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인민군 검사 채동욱과의 역사논리 전쟁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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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사논객 작성일13-08-25 18:10 조회2,759회 댓글1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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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7일 드디어 광주시민들이 광주해방구 지배자들의 압제에서 벗어났으며 광주해방구 기간 동안 생필품 부족에 허덕이던 시민들이 계엄군의 도움으로 생필품 배급을 받기 위해 배급 장소로 모여들고 있었으며, 무장폭도들이 근 열흘간 어지럽힌 시가지의 쓰레기 잔해들을 계엄군 병사들이 치우며 깨끗이 청소해 주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광주시민들도 계엄군 장병들도 전두환이 누군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떤 시민은 전두환이 민원 처리 불만의 표적이 된 광주시청 공무원이려니 추측하고 있었고, 광주 번데기공장 사장이 전두환과 동명이인인 줄 모르고 있던 시민들은 시위대가 번데기공장에 무슨 불만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하였을 뿐이었다.
계엄군은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고, 사진기자들은 광주사태가 끝나는 순간을 열심히 촬영하고 있었는데 청소하던 계엄군이 피켓을 발견하고 읽는 순간을 재빨리 기자가 카메라에 담았다. 군인도 초급장교들과 사병들은 아직 전두환이란 이름 석자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던 때였기에 광주시민들처럼 이 병사들도 전두환이 광주사람이라는 인식 하에 상황을 파악하려 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갑자기 독서욕에 사로잡혔던 것도 아니고, 피켓 내용이 재미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세상에 저런 별난 글귀도 있는가 하는 호기심이 그들의 시선을 피켓에 집중케 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전두환 대갈통 세멘트 바닥에 깔아 버리자"고 북한글씨체로 써 있었다.
광주시민들이 전두환을 광주에서 전씨 성을 가진 사람들 중 하나로 인식하고 있던 때에 "전두환 대갈통 세멘트 바닥에 깔아 버리자"고 외친 자들은 폭도들이었다. 문명인은 그 누구도 저런 잔인한 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폭도들이 저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 그 폭도들은 북에서 온 손님들이었는가 아니면 한국말을 모르고 북한말을 구사하는 자들이었을까? 아래의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보이듯 북한글씨체로 피켓을 만든 폭도들은 '시멘트'라는 한국말이 아닌, '세멘트'라는 북한말을 쓴다. 그들은 한국말을 모르는 폭도들이었는가 시위구호에서까지 북한말을 쓰는 종북세력이었는가?
폭도의 구호를 외치는 폭도들이라고 다 똑같은 폭도들은 아니었다. 전두환이 전씨 성을 가진 광주시민이려니 여기고 맹목적으로 북한말 구호를 따라외친 폭도들도 있었고, 시민군을 원격조종할 목적으로 저 피켓을 제작한 외지인 폭도도 있었다. 그리고 저 구호는 저 멀리 북한에서 온 불청객이 심심해서 말장난하는 구호가 아니라, 시민군 군사작전 구호였다. 황석영의 5.18 책이 기록하고, 납북 여배우 최은희가 증언하듯 서울로 진격하려는 시민군 군사작전이 짜여져 있었다. 도대체 광주의 무장폭도들이 서울로 쳐들어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그들에게 살인 목적이 있었으며, 그 살인 대상이 서울에 있었다. 단지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함이었는가? 아니다! 그 궁극적인 목표는 남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어느 사회에서 재판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어떤 인물의 머리를 세멘트 바닥에 깔아 버리면 바로 그 순간 그 사회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전복된다. "아무개 대갈통 세멘트 바닥에 깔아 버리자" 구호는 법치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무장폭도들이 전두환 머리를 세멘트 바닥에 깔아버린 다음 어떻게 하자는 것이었는가? 아래 사진에서 시민군 트럭 범퍼 위에 걸린 현수막에서 보는 것처럼 그들의 목적은 그를 찢어 죽이는 것이었다. 민주사회에서 한가지 불가능한 것은 사람을 찢어 죽이는 것인데, 그들은 민주사회에서 도저히 불가능한 범죄를 저지르겠다고 하였다. 왜 우리가 민주주의를 선택하였는가? 