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을 맞이하여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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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고아제 작성일13-10-26 17:11 조회3,110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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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언젠가 추도식에 참석했는데 추도식 행사가 끝나고 유족들이 참배를 하러 오기전
박근혜 대통령의 참배 모습을 찍으려고 먼저 올라 가 있었을때 찍은 사진이다.
얼굴은 찍히지 않았는데 아마 박정희 대통령을 매우 존경하는 분으로 보였다.
사실 유족들 참배 순서가 끝나면 일반인들 참배가 있었기에 그때 하면 되는데 저 분은 그 전에
조용히 올라와서 신발을 벗은채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엎드려 예를 갖추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 살아 생전에 은혜를 많이 받았든 분인 것 같았다.
엊그제 거래처 사장과 술을 한잔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사장은 골수 민주당 편이다.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정쟁을 좀 하는 사이다. 그렇다고 주먹이 오가는 사이는 아니고.
말싸움을 하다가 금도를 넘을 정도가 되면 '나는 사장님하고 정쟁을 하면 같은 편끼리 하는 것 보다 싱겁지
않아 재미있다고' 웃어 넘긴다.
이 사장이 나한테 '당신은 왜 박근혜가 좋소?' 하더라.
그래서 나는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요약하면 '우리 아버지는 머슴살이를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과
애국애족 정신이 없었으면 우리 가족들 지금도 사람 구실 못하며 살 것이다. 그런데 철 들어서 박정희 대통령께
고마움을 표시 하려니 그 분은 안계셨다. 그래서 박근혜를 좋아하게 됐다. 그런 아버지의 딸이라면 나라를
잘 운영할거라 믿었다. 2004년 탄핵 정국으로 한나라당이 망해갈때 전부 도망갔다.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대표를
맡아 "어떻게 이룩한 나라인데 IMF로 국민들이 고통 받게 됐나" 하며 한나라당을 살리고 대한민국을 살렸다.
민주당은 남을 헐뜯어서 정권을 차지하려 하는 생각 버리고 국민을 위한 정책 대결로 싸우라고 해라.'
위 사진은 액자를 찍은 것이다.
다른 사진도 많이 있지만 그 중 하나인 위 사진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국민 사랑이 보인다.
들고 있는 것이 통일벼일 것이다.
통일벼 개발로 수천년 이어져 내려오든 보리고개를 극복한다.
난 가끔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농담으로 대한민국이 이렇게 된 것은 5년 단임제 때문이라고 한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5년이기 때문에 대통령 되고 처음에는 잘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여러가지 문제에 부딛히고 특히나 야당의 발목잡기가 심해지면 '대통령 평생 할 것도 아니고
고작 5년인데 뭐할려고 애걸복걸 고생하나? 편하게 대충 5년 보내다가 좀 챙겨서 나가면 되지...'라고 생각 하는 것 같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더라도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 보고 '당신, 대통령 평생 할 것도 아닌데
뭘 그리 빡빡하게 그러나?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식으로 적당히 하자..."하고 있다.
북한의 비대칭 무기 중에 강력한 것이 한번 잡은 최고 권력 자리를 평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를 운영해 가는데 엄청나게 유리하다. 김정은이 생각 하기를 '박근혜 저거 우리말 안듣네.
그래, 5년만 버티자. 네가 아무리 그래도 5년이면 끝나지 않느냐. 다음 정권에 하면 되지...'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대통령 자리 지키며 혼자만 잘먹고 잘살려 했으면 그렇게 허망하게 생을 마감 하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다. 그 분은 오지랖이 넓었다. 국민들과 같이 잘먹고 잘 살려 한 것이다.
대한민국이 혼란 한 것은 오지랖 넓은 정치 지도자가 없어서이다.
죄다 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려 하고 있다. 그러니 민생은 내 팽개친채 상대를 헐뜯는데만 몰두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기일을 맞이 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가졌든 애국애족 정신을 가진 정치지도자를 기대 해 본다.
댓글목록
proview님의 댓글
proview 작성일5년은 너무 짧아요 반듯한 대통령이 나오면 재심을 국민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전두환의 큰 실수입니다.
조고아제님의 댓글
조고아제 작성일
사실 저는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 하고 난 다음날 새벽에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 국민들도 27일 새벽부터 알게 되었지만요.
그 날 따라 다른 날보다 일찍 잠을 깨서 평소 습관처럼 라디오를 켰습니다.
그런데 장송곡이 계속 나오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 했다는 멘트가 나오더군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별다른 감정이 없었습니다.
학교에 가니 군인들이 교문을 지키고 있었고 돌아 가라 해서 그 길로
고향 사천으로 내려 갔었죠.
서거 하든 1979년 아마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있었든가 봅니다.
아버지가 전화 해서 동네 이장이 너 투표 하러 안오면 가만 안 두겠다 하니 꼭 내려 와서
투표하라 해서 충북 충주에서 경남 사천으로 투표하러 갔습니다.
가난한 우리집 형편에 왕복 교통비도 무시 못할 것이었습니다.
기분도 안 좋고 해서 다 해쳐 먹어라 하면서 후보들 다 찍어 줬습니다. 무효표가 됐을 겁니다.
그 뒤 철이 든뒤 생각 해보니 박정희 대통령 살아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 투표를 그렇게 무효표를
만든 불충한 놈이 되 버린 겁니다.
2004년 탄핵 정국 전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별 다른 감정이 없었습니다.
최병렬 대표가 물러나고 박근혜 대표 체제로 가면서 대한민국의 위기를 느끼기 시작 했습니다.
기나긴 힘든 시간이 지나고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 받아서 어머니,어버지를 여의고 떠나왔든 청와대로
다시 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내 자신 박정희 대통령 내외와 대한민국을 위해 조금이나마 이바지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그 당시에 저는 지방공무원을 했었지요
시골에서....
정보가 조금 빠르긴 했지만...
그게 별로 큰 도움이 못 됐었지요
좋은 이야기가아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