2. 만주국과 조선인들 사이에 서로 적대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전제하에 논리를 전개하기로 한다. 사실은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국이 아니었다는 주장들이 최근에 나오고 있지만 1과 2가 다 사실이었다고 해도 1940년대 박정희의 행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친일 행위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명제 1과 2의 사실 여부와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에 대해서는 필요한 단계에서 따로 이야기하기로 한다.





                         박정희는 힘을 기르기 위해 만주로 갔다.
                              조국의 독립과 번영에 필요한 힘

                                    만주군관학교, 일본 육사에서 배운 건 힘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박정희의 만주국군 제 8단 근무 역시 배움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각종 증언과 앞뒤 정황에 맞게 해야 한다.


지금까지 박정희를 친일파로 비난해 온 자들은 일제 때 일본인이 아닌 사람이 일본 육사에 입학하거나 유학했으면 반드시 자기 민족과 나라를 배신하고 일제에 충성하기 위해서라는 막가파식 단순논리 내지 자기 세뇌에 빠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전쟁이나 망국 시기와 같은 역사상의 난세에는 적진에 스파이를 보내기도 하고 또는 스스로의 판단하에 적군에 잠입하여 때를 기다리기도 했으니 적을 속이고 적의 진영에 잠입하여 적의 기술과 전략을 배워 장차 독립운동에 쓰려는 면종복배(面從腹背)의 트릭을 쓰는 건 그야말로 병가지상사였지 않은가. 일제 때에만 그런 일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실제로 독립운동가 지청천과, 이응준, 신태영, 조철호 등은 1914년 5월 28일 일본 육사를 제 26기로 졸업한 인물들(홍사익과 동기생)이었는데 누구도 그들을 보고 친일파라고 부르지 않으며 일본 육사를 졸업한 사실을 탓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일제 때 어떤 인물이 일본 육사에 입학하여 졸업한 후 일본군에 근무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를 친일행위자로 단정해서는 안되는 것이며 앞뒤 정황을 살피고 실제로 그가 어떤 일을 했는가를 살펴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박정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만약에 박정희가 처음부터 만주군관학교가 아닌 일본 육사에 입학하여 졸업한 후 일본군에서 근무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박정희를 친일행위자로 단정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래는 일제 때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전후한 주요 사건과 자료들 중 일부이다. 이하 편의상 원래 이름인 '만주신경군관학교'를 줄여서 '만주군관학교'라 칭한다.


                                                             ◆

1939년 박정희와 학교 가을운동회에 함께 참여했다는 내용이 실린 문경보통학교의 동창회지가 발견되었다.

1939년 10월 3일 만주군관학교 입학 시험을 침. 장소는 목단강성의 만주국군 관구사령부내 장교구락부에서.

1939년 10월께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가르쳐 오다가 일본인 교사들에게 집단린치 당함.
1939년 11월초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직 사임, 22세
1940년 1월 4일 만주군관학교 합격자 공보
1940년 초까지 문경 보통학교에서 근무
1940년 3월 말 학생 통지표에 서명했다는 기록 있음 (아직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입학 전이었고 교사직 사임은 했지만 학생들의 성적 관리 등을 마무리 할 의무는 남아 있었기에 그랬다고 봄.)

1940년 4월 4일 만주군관학교 제2기생 입교, 23세
1942년 3월 25일 만주군관학교 졸업 (1등), 25세
1942년 4월초 만주국 황제의 특전으로 일본육군사관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유학함

1944년 3월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57기), 만주국군 보병 제 8단 육군 소위로 임관 (일본군 아님)

1945년 7월 10일 만주국군 중위 승진
1945년 8월 15일 해방

1945년 8월 29일 광복군 제 3지대 1대대 2중대장 임명


보다시피 박정희는 처음에 일본 육사가 아닌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했으며 졸업시 성적이 최우수하여 일본 육사의 3학년에 편입하여 위탁교육을 받게 된 것이다, 즉,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 우등생에게 주어진 만주국 황제의 유학 특전을 받아 일본육사에서 위탁교육을 받았다는 게 가장 기초적인 사실 중 하나다.

박정희는 어쩌다 배울 기회를 잡아 일본육사에서 유학한 것이지 일본 육사에 처음부터 정식으로 입학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졸업 후 일본군에서 근무한 게 아니라 만주국군 보병 제 8단에서 근무한 것이다.


                                                             ◆

이상의 사실에 기초하여 박정희가 과연 친일행위를 했는가 안했는가를 판단해 보기로 하고 우선 편의상 아래 몇 가지부터 이야기한다.

1. 먼저 자칭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가는 과정에서 혈서를 써서 일왕에 대한 충성 맹세를 했다고 선전해 왔는데 설사 그 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행위 자체를 두고 박정희가 친일행위를 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적을 속이기 위해서는 적의 입맛에 맞는 말을 해 주는 것도 다 병법의 일환으로 보아야 하며 세계 역사에는 그런 일들이 숱하게 많기 때문이다.