그것은 사람을 찢어죽이는 옛날 왕정 혹은 봉건국가들의 형벌이 다시는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사람을 찢어 죽이자는 말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겠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채동욱과 최환이 무장폭도들이 사람을 찢어 죽이려 했던 것을 헌법기관의 행위로서 간주하고 5.18재판을 진행하였을 때 그들은 민주주의 국가의 법을 거꾸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찢어 죽이지 않는다. 사람을 찢어 죽이는 자는 이미 인간이 아니라 드라큐라 혹은 흡혈귀이다. 5.18 진영에서는 5.18 사건 때 광주에 살인미가 있었다는 주장을 해 왔다. 사람을 찢어 죽이는 자, 곧 드라큐라 혹은 흡혈귀가 살인마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면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분명 5.18 사건 때 무장폭도들이 외친 구호는 "전두환 찢어 죽이라"였는데, 5.18 재판 때 그들이 민주화운동을 한 것이라는 주장이 등장하였다. 흡혈귀가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그런데 흡혈귀를 위한 민주주의가 가능할 수 있는가? 아니다. 민주주의와 흡혈귀는 공존하지 못한다.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흡혈귀가 설 자리가 없으므로 흡혈귀를 위한 민주주의라는 것은 가능할 수 없다.
5.18 사건 당시 광주에만 사람을 찢어 죽이려 하는 살인마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북한에도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북한에 있는 살인마의 구호도 "전두환 찢어 죽이라"이다. 그러면 북한과 광주 어느쪽 살인마 구호 글씨가 원작인가? 물론 북한에 있는 살인마의 구호가 원작이다. 광주의 살인마들은 북한말 살인마의 구호를 한국말로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베꼈다. '죽이라'는 북한 말이다. 만약 북한 살인마의 구호가 "죽여라"라면 이것은 남한말 살인마 구호를 북한이 베껴간 것이 된다. 그러나, 위 사진과 아래 사진을 비교해 보면 북한과 광주 양쪽에서 북한말 구호를 사용하였음이 자명하다.
현수막에 박힌 시위구호가 한글 표기도 북한 표기법을 따랐으며, 글씨체도 북한 글씨체를 따른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물론 광주에서 미리 제작된 현수막도 있었고, 광주사태 기간 동안 제작된 현수막도 있었으나, 위 두 장의 사진에서 보는 현수막은 시민군으로 위장하고 침투한 인민군이 공급한 것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설명이 불가능하다.
민주화운동은 북한에서 불법이다. 만일 사람을 찢어 죽이는 것이 민주화운동이라면 시민군을 원격 조종하던 인민군이 저런 구호를 지정하여 주었을리 만무하다. 그러면 왜 저런 구호를 지정하여 주었는가? 북한에서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 할 때 그 방법은 무엇인가? 그 방법은 남한의 종북세력이 살인마 언어를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어느 사회에서 재판 없이 사람을 찢어 죽이면 그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와해된다. 살인마들의 잔인성이 한 사회를 지배하고 재판 없이 사람을 찢어 죽이는 처형을 할 때 그 사회는 더 이상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바로 그것을 노리고 인민군이 시민군에 저 구호를 지정하여 주었다.
만약 어느 나라 국민에게 사람을 찢어죽이는 잔인성이 있다면 그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미국의 힐러리 국무장관은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제가되면 민주화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지원한 폭탄 폭격으로 부상당한 카다피의 가장 아픈 신체부위를 무장폭도들이 찢어 죽이는 잔인성을 보였을 때 힐러리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무장폭도들이 카다피를 잔인하게 죽인 후의 리비아는 무장폭도들의 총이 지배하는 나라, 그래서 민주주의가 불가능해진채 치안이 점점 불안해지고 경제가 날로 몰락하는 나라가 되었다. 카다피의 경우 비록 신체의 한 작은 부위가 찢긴 것이지만 그래도 무장폭도들이 국가 지도자를 찢어 죽이는 나라에서 선거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더 이상 헌법에 의한 통치가 불가능해지고, 무장폭도들의 총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나라에서 선거가 무슨 의미가 있었는가? 5.18 사건 때도 무장폭도들이 사람을 찢어 죽이자는 구호를 북한말 북한글씨로 쓴 현수막을 내걸고 그 북한말 구호를 악을 쓰며 외쳤을 때 그들을 원격조종한 세력의 의도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무장폭도들이 흡혈귀들의 말을 쓰며 사람을 찢어 죽이자고 고래고래 외친 것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는가? 바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자들이요, 5.18사기꾼들이다.
