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무엇인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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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빵구 작성일13-10-26 12:10 조회3,257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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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8일 새벽부터 광주시내에는 공수부대가 전라도 씨를 말리러 왔다고 소문이 퍼졌고, 아침 9시반에는 미리 가방에 짱돌을 넣어서 공격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공수부대에게 선공을 했고, 지원부대가 출동하자 바로 시내로 튀쳐나가 " 학생 백여명이 이미 사망했다." 고 유언비어를 퍼트렸습니다. 단, 한명도 죽은 사람이 없었던 518 초기에 벌써 이런 유언비어가 살포된 것은 이미 작전계획(소위 작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수사기록에 의한 5월21일 사건을 박사님께서 꼼꼼하게 적시하셨지만, 5월21일 그런 사건이 있기 전 이미 19일부터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20일 부터는 칼빈에 의한 살인사건이 저질러지고 그것이 공수부대에 의한 살인으로 왜곡 선전하는 특수전을 시작을 했었습니다.
그럼 어디서 누가 어떻게 누구에게 이런 작계를 지휘 감독해서 518을 성공시켰는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 대답은 바로 광주공원이라고 단정합니다. 광주공원에서 북괴요원들이 단파송수신기로 북괴와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자신들이 공공연하게 이야기를 했고, 외국인 비디오에 촬영된 연고대생 600명에게 지시를 내렸고, 연고대생 600명은 이 지시대로 20사단 계엄군을 습격했고, 무기고를 털었고 공수부대원을 깔아 죽였고, 교도소를 습격했습니다.
이 광주공원은 무기고를 털때, 무기 수집소로 이용되었고, 시민군 훈련소로 이용되었고, 공수부대가 도청에서 철수했을때 도청 접수를 한 시민군 집합소 였습니다.
각종 수사기록은 분명히 조직적이고 관리적으로 시위 정보가 수집보고되고 분석되고 지휘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기록이 되었는데, 바로 그런 곳이 광주공원이었습니다.
5월18일 광주공원에서 있었던 시위는 폭력성 시위가 아니라 광주 모든 붉은세력들에게 신호를 올려 주었던 점호성 시위였습니다.
이런 기록을 입증하려면, 당시 경찰서 업무일지나 계엄분소의 업무일지를 분석해 보면 잘 알수가 있다고 봅니다.
댓글목록
좀웃어요님의 댓글
좀웃어요 작성일
#울나라 지도자들은 쓸개가 없는 빙신들이야
#김일성.김정일이에게 그리 당하고도 돈이나 퍼주고
#비위나 맞추고 ,돈이나 받아먹고 ,지만원 박사보다 아랫것들로 보임니다
proview님의 댓글
proview 작성일광주공원에 시계탑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라도 사람한테 들은적이 있는데 그곳이 어떤 친목계 모임이나 큰 행사를 계획할때 주로 이용하는 장소가 광주공원이라는 하더군요 광주사태를 떠나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