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자라면 '남성연대'를 도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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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비전원 작성일13-08-02 23:21 조회3,3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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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성 연 대 | 상임대표 : 성재기 | 주소 : 150-979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45-13 코오롱 포레스텔 1306호 대표전화 : 02-567-8484 | Fax : 567-8483 | Feedback : ngoofkorea@naver.com / 홈페이지: www.manofkorea.com
- 비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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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01 21:15
글쓴이 : 비바람 |
변희재의 주장에 백번 동감한다, 조윤선 장관의 재산 규모를 알면 더더욱 동감하게 된다, 조윤선 부부의 부부합산 소득은 142억 원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조윤선은 연간 생활비로 7억 5천만 원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재기는 1억 원을 구하기 위하여 한강에서 뛰어내렸다, 7억 원을 생활비로 쓰는 사람이 1억 원에 목숨 거는 사람의 심정을 알 수가 있을까,
대한민국 정부에 여성부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남녀 불평등의 적나라한 사례다, 여성만을 위한 부서를 놓고 평등이라고 하는 것은 폭도들에게 민주화투사라라고 하는 것만큼 웃기는 일이다, 여성부야말로 좌익정권의 부산물로서 가장 쓸데없는 부서가 여성부였다, 우파정권이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날려야 했던 것이 여성부였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여성부에 조윤선이가 장관이 된 것은 코메디이다, 차라리 조윤선에게 그 재산으로 약자를 도우라고 하는 것이 약자를 위한 정책에 더욱 가깝다, 7억 5천만 원의 생활비를 아끼는 것이 조윤선이 장관이 된 것보다 더욱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런 재산을 가진 여성부 장관이 1억 원 때문에 투신하는 남성단체에는 관심도 없다니, 남성단체 대표의 장례식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다니,
조윤선은 싸울 줄 모르는 돼지들이 모여있는 새누리당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민주당 국회의원 공천 서열은 빨갱이 전과로 결정되고, 새누리당 국회의원 공천 서열은 재산으로 결정된다, 그래서 민주당에는 임수경 같은 빨갱이들이 뱃지를 달고, 새누리당에는 조윤선 같은 살찐 돼지들이 뱃지를 단다, 살찐 돼지들은 치부가 눈에 밟히고 빨갱이들은 수령님이 눈에 밟힌다, 그래서 나라꼴이 이 모양일 수밖에 없다,
검찰 수사를 통하여 전두환 일가의 재산도 녹록치 않음이 드러났다, 전두환의 아들들도 상당한 재산가였다, 전직 대통령이 웬만한 재산가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상식이었으니 놀랄 일은 없다, 대통령의 자식들도 박근혜만 제외한다면 웬만한 재산들을 가지고 있었으니 이것 또한 놀랄 일은 없다,
그러나 전두환의 경우는 조금 남다르다, 전두환은 5.18의 주범으로 몰려 대한민국에서 살인마로 개새끼로 낙인찍힌 대통령이다, 많은 보수우파 논객들은 이런 언터쳐블의 5.18에 대항하여 전두환의 무죄를 주장했었다, 보수우파의 대표논객 지만원은 5.18과 싸우다가 납치당하고 린치를 당하며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그러나 전두환은 나와서 싸우지 않았다,
전두환은 전두환을 위하여 싸우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했나, 전두환의 아들들은 억대 재산가들이었다, 지 애비가 개새끼가 되고 있을 때, 전두환을 한번 뵙지도 못한 사람들이 개새끼가 돼버린 전두환을 위하여 싸울 때 전두환의 그 부자 아들들은 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기부해 보았나, 5.18과 싸우다가 얻어맞는 지만원에게 전두환은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이라도 사줘 봤나,
전두환이가 골프를 친다는 소리는 들어보았지만 전두환이가 5.18의 부당함에 대항하여그 무엇을 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지금 전두환 일가의 모습은 싸우지 않았던 자의 비참한 말로이다, 나서서 싸우지 못하고, 자기를 위하여 싸우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는커녕 일가의 치부에만 골몰했던 살찐 돼지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모습이다,
실상은 운영비조차도 없어 한강에 뛰어들기도 하는데, 보수우파는 왜 기득권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전여옥, 조전혁, 김진태, 싸울 줄 아는 전사들은 간간이 명맥만 유지하는데 비해 전두환처럼 죽을 때 금은보화를 싸가지고 가려는 사람들, 조윤선처럼 자기들한테는 몇 억씩 펑펑 쓰면서 전우들에게는 지폐 한 장 내놓을 줄 몰랐던 돼지들이 오른쪽에 우글거렸기 때문이다,
전두환이가 정말로 대통령을 했다면 그 명예는 하늘에 닿는다, 그 많은 재산들은 별로 쓸모가 없는 부산물이다, 전두환은 5.18전쟁을 위하여 대한민국을 위하여,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명예를 되찾기 위하여 보수우파에게 일정의 재산을 통 크게 투척해라, 살찐 돼지처럼 우리에 쳐박혀 있다가 목매달리는 것보다는 나와서 싸우다가 죽어라, 그게 떳떳한 일이고, 전두환다운 일이다,
조윤선은 재산이 많음에도 베풀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새누리당을 위하여 싸웠던 우파단체들에게 지갑을 열 줄 알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장관 조윤선은 일가의 족보를 빛내는 대단한 업적을 쌓았다, 그로서 족함을 알면 된다, 장관이 되고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돼지는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집에서 쓰고싶은만큼 1년에 20억씩 쓰면서 살찐 돼지로 살면 된다,
비바람 |
성재기씨가 남기고 간 것 | ||||||
[단비발언대] 홍우람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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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씨의 투신은 이유를 불문하고 무모하고 치기어린 행동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게 됐다. 극단적인 수단으로 목적을 정당화하려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우려를 불렀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질타는 그 정도가 합당해 보인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공간의 대중들 반응은 달랐다. 성씨를 ‘벌레’라고 조롱하거나, “1억 달라고 쇼하네”라며 폄하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표창원, 고종석씨 등 일부 지식인들의 반응도 대중의 조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를 정신과 진료가 시급한 자로 취급하거나, 남성연대를 해체하라며 비아냥거렸다. 사회적 의미를 고민하기는커녕 생명이 달린 문제라는 인식도 보여주지 못했다.