지난 8월 22일자의 동아일보 기사는 지금이라도 종북세력이 요청하면 북한이 전시상태를 선포해 주기로 했음을 보도하였다. 바로 그것이 광주사태 직전에 종북세력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와 북한 사이에 오고간 밀거래 합의가 있었다. 무엇이 폭동인가? 만약 무장시위대의 의도와 목표가 재판 절차 없이 사람을 찢어 죽이는 것이었다면 그것이 바로 폭동이다? 무엇이 절대로 민주화운동이 아닌가? 만약 무장시위대의 의도와 목표가 재판 절차 없이 사람을 찢어 죽이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절대로 민주화운동일 수 없다. 인민군이 시민군에 사람을 찢어 죽이라는 구호를 지정하여 준 것은 민주주의 체제가 무너질 만큼 사회를 극도의 혼란에 빠뜨리려는 심리전의 일환이었다.
광주의 단체들이 이런 5.18기록물들을 2011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모든 기록물은 그 원작자가 밝혀질 때 값어치가 있다. 그러면 어째서 광주의 단체들이 그런 세계적으로 자랑스러운 5.18기록물들 원작자들을 밝히지 못하는가? 북한말 북한 글씨체 구호 "전두환 찢어 죽이라"가 누구의 작품이며, 재판의 절차를 걸치지 않고 시위군중을 흥분시켜 사람을 찢어 죽이려 했던 자의 철학이 무엇인지를 말하여 주지 않는가? 철학 없는 구호는 앵무새도 외칠 수 있다. 원작자가 누군지 알아야 원작자의 철학을 알며 말할 수 있다. 5.18시위구호 및 성명서 기록물들의 원작자를 밝히지도 못하면서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것은 실로 가관이 아닌가?
누가 인민군 검사인가? 인민군 부역을 하는 검사가 바로 인민군 검사이다. 인민군이 지정해 준 구호를 악을 쓰며 외친 무장폭도들이 헌법기관이라는 법리를 만들고 적용하여 5.18재판을 진행한 검사가 바로 인민군 부역을 한 검사이다. 사람을 찢어 죽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은 단순한 살인마 구호 합창이 아니다. 이것은 한 인격을 살인하는 폭력이다. "전두환 찢어 죽이라"는 인민군 구호의 경우 그 폭력의 희생자는 전두환이다. 그런데 5.18재판 법관들이 인민군 구호를 외친 무장시위대는 헌법기관이라는 판단을 하였을 때 그들은 인민군에 부역한 것이다. 인민군 구호를 외친 무장시위대가 헌법기관이라는 법리가 뚝딱 만들어진 후에는 그 구호 폭력의 희생자는 헌정질서문란이라는 올개미가 씌어진다. 인민군 구호 폭력 희생자에게 그런 올개미를 씌우는 것은 인민군 검사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채동욱은 인민군 검사였다.