당시 일제 치하의 조선인으로 살고 있던 박정희가 조선의 독립과 번영을 누구보다도 원했다는 건 많은 증언과 정황들이 말해 주고 있으며 바로 뒤에서도 소개할 것이다.

그런데 독립운동은 무엇으로 하는가? 펜으로 하는가? 말로써 하는가?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 일제의 극심한 탄압으로 인해 이미 조선 국내에서는 펜이나 말로써 독립운동을 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환경은 더 이상 아니게 되었으며 이는 박정희도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박정희가 문경보통학교 재임시에 제자들에게 태극기와 우리말을 가르치는 등 민족 정신을 불어 넣으려 애써 봤지만 일본인들의 감시와 탄압, 폭행을 당했다는 제자들의 증언이 있듯이 펜이나 말로써 하는 독립운동의 한계를 절감한 박정희였을 것이다. 증언들이 말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을 갖추려면 배워야 하고 그 중에서도 군사학을 배워야 한다고 절감한 박정희였다고 봐야 하는 것이며 그래야 문경보통학교 제자들의 증언 등이 말해주는 앞뒤 정황에 맞아 떨어지는 것이지,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에서 배웠고 만주국군 제 8단에서 근무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친일행위자라고 단정하는 건 엄연히 존재하는 각종 증언과 정황들이 말해 주는 정당한 개연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짓이며 이는 그야말로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불순한 의도로 박정희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짓거리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1940년대 박정희의 군대 경력에 관한 모든 증언과 앞뒤 정황은 바로 박정희가 조국의 독립과 번영에 필요한 힘과 지식과 경험을 기르기 위해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에서 배우고 만주국군 제 8단에서 근무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평가와 해석은 각종 증언과 앞뒤 정황에 맞게 해야 하는 것이다.


2. 박정희를 매도해 온 무리들은 또 "긴 칼 차고 싶어 만주로 갔다"라는 말을 박정희에게서 들었다는 모 씨의 증언을 들먹거리면서 당시 박정희가 권력욕에 눈이 멀어 군인이 되었다는 둥 하면서 비난하지만 만약에 그 증언이 사실이고 그런 권력욕이 박정희에게 실제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게 무슨 문제가 되는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 권력욕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며 그것은 바로 조국의 독립과 번영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1930,40년대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입학 관련한 모든 앞뒤 정황이 말해 주고 있으며 나아가 1960,70년대에 이룩한 산업화와 조국 근대화 업적 등 박정희가 보여 준 조국번영 행보들도 함께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가 아무런 목적없이 권력 자체를 추구했다고 말하는 건 애국자 박정희에 대한 근거없는 모독인 것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가 나쁜 게 아니라 무엇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권력과 지식이 있어야 조국의 독립과 번영을 추구할 게 아닌가. 박정희가 "긴 칼 차고 싶어 만주로 갔다"라고 말했더라도 그 긴 칼은 곧 권력과 무력의 상징이니 그것을 획득하여 조국의 독립과 번영에 쓰겠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든 앞뒤 정황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당시 긴 칼은 1차적으로 권력보다는 군인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니 군인이 되고 싶은 박정희의 개인적인 마음도 함께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앞뒤 정황과 개인적인 선호를 일체 무시하고 단편적인 말 몇 마디와 단편적인 사실들만 들이 밀며 박정희를 친일파로 매도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실사구시형 인간 박정희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입학은 투철한 실사구시 정신의 산물이었다.


박정희의 이력과 정치 행보를 볼 때 박정희를 특징짓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를 모르고 박정희를 평가하는 건 치명적인 오류로 흐르기 쉽다.

실사구시(實事求是)란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진리를 탐구하거나 실제 처한 현실을 바탕으로 개인이나 집단의 나아갈 바를 결정하는 것을 말하며 실질추구와도 통한다. 박정희는 허울 뿐인 구호나 계획보다는 현실에 맞게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길과 방법을 찾아 실천하는 인생 행보를 보인 것이며 그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 것도 그런 실사구시 정신의 결과이다.

배움의 장소는 가리지 않는다, 만주군관학교든 일본 육사든 어느 곳에서나 배우면 된다는 게 바로 박정희의 실사구시였던 것이다. 특히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 최우수 졸업자가 되어 그 특전으로 받은 일본 육사로의 유학을 마다하지 않은 것도 바로 그런 실사구시 정신에 의한 것이었으며 이는 특히 지피지기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박정희가 적국인 일본에게서 배우는 것이 싫다고 하여 일본 육사로의 유학을 기피했다면 그 명분은 장하다 할지 모르나 실질의 면에서는 박정희 개인에게나 전체 조선인들에게나 군사학과 기술의 결핍이 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는 당연히 주어진 유학 특전을 활용했다.