언론의 ‘경마식 중계’는 더욱 문제다. 이른바 ‘성재기 사태’가 주는 사회적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공영방송 KBS는 투신 소동을 촬영하며 자살을 방조했다는 비판의 중심에 서있다. 하룻밤 유흥거리가 된 ‘성재기 사태’는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비루한 모습을 일거에 폭로해 웃음거리로 만든 사건이 돼버렸다.
그동안 성씨가 해온 주장들에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을 단순히 마초의 궤변이었다고 폄하할 수만은 없는 측면도 있다. 지난해 말 아동청소년보호법 개정 논란이 일었을 때 성씨는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누리꾼의 관심을 받았다.
“야동 보고 자위해 보셨어요? 남성의 심리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아청법을 논한다는 겁니까? 바바리맨을 잡아야지, 남자들이 바바리를 못 입게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문제는 그의 독설에 고개를 끄덕이며 통쾌해한 남성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이 인간의 욕구와 욕망의 작동원리를 현상적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는 에로티시즘적 욕망은 생물적·현실적 욕구를 충족시키면 신기루처럼 사라진다는 분석과 닿아있다. 즉, 성인영상물을 본다 해서 성범죄 욕망이 생긴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성씨의 발언을 체로 걸러 성범죄의 원인과 성범죄 속 남녀의 권력관계를 밝히는 건강한 토론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의 말과 행동은 타당성을 따지기 전에 인간의 감춰진 ‘성적 본능’을 건드렸기에 불편할 수 있다. 그래서 그에게 일견 공감하는 대중들도 그를 비웃고 공격함으로써 ‘성재기와 난 다르다’고 ‘구별 짓기’한 건 아니었을까?
여성가족부를 폐지하자는 그의 주장도 사실 금기시할 말은 아니다. 정부 부처는 존속시킬 필요성이 있는지를 늘 평가해 개편하거나 폐지할 수도 있는데, 여성가족부만 예외일 수는 없지 않은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여성부가 얼마나 여성·아동·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는 활동을 해왔는지 확인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여성 인권을 보장하려면 여성부가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도 문제다. 여성부라는 언어의 상징성에만 천착하면 오류가 생긴다. 예컨대 법무부(Ministry of Justice)가 이름 그대로 항상 '정의'(Justice)을 위해 일해왔는지는 의문이다.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사태 등 공권력의 폭력에서부터, 비정규직 노동, 동성애, 노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인권 문제는 남녀 공통의 문제다. 이 때문에 실상 어느 한 계층이 인권 담론을 독점할 수는 없다. 오늘날 인권 문제는 연대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다. 성씨의 조악한 주장들을 시민들이 진지하게 가지치고 키워나갔다면 여성부가 폐지되고 ‘인권부’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성씨의 존재는 사회구성원이 함께 손질하고, 확장시켜야 할 쟁점을 던졌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성씨 주장에서 비합리성과 폭력성을 문제 삼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논박하면 된다. 거칠게 던져진 논점도 토론을 거쳐 다듬고 사회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면 된다. 그게 민주주의가 아닐까?
성씨가 주검으로 발견되자 애도 여론이 나온다. 바람직하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생각에 그친다면 아쉽다. 그를 우상화하려는 발언도 불편하다. 민감한 사안에서 손을 털고 도의적 책임부터 면하겠다는 자기방어 기제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성재기 사태가 드러낸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정면으로 봤으면 한다. 우선은 ‘성재기가 죄가 있나’부터 생각해 볼 일이다.
손택의 말처럼 다같이 슬퍼하되, 다같이 바보가 돼서는 안 된다. 성씨는 죽었지만 ‘성재기 사태’는 살아 움직이며 우리의 부끄러운 곳을 헤집고 있다. 성재기 사태를 보고도 배우는 게 없다면 우리는 딱히 성재기씨보다 나을 것도 없는 ‘비루한 민주사회의 시민’일 따름이다. 성재기는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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