북한세력과 종북세력이 늘 전두환을 죽이려 하였다. 여전히 인민군 검사를 비롯한 종북세력이 죽이려 하는 전두환은 누구인가? 그가 누구기에 북한세력이 그를 제거하려 하였는가? 1980년 5월 하순 북한이 남한의 살인마들, 즉 종북세력을 이용해 남한에 종복정권을 세울 경우 모두 굴복하겠지만 단 한 명 굴복하지 않을 인물이 바로 전두환이었다. 그는 국가를 위해서라면 자기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인물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직후 군사반란을 일으키려 하였을 때 모두 벌벌 떨고 있었으나 단 한 사람 전두환이 김재규의 군사반란에 정면 도전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12월 12일에 일어난 김재규 부하들의 군사반란도 국가관이 분명하고 투철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애국 군인들의 구심점이었기에 제압될 수 있었다, 그 날 밤 갑자기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영관급 장교들에게 최규하 대통령 공관을 대포로 포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영관급 장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 명령에 복종하여 대통령 공관을 포격하면 나라가 망한다.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지 두 달도 안되어 이번에는 김재규의 부하가 대포를 쏘아 후임 대통령을 시해하면 나라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고 안보의 구멍이 크게 생겨 북한군이 즉시 남침할 것이 뻔하였다. 그래서 우물쭈물하는 영관급 장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장태완 수경사 사령관이 내리고 있었다.
그 정황을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 최규하 권한대행이 대통령 취임을 12일 남겨두고 있었으므로 아직 총리 공관에서 지내고 계셨다. 대통령 취임식 직전의 그의 공식 호칭이 권한대행이었든 대통령이었든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국군 최고 통수권자였다. 그리고 수경사 사령관의 첫째 임무는 국군 최고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 주변을 경비하여 그를 수호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을 지키는 바로 그 임무를 위해 수경사 사령관직에 임명받은 그 지휘관이 대통령이 거주하는 공관을 포격하라는 명령을 전차부대에 내렸다. 그 명령 계통이 헌법이 정한 국군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이 하달한 명령인가? 대통령이 자기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공관 포격 명령을 수경사 사령관에게 지시하였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 장태완 장군이 국가원수에 반역하는 것이며, 국가원수에 대한 반역은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러면 영관급 장교들이 대한민국에 반역하는 장 장군의 명령에 복종하여 전차부대에 총리 공관 포격 명령을 내려야 하는가? 잘못된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우선인가 아니면 그런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인가? 장태완 장군의 성미는 급하였으며 포격 명령에 빨리 복종하지 않는 장교들은 반란군이니 즉시 사살하라는 또 다른 명령이 내려졌다. 이런 때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이것은 영관급 장교 한 두 명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장 사령관의 명령이 잘못된 명령이라 판단하여 불복하는 한 두 명의 장교들은 즉시 사살된다. 대통령 공관 포격 명령을 거부하면 반란군인가? 수경사 장교들의 임무가 대통령 공관 경비인데 공관 포격 명령을 거부하면 반란군인가? 그래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 신속하게 입장을 정하기 위해 영관급 장교들끼리 신속한 의사소통이 있었다. 수경사가 대통령이 계시는 공관을 포격하는 것은 넌센스라는 데는 갑론을박이 없었다. 국가가 수경사 장병들에 부여한 임무는 대통령 공관 보호이지 포격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만한 사실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 공관을 포격하라는 장태완 사령관의 명령이 육군본부의 명령인가 혹은 장군들 전체의 명령인가를 알아야 했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 만약 대통령 공관 포격이 장군들 전체의 결정이라면 그것을 영관급 장교들 선에서 거부할 권한이 없었다.
이것이 곧 수경사 장교들뿐만 아니라 수도권 장교들이 함께 안아야 할 고민거리가 되었다. 장태완 장군이 김재규와 정승화 라인에 있는 군지휘관들에게 그들의 부대도 출동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김재규 군부를 형성하는 수도권 부대 군병력들이 이동하자 이것이 곧 이희성 대장의 문제가 되었다. 이것은 총리 공관 포격보다도 훨씬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였다. 김재규 부하들이 병력을 출동하면 그 반대 편에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장태완의 연락을 받고 병력을 즉각 출동한 지휘관들도 있었지만 깊은 고민에 빠진 지휘관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살며시 선배 이희성 대장에게 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옳은지 물었다. 이희성 대장도 혼신의 힘을 다해 각 부대 지휘관들에게 병력 출동 자제를 요청하였다. 이미 병력이 출동한 부대들도 있었으나 영관급 장교들끼리의 신속한 연락으로 영관급 장교들의 입장이 정해졌다. "이번의 장태완 수경사 사령관의 명령은 무모하다." 그리고 그들은 장군들 입장이 두 진영을 나뉘어 있음도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 김재규와 정승화 라인의 장군들이 있었고, 대통령 공관 포격을 저지하는 장성들 중심에 전두환이 있었다. 영관급 장교들만으로는 대통령 공관을 포격하라는 상관의 명령에 불복할 권한이 없어 장군들 중 지도자가 필요하였는데, 이 사태가 장태완과 전두환이 정면 대결하는 사태라는 것이 알려지자 영관급 장교들은 전두환을 지도자로 선택하는 것으로 입장 정리가 된 것이 12.12 사태였다.
