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불비(三年不飛)의 고사를 다시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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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찬수 작성일13-12-20 09:10 조회2,605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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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불비(三年不飛)의 고사를 다시 읽으며. 2013/12/20 07: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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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불비(三年不飛)의 고사를 다시 읽으며.
다음의 이야기는 김구용 선생이 번역한 열국지(列國志: 어문각 간)내종중 한 부분을 참고하여 다시 쓴 글이다. 고대 왕조에서나 있을 법 한 이야기이 지만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꼬리가 길면 잡히게 마련이다. 지금 항간에서는 민주주의란 명분을 내세우면서 반국가적 반사회적, 이적행위정도가 도를 넘어선지 오래이다. 그리고 패륜인간적인 행태가 난무하고 있다. 한마디로 제 마음대로 꼴갑을 떨고 있는 요즈음 세태 흐름이다. 그 저질 행태를 살펴보면 모든 사안들이 자기이롭자고 남을 헐뜯어대는 행패 노출현상이다 라고 단언할 수가 있다. 특히 야당이라는 정치가들은 자기나라 정체성도 지키지 못하면서 심지어 매국노적인 행각으로 이적행위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공직자란 자들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다기 보다 국가 기강을 흩으러 트리는 자세를 국민 앞에서 내 보이고 있다. 꼴깞정도를 보면 국가정체성이 무엇인지 망각한지 오래고 국가수반인 대통령을 지칭하여 말하기를 자기 하수인정도 보다 하대하며 치욕스런 언사 구사를 서슴치 않고 있다. 난동의 정도가 너무 지나 치고 있다.
삼년불비(三年不飛)! 고대 중국의 사례이지만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할 통치자의 일화를 남긴 이 비유의 말! 오늘날 혼탁스러움에서 다시 명심할 교훈적 사례담일것을 우리 국민들은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천한 입 함부로 놀리고 심지어 배우 나부랭이 방송인 졸개들이 더러운 입 참지 못하고 함부로 지꺼리는 현상은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특히 교육적이지 못한 사례 일뿐이다.
이상한 언사로 집권당과 대통령을 격분시켜 무슨 이득을 보자하는 것인가? 시대의 흐름속에 번지수도 맞지 않은, 그래서 의롭다 할 4.19를 엉뚱한 방향으로 흉내 내어 사회혼란 부추겨 빨갱이 수법으로 집권해 보자는 것인가? 아니면 5.18 항쟁의 모양새로 유도해 김대중 노무현현상으로 집권해 보자는 것인가? 가소롭기가 짝이 없다.
오늘날 나타나는 사회적 혼란 언사는 나라발전 정치행로와는 전혀 무관한 난동질일 뿐이다. 우리나라 탄탄해야 할 미래 교육을 위해서라도 이들은 국법으로 엄단해야 할 것이다. 3대세습을 이상향으로 여기는 자들의 말로가 어떠해야 되는지 그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국민들에게 다시 말하여 현대에서도 그 이야기 내용 중에서 나타난 사실로 짐작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하겠다. 2013. 12. 20. 대한민국수호 천주교인모임 공동대표 화곡 김찬수 알렉산델.
삼년불비(三年不飛)
중국 주나라 봉건제후국 중에 초(楚)라는 나라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제(帝) 전욱(颛顼: 高陽)이 시조이며 그의 후손인 웅역(熊繹)이 주 성왕(成王)으로부터 분봉받아 단양(丹陽)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웠다. 춘추시대에 이르러 무왕(武王)때 왕호를 참칭하고, 문왕(文王)때 영으로 천도 했으며 장왕(莊王)(재위: 613~591. B.C)때는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전국시대에는 전국칠웅으로 위세를 떨쳤으나 진(秦)나라의 압박을 받아 B.C 278년 수도가 함락되었고, B.C 223년 멸망했다.
삼년불비(三年不飛) 고사(故事)는 초장왕에 얽힌 이야기이다.
초장왕의 이름은 여(旅)다. 그는 왕위에 즉위한지 3년이 지나도록 신하들에게 한번도 명령을 내린 일이 없었다. 그가 움직인다는 것은 궁성밖으로 나가 사냥을 할 때가 고작이었다.그렇지 않으면 궁성안에서 밤낮으로 여러 부인들과 어울려 술만 마셨다.
초장왕은 시자(侍者)를 시켜 조문밖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내 걸었다. " 어떤 자든지 감히 짐을 간하는 자가 있으면 사형에 처하리라!"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왕에게 충언의 말을 함부로 간언 하겠는가. 그러나 역사적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충언을 하는 신하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어느 날, 대부(大夫) 벼슬의 신무외(申無畏)가 궁으로 들어 갔다. 춘추시대의 대부 벼슬은 경(卿)과 사(士)의 중간 벼슬이다. 초장왕은 오른팔로 정희(鄭姬)를 안고 왼팔에는 채녀(蔡女)를 끼고 악공으로 하여금 음악을 연주하도록 하고 그는 종(鐘)과 북 사이에 앉아 있었다.
