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비바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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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바람 작성일13-11-13 00:47 조회3,031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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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총회에서 필리핀 수석대표가 태풍 하이옌의 피해를 입은 필리핀에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면서 눈물의 연설을 했다고 한다, 필리핀의 피해는 2004년 발생했던 인도양 지진해일 피해규모를 능가한다고 한다, 눈물의 호소 덕분인지 필리핀에 국제사회의 손길이 이어진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인 느낌이다,
내가 사는 제주도는 태풍이 많은 지역이다, 내 필명이 비바람인 것도 태풍과 관계가 있는 이름이다, 몇 년 전 나리 태풍이 제주를 방문했을 때는 태풍의 위력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급류로 변한 복개도로에는 차량들이 떠내려가고, 아랫쪽에서는 떠내려가던 차량들이 담장을 부수고 집안 거실로 들어가기도 하고, 떠내려온 차량들이 흡사 폐차장처럼 산더미를 이루기도 했었다,
아마도 필리핀이 하이옌을 오래동안 잊지 못할 것처럼, 제주도에도 잊지 못하는 태풍이 있는데 바로 사라호 태풍이다, 내가 태어나기 몇 년 전에 사라호는 제주를 방문했다, 그래서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소시 적에 비바람이 거세어지는 날이면 부모님은 예외없이 그 때 그 사라호를 언급하곤 하시면서 몸서리를 쳤다,
사라호는 1959년 9월 16일 제주를 덮쳤다, 9월 16일은 추석 전날로 '맹질떡 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불어대던 비바람은 저녁때부터 악마로 변했다, 사라호는 악귀처럼 날뛰면서 진흙집에 짚으로 지붕을 덮고 사는 초가집 마을들을 유린했다, 창호지 문은 쓸모가 없어져 방안으로 굵은 빗방울과 거센 바람이 날라들고, 초가지붕은 힘없이 벗겨지고, 지붕 위로는 부서진 문짝들이 날라 다녔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태풍에 특화된 마을이었다, 담장은 무거운 돌담으로 만들고, 지붕은 새끼줄을 단단히 꼬아 가로 세로로 촘촘히 덮어, 그야말로 비바람이 상습적으로 치는 섬에서, 비바람과의 전쟁을 위해 완전 무장을 하고 사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사라호는 이런 원시적인 방패들을 비웃으며 제주도를 초토화시켰다,
해마다 두어 개에서 서너 개 까지 태풍은 제주를 방문했다, 고요한 마을에 비바람이 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전깃줄은 귀신처럼 울부짖고, 나무들은 머리를 풀어헤쳐 몸부림치고, 몇집 건너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는 진군하는 군마들의 말발굽 소리로 들렸다, 태풍은 전쟁이었다, 비바람은 내 유년의 아이콘이었고, 제주도의 모습이었고,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그 섬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사라호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사망자 849 명, 부상자 2500여 명, 이재민 37만 3459 명을 남겼다, 사라호는 우리나라에 비바람을 몰고 온 손님 중 가장 규모가 큰 태풍이었고, 역대 가장 많은 피해를 남긴 태풍이기도 하다, 1959년은 초가집과 판자집의 시대였다, 이런 것들은 태풍과 겨루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것들이었고, 태풍의 먹잇감으로 딱 좋았다,
필리핀의 태풍 피해가 막심했던 이유 중의 하나에는 필리핀의 후진성도 일조를 했다는 생각이다, 대리석 건물보다는 판자집이 태풍에 취약한 것은 불문가지, 필리핀에 목제건물이 많았던 것은 태풍 피해를 키운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하이옌이 덮친 지역에 전부 석조건물이나 빌딩들이 들어서 있었다면 당연히 피해는 지금보다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라호가 찾아 왔을 때 우리는 세계의 최빈국에 속했다, 그때 필리핀은 아시아의 선진국이었고 6.25 참전국이기도 했다, 필리핀의 기술자들이 장충체육관을 지었고, 1966년에는 박정희가 돈을 빌리러 필리핀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 때 박정희는 '우리 대한민국도 필리핀처럼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게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라호가 우리를 찾아오고, 하이옌이 필리핀을 방문하기까지 약 두 세대가 흘렀다, 하이옌의 필리핀의 모습은 사라호의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두 세대 만에 두 나라의 모습은 정 반대쪽에 서있는 것이다, 우리는 초가집의 나라에서 대리석의 나라로 탈바꿈을 했고, 필리핀은 판자집의 나라로 국내총생산 세계165위로 후퇴를 했다, 결정적으로 우리에게는 박정희가 있었고 필리핀에는 박정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라디오가 생기고부터 부모님은 태풍예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불시에 기습을 받는 것보다 전투에서 유리했다, 태풍예보가 내려지면 부모님은 초가지붕 위에 무거운 것들을 올려놓거나 끈으로 더 동여매기도 하셨다, 바람에 날라갈 만만 것들은 안으로 옮겨놓고, 창호지를 바른 문에는 비닐을 씌우거나 멍석을 대기도 하셨다,
이런 원시적인 무기를 들고 비바람과 싸우는 민초들 앞에 지도자가 나타났다, 박정희는 그런 방법을 쓰지말고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석조건물을 짓는 방법을 알려줬다, 석조건물을 짓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 그것은 열심히 땀을 흘리는 '근면'이었다, 박정희는 근면이라는 하나의 무기로서 굶주림을 물리치고 인간을 괴롭히는 자연재해를 물리쳤다,
필리핀에 목제건물 대신에 대리석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면 피해는 훨씬 줄었을 것이다, 필리핀에도 박정희가 있었다면 1만여 명 이상이 사망하는 저런 대참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가 사리사욕을 탐했다면 우리도 필리핀을 닮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이익이나 명예보다 언제나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를 선택했던 박정희가 있었기에 우리는 어지간한 태풍에 코웃음을 치게 되었다, 박정희가 있었기에 대리석 건물에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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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blog.daum.net/juoh79/4590
'필리핀'은 1950.6.25 때, 우리를 도와줬었던 UN군이었는데, '태풍'으로 많은 고통을 겪는 보도에 맘이 편치 않읍니다. 우리도 '10匙(시) 1飯(반)' 격으로 뭐든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필리핀'은 '막사아사이'대통령상도 있었을 정도로 부유한 나라였는데 빨갱이들이 집권한 뒤부터 빈국으로 급전직하!,,.