이 선택은 영관급 장교들의 선택이었지, 전두환의 선택이 아니었다. 병력이 없는 전두환의 합수부가 김재규 부하들의 부대에 몇 겹으로 포위되어 있었다. 이 부대들 지휘관들은 김재규 부하들 혹은 김재규와 정승화 인맥의 장군들이었다. 전두환으로서는 김재규 부하들 부대 영관급 장교들이 갑자기 자기 지지를 할 것은 예상도 할 수 없었고,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노재현 국방장관의 행방불명으로 정승화 총장 연행 재가가 지연되어 뭔가 꼬이고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는 듯하였는데, 뜻밖에도 김재규와 정승화 라인의 부대들의 영관급 장교들의 선택과 단합된 행동이 그 난국을 타개해 주었다. 이미 출동한 김재규 부하 부대들이 있었으나 전두환 체포 명령을 받은 장교들이 오히려 그 명령자를 체포함으로써 상황이 끝났으며, 이희성 대장이 노심초사 우려하던 아군끼리의 전투 상황이 없었다. 실로, 12.12 사태의 진정한 영웅은 영관급 장교들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이런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대통령 공관을 포격하며 전우들을 사살하라는 장태완 수경사 사령관이 불호령처럼 떨어지는 초비상 상황에서 올바른 선택을 위한 구심점이 필요하였을 때 그들이 지도자로 선택할 만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전두환은 그 존재만으로도 국가의 안보 기둥이었으며, 그래서 북한세력의 공적이었다.
만약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전두환이란 인물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사라진지 오래며 한국 국민은 북한의 노예 생활을 하였을 것이며, 월남의 적화통일 후 종북세력이 제일 먼저 처형당했던 것처럼 중북세력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가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전두환 외에 김재규의 군사반란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가? 그가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김재규의 군사반란을 막아주었다. 만약 12월 12일 최규하 대통령 공관을 폭격하라는 장태완 장군의 명령에 영관급 장교들이 복종하였다면 그 날로 김재규는 석방되고 복권되어 김재규의 군사반란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조국이 그런 위기에 처해 있었던 때에 국방장관이 나라를 지켜줄 수 있었는가? 아니다. 김재규의 군사반란이 완성되면 10월 26일 깊은 밤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김재규 체포 허락을 해 준 노재현 국방장관은 처형당할 신세였다. 그래서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어느 건물로 도망가 엉덩이를 뒤로 내민 채 머리를 꽁꽁 숨기고 있었다. 상황이 종료되고 그를 찾아헤매던 사병들이 그를 발견하였을 때 그는 그런 모습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만약 12.12 사태가 김재규 부하들의 승리로 끝났다면 머리만 가리고 숨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군사 초유의 비상 상황에서 국방의 사령탑이어야 할 국방장관이 어디로 사라졌으며 연락이 두절되었다. 그렇게 1979년 12월 12일의 밤은 아무도 노재현 국방장관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안보공백의 장이었다.
