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을 달고 다니는 통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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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EVERGREEN 작성일13-08-01 20:10 조회3,127회 댓글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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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에서 시작하여 어느 정부도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았다. 모조리 다 민주화의 춤바람이 나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반공사상은 쓰레기 하치장으로 실려가고 민주화의 열사들과 투사들이 칼 차고 말 타고 다니는 좌익의 세상으로 변모했다. 돈키호테 김영삼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고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두 통일팔이의 전횡으로 오늘날 전국의 시위현장마다 희망버스를 탄 폭력집단이 죽창을 휘두르고 어린아이까지 합세한 촛불의 행렬이 유령처럼 밤거리를 쓸고 다닌다.
나는 김대중이란 사람을 그다지 미워하지 않았다. 오뚜기 같은 의지의 사나이로 존경했다. 어느 날 대선에 패배해 울면서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이 몹시 측은했었다. 청와대의 국수맨 김영삼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다 문득 그의 영국생활은 어떠할까 생각하면 짠했다. 그런 그가 5년 뒤 다시 나타나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대선에 출마할 때 인간 김대중은 내 마음에 무한한 의문부호를 만들었다. 그는 영국에서 부차의 와신과 구천의 상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75세에 지팡이를 짚고 국회의사당 계단을 밟고 올라 갈 때에는 경의를 표했었다.
남북통일의 물꼬를 텃다는 김대중은 집권하자마자 반공국가 대통령이란 신분으로 대남 쿠데타를 일으켜 4000여명의 사법과 대공, 방첩기관원을 숙청시키고 그 자리를 호남인맥으로 채우면서 그 기능을 마비시켰다. 복수의 칼질을 함과 동시에 반공을 와해시킨 그는 내가 반신반의했던 예전 국가보안사범이란 사실에 부합되는 명실공히 종북의 거두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유유히 북한을 향해 소떼를 몰고 가는 카우보이가 되어 국민이 동조도 하지 않은 알 수 없는 액수의 군자금까지 갖다 바친 것이다.
나는 아직도 생각난다. 어느 방송국인가 몰라도 뉴스시간이 아닌 일반 방송 도중에도 ‘노벨평화상’이란 글자가 간헐적으로 0.1초 정도 찰나의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게 하는 환각적이며 무의식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광고를 열성적으로 하던 것이 말이다. 일종의 사이키델릭psychedelic 광고였다. 국민들로 하여금 축제와 존경을 뇌리에 각인시키는 그 짓거리를 나는 당시 참 유치하게 생각했다. 그런 분위기를 충분히 캐취 할 나이였기 때문이다.
6.15공동선언문을 작성할 때 까지는 그도 남북연합에 기대를 걸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재임 5년으로 연방, 연합제에 노크만 할 뿐 10년이 흘러도 성사가 불가함을 어느 누구보다 김대중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잘 체득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대북관에 있어서 재임기간 동안 자신에 관해서는 손해 볼 짓 하지 않는 철저한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통일로 가는 길이 요원하다고 생각했을지라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퍼포먼스는 지금도 아태재단이란 변함없는 간판을 걸고 좌익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내숭의 달인 박원순이 정치로 성공할려면 김대중을 많이 연구해야한다.
그 다음 노무현대통령 그는 무엇을 했던가? 그는 국민의 자존심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적장과 비굴한 자세로 대화를 나누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토록 저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했던 이유는 퇴임 전 반드시 김대중에 이어 남북공동선언문을 발표하는 업적을 남기기 위하여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퇴임이 5개월도 남지 않은 노무현과의 정상회담에 시큰둥한 김정일을 회유하기 위해서는 NLL의 강력한 미끼가 필요했던 것이며 미끼를 입에 문 김정일은 그의 아부에 공동선언문을 작성했던 것이다.
퇴임 후에 남북공동선언문대로 NLL을 공동어로수역으로 사용을 하든 말든 그것은 노무현 입장에선 책임 질 문제가 아니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아무리 쇄기를 박아도 법리 해석에 따라 쇄기가 빠진다는 것도 계산했을 것이다. 제 말마따나 NLL이 국제법상의 문제도 아니고 헌법상의 문제도 아니어서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다면 그 공동선언문의 쇄기도 선언문 따위에 상관없이 마음대로 뽑혀질 수 있는 것이다.