초장왕이 신무외가 들어오는걸 보고 물었다. "대부는 술을 마시러 왔나뇨? 음악을 들으려 왔나뇨? 또는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왔나뇨?"
신무외가 대답 하기를 " 신은 술을 마시기 위해서 라든가 음악을 들으러 온 것은 아닙니다. 며칠 전에 신은 교외엘 갔다가 왔습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신에게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는데, 그 뜻을 알아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왕께 그걸 들려 드리려고 왔습니다"
장왕이 묻는다. " 허어! 무슨 말이관대 그 뜻을 알 수 없다는 것인가? 그러나 대부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라면 과인인들 어찌 알 수 있으리오. 좌우간 이야기나 해 보라"
신무외가 아뢴다. " 몸에 오색빛이 찬란한 큰 새가 있는데 그 새가 초(楚)나라 높은 곳에 앉은지 3년이 지났다 합니다. 그런데, 그 새가 나는걸 본 사람이 없고 우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 새가 무슨 새냐는 것입니다."
초장왕은 신무외가 풍자(諷刺)하는 뜻을 알았다.초장왕이 웃고 대답한다. "음, 과인은 그 새를 알겠다. 그것은 비범한 새다. 3년을 날지 않았다 하니 한번 날기만 하면 하늘을 찌를 것이며, 3년을 울지 않았다 하니 한번울기만 하면 반드시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대는 그 때를 기다리라."
신무외는 재배하고 물러갔다.수일이 지났으나 장왕은 여전히 주색과 음악만 즐겼다.
이번엔 대부 소종(蘇從)이 궁성으로 들어 갔다.소종은 왕앞에 나아가 크게 통곡했다.
왕이 묻는다. "그대는 어째서 이렇듯 슬피 우나뇨?"
소종이 대답한다. "신은 이제 죽은 몸입니다. 장차 초나라는 망합니다. 그래서 웁니다."
장왕이 묻는다. "죽다니? 그대가 어째서 죽을 리 있으며, 이 나라가 왜 망한다는 말인가?"
" 신이 왕께 간하면 왕은 반드시 듣지 않고 신을 죽일 것입니다. 신이 죽은 뒤면 다시 왕께 간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더욱 왕은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며 나라정치는 엉망이 됩니다. 그 지경이 되면 초나라가 언제 망하느냐는 것은 물을 필요 조차 없습니다."
초왕이 갑자기 얼굴 빛을 변하면서 대로한다."과인을 간하는 자 있으면 반드시 사형에 처한다고 했다. 그대는 간하면 죽는다는걸 번번히 알면서도 이제 과인에게 덤벼드나뇨? 참으로 그대는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소종이 앙연히 머리를 쳐들고 대답한다. "신이 아무리 어리석을 지라도 왕처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초장왕이 더욱 대로한다. "과인이 어째서 그대보다 더 어리석단 말이냐?"
"대왕은 만승(萬乘)의 지존(至尊)이시며, 천리국토의 세금을 받으시며, 강한 군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제후들도 대왕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사시(四時)로 바치는 공물이 끊임없이 우리 궁정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는 만세의 이익입니다. 그런데 대왕은 지금 어떠 하십니까? 주색에 빠지고 밤낮 음악만 즐기고 나라정치는 다스리지 않고 어진 사람을 멀리하고 계십니다. 장차 바깥 큰 나라는 우리나라로 쳐 들어 올것이며 조그만 나라들은 우리의 지배 밑에서 벗어 나려고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한때 즐거움은 바로 목전에 있지만 멀지 않은 불행은 다음 날에 있습니다. 대저 일시의 쾌락 때문에 민세의 이익을 버리니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습니까? 이몸의 어리석음은 이몸을 죽이는데 불과 합니다. 그러나. 대왕이 신을 죽임으로써 후세 사람들은 신을 용강(龍강). 비간(比干)과 견줄 만한 충신이라고 칭송할 것입니다. 결과에 있어 신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왕의 어리석음은 실로 딱하기만 합니다. 다음날 대왕은 한 백성의 마음도 얻지 못하실 것입니다. 신이 말하고자 하는것은 이것뿐입니다. 청컨대 대왕은 허리에 차고 있는 그 칼을 뽑아 신에게 주십시오. 신은 마땅히 대왕 앞에서 그 칼로 목을 찌르고 죽겠습니다. 그리하여 대왕의 명령이 얼마나 철저한가를 세상에 알리겠습니다."