영관급 장교들에게도 정신적 구심점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김재규 부하들이 쏘는 총소리에 혼비백산하여 어디론가 도망가서 연락을 끊고 숨는 인물이 장교들의 지도자상이었는가? 나라가 맡긴 임무를 위해 자기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용기를 보여주는 전두환이 영관급 장교들의 구심점이요, 지도자상이었다. 별을 단 장군이 된 후에도 여전히 모든 훈련에서 사병들 선봉에서 뛰었던 전두환은 국가를 위한 철학이 분명한 인물이요, 그래서 그가 모든 장교들이 존경하는 지도자상이었다. 군번 순으로 보아도 4년제 육사 1기생 대표였던 전두환이 모두를 뭉치게 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지도자였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안보에 구멍이 뚫려있던 그 때에 전두환이란 든든한 안보 기둥이 있었던 것이 종북세력에게는 불만이었으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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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게시판에 글자수 제한이 있는가요? 제 글이 길어서 그런 것인지 중간에서 끊어졌습니다. 나머지는
http://www.study21.org/518/photo/historical-debate.htm
에서 읽으세요.
댓글목록
만토스님의 댓글
만토스 작성일시사논객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더 많은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인민군검사 채동욱과의 전쟁이란 제목도 좋고요. 전쟁입니다.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네, 전쟁입니다. 9월부터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람가세님의 댓글
유람가세 작성일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언제나 애국 진영에 큰 힘이 되는 글을 내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바쁘게 쓰셔서 그런지 오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채병욱 --> 채동욱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방금 수정하엿습니다.
구로님의 댓글
구로 작성일
시사논객님! 박수를 보냅니다.
5.18 당시 상황에 근거한 팩트와 사진, 80년 전후 대한민국 역사의 큰 흐름을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논평하여 주신데 대하여 많은 공부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제 5.18에 대하여 뒤집힌 역사를 재심 등의 절차를 거쳐서 재정립할 때가 도래한 것이며, 이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80년대의 역사를 옳바르게 이해를 하여야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 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뒤틀린 역사를 제자리로 원위치 시킬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인정될 것이며, 후손들이 이 시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뒤바뀐 사실을 바로 세워여만 이것을 교훈 삼아 정치, 사법, 문화 권력이 앞으로 두번 다시 역사 뒤집기 운동이나 판결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앞으로 5.18 바로잡기 전쟁에 더욱 더 많은 지도,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orea님의 댓글
korea 작성일
목사님의 애국열정에 늘 감사하고,
조국의 역사 바로세우는 그 과정에
함께합니다.
장학포님의 댓글
장학포 작성일
좋은 글과 자료 감사 합니다.
진리와 정의의 자리에 거짖이 차지한 오늘날의 현상에 분노를 금치 못합니다.
이제 새누리당이 앞장서서 5.18의 북한군 개입거론을 못하게 제갈을 물리는 법적장치를 발의 했다니 기가 찹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진실과 정의바로세우기는 중단할수가 없습니다.
님의 게시글에 다시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만토스님의 댓글
만토스 작성일
시사논객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두환과 그 일가친척들에 대한 재산 빼앗기는 가히 인민재판의 모습임을 짐작합니다마는, 전두환 측근들이 그 광란에 맞 대응을 할지 포기하고 다 빼앗기고 온 국민로부터 또 다른 개망신을 당할지 두고 봐야겠지요. 언론들은 지금 전두환 죽이기에 하나같이 동참하여 날뜁니다.
그런데 저는 솔직히 전두환의 재산 빼앗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정말로 그가 이 시대에 아직 살아 있을 때 대한민국을 향해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아 있다고 봅니다. 시사논객님이 지적한 대로 "1997년 5.18에 대한 인민재판"을 재심하는 일 그것이지요. 과연 전두환이 이 일에 대한 엄청난 파장과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국민들의 염원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이해하고 있을지 의문입니다.
최근 전두환과 그 측근들이 하는 언행으로 봐서는 저희들이 원하는 5.18인민재판에 대한 재심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직 그들의 재산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명예를 버리고 돈을 움켜쥔 수전노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참담한 마음입니다. 육사1기에 국가의 간성으로 장성까지 지낸 군인이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명예를 지키려는 간절한 마음이 보이지 않으니, 그를 본 국민들의 마음은 얼마나 상심하고 있겠습니까?