'비바람'님의 비교.대조에 공감합니다! '필리핀'에는 '박 정희'같은 지도자가 없어서 이런 自然 災害가 속수무책으로 반복/크다는 표현에요! ,,. 각설코요; 1960.4.19 데모 사태도 선거투표부정이 어니고, 사실은 1959년 발생했었던 '颱風 SARA號'에 의한 재해로 말미암은 민생 경제 파탄에 의해, 오히려 정치/투표 무관심했었지, '부정 선거 함수 관계'는 없었다죠. ,,. 마산 사태 '김 주열'군도 全北 南原에서 慶南 馬山까지 친척집 고교 유학와 눈치밥 먹는 주제에 '데모'라는 것도 있을 수도 없었고; 순진한 학생을 유인, 눈에 최루 총류탄을 눈에 꼽아 쥑이고, 경찰이 저능아처럼 부둣가에 돌을 달아 屍身을 유기 했다면서; 시체.송장 놀음으로 데모를 선동.재연시킨 빨갱이.간첩들의 천인공로할 조작.날조극! 청계천 '전 태열'군처럼 ,,. 빠드~득! /////////// 여불비례, 총총.
소리국님의 댓글
소리국 작성일
비바람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시스템 클럽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않아 어떤분이 어떤분인지 잘 알지못하는 사람입니다. 만 오늘
이렇게 선생님께서 피력하신 글을 읽고 알게되었습니다. 아마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것 같네요.
선생님의 구구절절한 말씀에 동감하면서 저도 옛일이 잠겨봅니다.
사라호 태풍땐 저는 서울 중랑천 뚝방에 살았으며 뚝을 사이에두고 있는 중화동 일대의 양옥집들이 반 가까히 물에 잠겨 있었으나 제주에 비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죠 그리고 한 15년후에 피난살이 했던 경상도를 찾아갔는데 地理를 몰라 한참 헤메인적 있었습니다. 이유는 흐르던 강물줄기는 헌적없이 사라지고 언덕이 되어 있었고 모든 지리가 변해 있음으로 인해서 그제서야 과연 사라호태풍이 얼마나 무참하게 했나하고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제주도에도 얼마나 큰 타격과 실망을 안겨주었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네요
또한 박정희 전대통령각하님께서도 우리국민과 다를바 없이 고생많이 하셨다는 것을 잘 압니다.
나라에 가뭄들기라도 하면 속이 터져 창가에서 밤새도록 담배만 태우셨는데 세갑씩이나 태우셨다네요 또 태풍이 몰아치면 흔적도 없이 나라살림이 씻겨내려가곤 하는 대한민국을 일으키시느라 땜이며 국방이며 온갖시련을 겪으시며 한 시대를 이끌어 오신분의 공덕이야 말로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는 것을 우리세대는 압니다만 지금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빨갱이 천국이 너무나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 당시 군에 있었는데 제가 모시던 장군님댁에 휴가차 잠시 머물고 있었는데 밥상에 보리밥이 올라오더군요 이유는 대통령각하님 뿐만아니라 온 국민이 보리고개 직면하고 있는데 쌀밥이 어디 가당치나 하시냐면서 그래도 휴가중이니 쌀이 조금 더 넣어 짓는다고 하시더군요 정말 그당시엔 그리도 어려운시대였지만 지금은 다 옛추억으로 묻혀버린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 새대에 알아 달라 또는 인정해 달라는 것도 아니요 다만 이토록 어렵게 일으켜세운 대한민국땅에 빨갱이 천국만은 되지않길 바랄뿐인데 어쩌다 이렇게 까지~~~~
본 시스템 클럽에서 선생님의 게시글을 읽고 감동받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는데 오늘에서야 비바람선생님이 어떤 분이 신지 보이지 않으셔도 알것같습니다.
그리고, 비바람! 선생님 언젠가 선생님을 뵙게되면 조촐한 식사라도 같이하고 싶습니다.
선생님 항상 건강해 주세요
나라를 위하는 마음 항상 존경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