초왕이 벌떡 일어섰다. "대부는 진정하오. 그대의 말은 충신의 말이로다. 과인이 어찌 그대의 말을 듣지 않으리오. 다만 때를 기다렸을 뿐이다."
그 뒤로 초장왕은 음악을 금하고 정희(鄭姬)와 채녀(蔡女)를 멀리 했다.그리고 번희(樊姬)를 부인으로 삼고 내궁 제반사를 맡겼다.
"과인은 사냥하는걸 좋아했건만 그럴 때 마다 번희는 간했고 과인이 사냥해서 잡아온 짐승을 번희는 먹지 않았다. 이것은 번희의 어진 천성이 나를 내조 한 것이다."
다시 영윤 투월초(令尹 鬪越椒)의 권력을 깎아 위가(蔿賈), 반개(潘玠), 굴탕(屈蕩)등에게 나누어 맡겼다.아침 일찌기 조회를 열고 법을 펴고 명령을 내렸다.
대내적으로 그간 함부로 까불며 주둥이 놀린자들의 나타난 사실적 행적대로 이를 근거하여 증거된 사실에 의거 호되게 국법법을 적용하여 국가기강을 바로 잡았다. 치안유지에 국가수호법을 적용하지 않으면 혼란천국이 오기때문이다. 내치를 안정시킨뒤에 국외적 통치는 실로 놀라웠다.
이때부터 초장왕의 활약은 눈부신 바가 있었다. 대외적으로 그는 정나라 공자 귀생(公子 歸生)에게 명하여 송나라를 치게하고 즉시 위가에게 군사를 주어 정군을 돕게 했다. 이리하여 정군은 대극(大棘)에서 송군과 싸워 송나라 우사 화원(右師 華元)을 사로잡았다. 당시 초장왕은 북림(北林)에 가서 진군(晋軍)과 싸워 진나라 장수 해양(解揚)을 사로잡아 가지고 돌아 왔다. 다음 해에 사로잡은 장수들을 다 그들의 본국으로 돌려 보냈다. 이때부터 초나라 세력은 날로 강성했다.
초장왕은 왕위에 올라 처음 집권초기 3년간 통치근거를 잡기 위해 소소한 잡다함을 일일히 참고 침묵을 지키며 국내와 국외의 인간관계의 정세를 완전히 파악하였던 것이라 짐작할 수가 있겠다. 이것이 천하를 호령하려는 준비과정이었던 것이다.초장왕에 얽힌 고사(故事) 이야기는 많다. 장왕의 인품은 호쾌함과 웅장함에서 그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와 치도(治道)의 멋스러움이 돋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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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view님의 댓글
proview 작성일
초장왕의 약력의 일부이군요^^ 궁녀들 중에는 초장왕이 총애하는 후궁이 있는데 전장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수들을 위로하기 위해 술잔치를 벌였다고 하지요,,,,이때 총애하는 후궁이 장수들에게 일일히 술을 따르는 도중 취기가 있는 장수가 후궁을 끌어 안았다고 합니다. 후궁은 그 장수의 머리의 관 끈을 끊어버려 초장왕에게 이야기 하기를 머리에 관끈이 없는자가 저를 희롱하던 장수이니 그자를 처벌해 주십시오,,,,,라고 하자 초장왕은 자! 모두들 촛불을 끄고 머리에 매어있는 관끈을 모두 끊어라 명령하면서 만일 관끈을 끊지 않은자는 엄벌에 처한다는 명령을 하달하자 모두 관끈을 끊었다고 하지요
총애받던 후궁은 초장왕의 명령에 당혹해 하면서 어리둥절 하였고 궁금증이 많았을 것입니다. 술잔치가 끝나고 후궁과 초장왕이 있는 침실에서 후궁이 묻기를 대왕께서는 저를 욕보이는 장수가 있는데 분하지도 않읍니까?,,,,라고 물었더니 초장왕이 하는말 사람이란 술에 취하면 탈선하게 마련이고 주색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만일 술자리에서 일일히 죄목을 들추어내어 형벌을 가한다면 그자리가 어떤 자리로 변하겠는가? 그대는 생각해 보라?,,,,모두가 공포에 떠는 술자리로 변했을 것이다.
또한 대왕으로써 속좁은 인간으로 주변사람들이 평가할 것이고 너그럽지 못한 국왕이라고 불평불만이 많을 것이다. 그대(후궁)도 잠시 희롱을 당했더라도 너그러히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이 이야기를 들은 후궁은 초장왕의 도량에 탄복을 했다고 합니다.
훗날 이 술자리를 절영회라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