5.18인민재판의 재심이야말로 전두환을 비롯한 소위 말하는 신 군부 세력 최후의 명예 지키기요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확립에 더 이상 큰 공이 없을 것입니다. 재심 재판에 이기고 지고는 지금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두환 그가 자신에게 씌워진 온갖 불명예를 인생 황혼기에 최후로 육신의 힘을 다 모아 찾겠다고 정면으로 나설 때, 대한민국의 모든 애국지사들은 발 밧고 나서서 변호하고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그것은 저 불순하고 음흉한 인민재판 기획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것이고 대한민국이 살아 있다면 이 시대에는 절대로 1997년 같은 흉악한 인민재판은 또 다시 재현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측근들의 목숨 건 명예회복 작전이 언제 시작될지 수 많은 국민들은 목을 빼고 기다린다고 해야 하겠지요.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만토스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재심을 원하는 것으로 짐작합니다. 제 판단에 지금이 재심 청구를 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9월부터 인터넷에서 두어달 동안 재심을 위한 화력 지원을 할 것입니다. 전 전 대통령측에서는 현 정국에 어떻게 대치하려 하시는 것인지도 궁금하고, 지금 5.18 법리에 대한 재심 청구를 하면 모든 뉴누명들이 벗어질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이 공유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소리국님의 댓글
소리국 작성일
당시 그곳에 살았다는 분의 말을 빌리면 자신도 전라도인이지만 확실히 빨갱이들이라고 지적하더군요
먼저 민간인(빨갱이)이 파출소를 습격하여 총기탈취했다는 군요 전 그냥 흘러가는 소리로 듣고 있었는데
오늘에 붉어져가는 것을 볼때 좀 더 관찰해 볼것 그랬나 싶어지네요
인터넷에 언젠가 한번 대한민국 국군복을 입고 총기를 들고 차에 타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얼굴이 또렸하더군요
발달된 현대과학으로 추적하면 북괴군인지 한국군인지 금방 나타날 텐데 말입니다. 어떻게 된지 모르겠군요
도날드덕님의 댓글
도날드덕 작성일그런데 궁굼한게 있는데 중장 밖에 안되는 전두환장군을 광주 애새끼들이 어떻게 알까요 대통령도 아니고 별세개 밖에 안되는 일게 장군인데 전 저기에 간첩들이 있다고 봅니다
고사연님의 댓글
고사연 작성일
12.12로 당시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하고 대통령 암살사건 뒷처리를 하는 걸 보고서 북에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최고의 실세로 찍고 그를 음해하여 권력층에서 밀어내려고 시도한 것이겠지요.
10.26사건을 깨끗이 바르게 처리해버리니 남한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려 해도 유언비어도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 되었죠.
그러니 그 다음으로는 당시 최고 실세로 보이는 사람을 찍어내리려고 했을 것 아닙니까. 그런 목적으로 그와 관련된 유언비어와 선동구호를 퍼뜨렸겠지요. 사람을 정확히 보았다고 해야지요. 당시 전두환 사령관 아니었으면 누구도 수습이 불가했을 겁니다. 과단성과 강직함에 있어 그만한 인물이 없죠.
12.12 이후 당시 세간에는 전두환이 실세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엄청난 권한을 지닌 계엄사령관을 과감히 체포하는 걸 보면 그런 생각 할 수 있지요. 하극상이란 얘기도 이미 퍼져있었고요. 이때 벌써 10.26사건 수사의 본질에서 벗어난 소문들이 나돌았다는 겁니다. 정승화 측의 얘기에 솔깃한 분위기도 있었고...
짐작을 해보니 대략 그런 듯하네요.
구로님의 댓글
구로 작성일
옳바른 판단이십니다..