당시 박정희와 같은 조선인들에게 일본 육사에서 배운다는 것은 적과 세계 열강들이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가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아닐 수 없었으니 이를 놓칠 박정희가 절대 아니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적도 알고 군사학도 취득하기 위해 적(일본)에게 면종복배한 것이며 이야말로 실사구시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박정희는 1938,9년 당시 교사였다. 교사라는 직업은 배움의 중요성에 대해 수시로 강조하는 직업이고 박정희 자신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는 우리 동포들이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절감하고 가르친 1인이었으니 그 스스로가 군사기술과 군사학을 배우기 위해 만주행을 택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즉, 박정희의 투철한 실사구시 정신에 의하면 장차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적국인 일본의 육사에 가서라도 배워야 하고 만주국군에서의 배움도 마다하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의 배움에 있어서는 만주국이 일제의 괴뢰국이든 아니든 그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조선인이 군사학을 체계적으로 배울 데가 그런 곳 말고는 없었다.

                                                                   ◆

이러한 박정희의 실사구시 정신은 1960,70년대의 경제개발 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니 여기서 1960년대에 박정희 정부가 체결한 한일협정 이야기를 잠깐 할 필요가 있다. 실사구시의 중요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한일협정을 체결할 때에도 박정희는 당시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적 환경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인가를 정확히 알고 행동한 것이다. 실현 불가능한 명분에 집착하여 현실적인 국익을 손상시키는 일을 박정희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박정희도 처음에는 한일협정 체결에 부정적이었으나 당시 서독 총리(?) 등의 충고를 받아들여 체결하게 되었다는 증언도 있으니 이 역시 박정희의 뛰어남을 보여 주는 일이다. 남의 충고가 옳으면 받아들이는 건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이며 실사구시의 예라 할 수 있으니. )

당시 물론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과거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낼 권리와 명분이 있기는 하였으나 그 것은 당시 상황에서 실현불가능한 명분이었으며 자칫 그 시기를 놓치면 단 한 푼의 배상금도 받아낼 수 없는 지경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 자체에 그리 많은 돈이 있었던 상황이 아니며 일본은 한국과 국교를 재개하지 않아도 크게 아쉬울 건 없는 상황이었으니 그대로 수십년 흘러 가면 배상금 같은 건 단 한 푼도 못 받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다 받아내는 것, 대일청구권을 완전히 행사하는 것도 먼저 나라에 힘이 있고서야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명심해야 한다. 그런데 1960년대 당시 대한민국에 그런 힘이 있었는가? 힘은 커녕 온 국민이 그대로 가면 다 굶어 죽을 처지에 있던 나라가 대한민국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일청구권이라는 명분에만 집착하여 한일협정을 체결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경제개발도 불가능했을 것이며 오늘날 여전히 아무런 힘도 없는 후진국으로 남아 단 한 푼의 배상금도 일본에게서 받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한 때에 박정희는 정확히 국익을 챙기는 선택을 하여 한일협정을 체결함으로써 1. 민족적 명분에는 부족하기는 하지만 배상금을 포함한 금액도 어느 정도 받아내어 (무상 3억, 유상 2억, 민간상업차관 3억 달러) 경제개발의 종자돈으로 활용하고 2. 일본으로부터 각종 기술과 부품, 기계, 설비 등도 수입하여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 효율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즉, 당시 대한민국이 처한 시대적 상황에서 실현 불가능한 명분에 집착하여 현실적인 국익을 손상시키는 일을 박정희는 절대로 하지 않은 것이고 이 게 바로 실사구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는 실사구시형 인물인 것이며 1930,40년대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입학과 뒤 이은 일본 육사 유학과 그 후 만주국군 제 8단에서 초급장교로 근무하며 군사 경험을 쌓은 것도 그런 실사구시의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그 것은 조국과 민족의 독립과 번영을 위한 지략의 소산으로서 칭찬의 대상이지 무슨 친일 행위도 아니었고 일신의 영달과 권력만을 추구하는 행위도 아니었던 것이다.

관련된 한 구절을 박정희 시대에 만든 국민교육헌장에서 인용해 본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계속)

유람가세, 2014-02-15








댓글목록

aufrhd님의 댓글

aufrhd 작성일

1945년 8월 15일 당시까지 살아남은 대한민국 사람중에서 친일파가 못됐던 사람은 거의 다 죽었습니다.
누가 누굴 보고 친일파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지독한 친일 노릇을 했던 조상을 가진 진짜 친일파 자손이
친일파가 아닌 박정희 같은 애국자를 친일파라고 하는 것입니다. 틀림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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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9 떨칠 수 없는 사교육에 대한 열망 경기병 2014-02-14 206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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