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설] 참군인 채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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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碧波郞 작성일13-11-27 10:13 조회2,776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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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나 교사로 일하던 고인은 1946년 북한군 사관학교 격인 ‘평양학원’ 개교식에서 김일성을 만난다. 하지만 이상과는 다른 공산주의 사회의 현실을 목도한 고인은 같이 일해보자는 김일성의 권유를 뿌리치고 1947년 월남해 6·25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군인 채명신 인생 최고의 순간은 1965년 8월부터 3년 8개월간의 주월 한국군사령관 시절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베트남전쟁을 ‘명분 없는 전쟁’이라며 반대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명령하자 국가의 소명(召命)으로 받아들였다. 둑코 전투와 짜빈동 전투는 1개 중대 병력으로 6배나 많은 월맹군을 괴멸시킨 전사(戰史)에 남을 대첩이다. 미군들은 그를 군신(軍神)으로 존경했다. 애초에 한국군의 독자적인 작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던 미군도 채 사령관의 능력을 믿고 작전권을 넘겨줬다.
박 전 대통령의 5·16군사혁명에 가담해 혁명5인위원회와 국가재건최고회의에도 참여했지만 군인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신개헌에 나선 박 전 대통령에게 “장기 집권은 각하를 죽이는 길이다. 스스로 정권을 연장하겠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고언을 여러 차례 했다. 괘씸죄에 몰린 고인은 결국 꿈에 그리던 4성 장군 진급이 좌절된 뒤 1972년부터는 외교관으로 국가에 봉사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는 “나에겐 철모가 필요치 않다”며 평생 천으로 만든 군모를 고집했다. 생전에 받은 태극무공훈장(1회), 충무무공훈장(3회), 화랑무공훈장(1회), 을지무공훈장(2회)은 채 장군의 용맹한 삶을 증명해 준다. 평생을 공산정권과 싸워온 고인은 생의 마지막까지도 투철한 안보관과 국가의식을 강조하며 종북세력의 준동을 경계했다. 용장(勇將) 채명신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애국심과 군인정신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네 번째 문단 첫 번째 줄, 원래 동아일보는 ‘5·16군사정변’ 이라 썼습니다.
이에 분개한 옮긴이는 ‘5·16군사혁명’ 이라 고쳤습니다. 참고하십쇼.
5·16은 군사혁명입니다. 군사정변이라 함은 박정희 정권을 통으로 부정하려는 만행입니다!!!
댓글목록
언제나애국님의 댓글
언제나애국 작성일
정말 참 군인이셨군요..
장군님의 애국심과 빛나던 군인정신은 영원히 기억될것입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전남 광주 尙武臺(상무대)! ,,. 보병학교를 위시하여 포병,기갑.공병.화학학교들의 통합 주둔지! 1950.6.25 동란 기간 중 설립! ,,. 그곳에서는 매년 '보.포기.공.통.항.화 Cooperation{협동 작전}' 시범을 실탄 사격 및 실제 기동하면서, 공군도 참가하는 '공지 작전{Air Ground operation}'을 매년 연례행사로 치루는데, '협동작전 시범'차원을 넘어 '해군'은 제외된 제한된 '합동작전성 시범!' 유명한 전통이죠.
이것의 元祖가 바로 '채 명신'장군께서 동란 기간 중이던 때, 美 第ⅹ軍團 휘하의 강원도 양구에서 제20사 제60연대장 시절; '채 명신'대령이 시범을 구상.기획.실시하여 美軍들에게도 보여주자; "한국 산악 지형 조건 하에서의 '步.戰.砲 협동작전 敎理'로써 아주 좋다!" 美 第10軍團長 '화이트' 中將이 휘하 전 師團들의 간부들에게 再 示範, 擴大 參觀/見學케 하면서, 한국 산악지형에 부합되는 교리 개선/창안에 극찬을 받아, 그걸 상무대 戰敎司에서 주관하여 각 병과학교에서 피교육자 학생들에게도 '敎理 補給 傳播'켸끔 되어져, 교육 목적으로 매년 시범토록 전통화된 것이라 함! ,,. 총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死線을 넘고넘어{채명신 회고록}】은 YS 중기 경, '주간 매경{매일경제신문 자매지}'의 '원로 교우기' 연재가 종료되자, '노 성우'기자가 이를 보완하여 單行本 3차 발행! ,,. 내용 망라 기간은 1945.8.15 해방 직후 '김 일성'과의 만남'으로부터 시작 ~ 미국 지휘참모대학 유학!" 까지 VIET-NAM 파병 직전을 포함! ,,. 손에 쥐면 단 3일 이내에 독파 완료 가능! ,,. 9개(?) 단원인데 가장 압권 3가지를 선택하라면; '적진 탈출 3천리', '백골 병단의 사투', '5.16' 이며; 2가지를 추가하라면 【휴전 후'{'김 창룡'과의 살얼음판 대결, 논산 제2훈련소 밀가루사건 구속, 제3군단장 '송 요찬' 중장의 작전 참모 시절}】 【제주 4.3사태】의 2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아마도【태백산 공비 토벌 작전】이나【지연전】, 또는【제7사단 제5연대】를 거론하실 수도,,. - - - - - - - 가장 압권은【백골 병단】이나【적진 탈출 3천리】겠는데, 저는 【적진탈출 3천리】입니다! ,,. ^*^ 9개 단원 모두가 흥미 진진 & 아아 아슬! ,,. 가장 슬픈 내용은【백골 병단】에서 생포되어져 자결케 된 대남 빨치산 총책 '길 원팔'중장의 유언대로 3남매를 대동 아군 전선으로 남하타가 어린 소녀 몸이 열병처럼 뜨거워지면서 죽어갈 때 2미터가 넘는 눈속에 묻고 ,,. 꼭 일독을 권장! ,,.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강남고속뻐쓰터미널역 500미터} 비치 도서로 확보중. 여불비례, 총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 눈시울이 뭉클한 슬픈 이야기 또 1가지 있! ↔ '채 명신'대령님이 江原道 楊口 서측방 北漢江에 인접한 華川 제7사단 제5연대장 시절에! 그 北漢江 동측방에 인접한 제5사단 제36연대에는 이남 유일 혈육 친동생 '채 명세'가 以北 평양師範學校 졸업 후 敎師로서 국민{초등}학교 교편을 잡고 있다가, 탄압을 받아, 사선을 뚫고 결사 탈출 南下; 경남 부산 동래에서 '국군종합학교'에 시험 응시 합격, 소위로 임관, 제5사단 제36연대에 배속, 근무하면서 백방으로 형의 행방을 수소문, 군사우편을 발송했고 , 전시 휴가를 받아 華川으로 親兄을 面會 옮! ,,. 복귀 1달 후에 인접 제5사단 제36연대장 '오 창근'대령{육사교 # 2기}로부터 질타성 전화를 받! ,,. 친동생이라고 아무 연락도 없어 신상 정보를 전혀 몰랐었다면서, '전사'했다고 통보, 죄송하다면서,,.! 밀고 밀리는 江原道 楊邱 ↔ 麟蹄 ↔ 束草 ↔ 高城 지구 전투에서 戰死!, 최말단 소총소대장이던 '채 명세'소위는 6.25 참전자 묘역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