5.18 사태 당시 광주에 '전두환 물러 가라, 전두환 죽이자'라는 구호나 현수막은 북괴나 데모꾼들이 정세를 정확히 판단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1) 10.26 사태로 인한 정국의 혼란이 전국적으로 확산 되어야 북괴가 김대중을 비롯한 좌파, 좌익의 요청이나 판단에 의하여 남침을 하고 꿈에 그리던 적화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는데,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김재규를 체포하고, 12.12 때 정승화를 체포하여 10.26 관련자들을 일망타진하니 더 이상의 혼란과 남침 기회가 없어졌으나
2) 10.26 직후 적화통일이라는 절호의 찬스를 놓친 김일성이는 호시 탐탐 기회를 엿보던 중, 김대중이가 광주에서 음모를 꾸미고, 군중 데모를 획책하는 것을 알고 이 번 기회를 마지막으로 판단한 북괴가 특수 부대를 침투(가정)시켜 경찰서 파괴, 무기고 습격, 교도소 습격, 방송국 습격 등의 폭동과 모략 선동을 자행하면서 눈에 가시인 전두환을 제거하기 위하여 현수막과 구호로 '전두환 물러 가라, 전두환 죽이자'라고 선동을 하였으나 계엄군의 진압으로 데모가 전국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실패를 하니 적화통일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야욕과 적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 방해꾼 전두환을 제거하려는 작전을 시위와 함께 전개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위와 같이
남한 내 좌파나 좌익, 북한 괴뢰 정부는 10.26 사태 때 자유 대한민국을 적화 통일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대한민국의 구국의 영웅 전두환 장군의 방해 때문에 달성을 못하였으니 그들에게는 전두환 대통령이 철천지 원수나 다름이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삼이가 자신의 비자금 문제에 대하여 야당과 좌파, 좌익, 일부 국민 등이 공격을 하자 이를 모면할 돌파구로 당시 이들로부터 욕을 많이 얻어 먹고 있던 전두환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입니다.
5.18 관련자, 좌파, 좌익, 북괴가 원수같이 여기는 전두환 대통령을 남한의 대통령이란 김영삼이가 스스로 5.18과 관련하여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5.18 관련자, 좌파, 좌익, 북괴는 얼마나 환호을 하였겠습니까? 그들은 김영삼이 행동에 숟가락만 하나 더 얹어 놓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이래서 5.18과 아무 관련이 없던 전두환 대통령을 5.18에 도매급으로 연관시켜 지금까지 나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 것입니다.
5.18 역사 뒤집기, 전두환 역적 만들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다 망해가는 북괴 회생, 좌파 빨갱이가 판치는 세상, IMF 사태 초래 등등 이 모두가 김영삼이로 인해 제작되었거나 파생된 상품입니다. 한마디로 자유 대한민국이 개판이 된 것입니다.
이래서 김영삼이가 나쁜 자이고, 우익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된 좌파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10.26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나마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것은 10.26 직후 혼란기를 잘 평정한 전두환 대통령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혼란기에 북괴의 남침으로 적화통일이 되었으면 우리 국민은 북괴 정권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처형되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악몽입니까?
전두환 대통령이 금전적으로 부정을 했다고 하지만(이것도 재판 결과를 봐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생명과 같은 대한민국의 자유, 평화와 비교할 문제가 아닌 조족지혈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와 평화가 없는 북한 주민과 같은 생활을 한다고 생각을 해보면 자유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전두환 대통령의 영단으로 가능했습니다.
우리 애국 세력 및 국민은 구국의 영웅 전두환 대통령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지만원 박사님과 시사논객님, 서석구 변호사님, 500만 야전군 회원을 비롯한 반공 애국 세력이 5.18 역사가 바로 잡히도록 끈기있게 추진하여 전두환 대통령, 당시 계엄군의 명예가 회복되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정립되기를 확수 고대합니다.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
여기 게시판에 글자수 제한이 있는 것인지 제 글이 그간 중간에서 끊어졌습니다. 글 전문을 보실 수 있는 이 링크를 공유해 주세요.
http://www.study21.org/518/photo/historical-debate.htm
만토스님의 댓글
만토스 작성일시사논객님, 글자 수가 너무 많은 것은 여러개로 나누어 게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게시된 본문도 상당히 긴 것 같습니다. 짧게 여러번 나누어 되도록 많이 올려 주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