김정일의 입장은 퇴임 5달도 채 안 남기고 무엇을 같이 하자니 믿기지 않아 고자세 아닌 고자세가 되었던 것이고 노무현은 뒤로 빼는 김정일의 태도에 애가 닳아 할 말 못할 말 안 가리고 미국을 미운 오리새끼로 만들며 온갖 구구절절한 잡소리를 다 토해냈던 것이다. 확실한 설득으로 마무리를 짓기 위해 오후의 이차 회담 시간을 달라고 까지 애걸을 하였고 김정일 역시손해 볼 것 없으니 마지못한 듯이 1시간 반의 회담 시간을 선심 쓰듯 할애했다.
결국 자존심이고 나발이고 갖은 아양을 다 떨어 김정일을 움직여 10월 4일 남북공동선언문을 작성하고 돌아왔던 것이다. 어쩌면 같은 직업의 동료요 비서실장인 문재인과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퇴임 전에 뭘 남겨야하지 않겠는가하고 머리를 맞대고 고심한 결과 지금이라도 급히 서둘러 김정일을 회유, 설득하여 공동선언문의 작성에 올인해야 한다고 작심했을 것이다. 결국 치졸한 보따리 장삿꾼 노무현의 업적 만들기에 김정일이 들러리를 선 꼴이라 본다.
그해 11월 말경 10.4공동선언문 관계로 남북국방장관급회의를 가지기 직전 김장수국방장관이 대통령에게 NLL문제에서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거론하자 그런 주장을 예상한 듯,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알아서 하라고 한 2중성을 보인 것이다. 회의에서 김장수가 NLL에 대한 전폭적인 수용이 없자 북측이 당신들 대통령한테 물어보라며 서로 티격거렸던 것이다. 알고 보면 김장수의 반대에 굽힌 것이 아니라 예상 된 각본이었으며 노무현의 농간에 남북이 다들 놀아난 셈이다. 김장수는 뜻하지 않게 영웅이 되어버린 것이다.
배신의 쓴 맛을 본 김정일은 얼마 안 있어 노무현도 죽고 이명박으로부터 통 큰 상납도 없고 휴지 쪽지에 불과한 공동선언문을 들먹여봐야 기껏 쌀 5천톤이나 주는 오리지날 장삿꾼 한테 걸리니 울화통이 치밀어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연평도에 포격을 날린 것이다. 애국하고 담을 쌓은 좌익 쓰레기들은 이구동성으로 존엄의 비위를 상하게 한 이명박정부가 자초한 일이라고 참새 새끼처럼 조잘댔지만 노무현은 지하에서 고소를 금치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노무현의 ‘10.4남북공동선언’은 역사에 남았다.
업적에 눈이 어두워 적장 앞에서 국가의 자존심과 국민의 자존심을 난도질했던 솜털처럼 가벼운 이런 인간을 우리는 국부라며 청와대의 높은 자리에 앉혔다. 청문회 때 전두환을 향해 던졌던 명패를 그의 무덤을 향해 되 던져야 한다. 이런 2중 인격자에 비하면 차라리 전두환은 높이 받들어야 할 우직한 애국자에 속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은 염라대왕에게 건의하여 교활한 노무현을 다시 살려내어 처절히 단죄해야 할 것이다. 김일성의 재간둥이가 윤이상과 황석영이면 김정일의 통 큰 재간둥이는 음흉한 김대중과 교활한 노무현이었다.
한반도프로세스를 정책의 슬로건으로 삼는 박근혜도 두 좌익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통일팔이의 길을 걷는 것 같다. 그들과는 다르게 미국과 중국을 지원군으로 만드는 높은 차원에서 접근을 시도하여 그 첫 출발점이 기존에 불거진 사건인 개성공단의 밀당에서 실마리를 풀게 되면 나아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마침내 비무장지대를 평화의 놀이터로 만들겠다는 소녀의 기도가 이루어진다고 가정하면 그녀의 한반도프로세스는 대박이 터지고 노벨평화상까지 따 놓은 당상이 될 것이다.
현재의 박근혜대통령은 이명박맨인 원세훈 국정원장을 구속시키고 전두환의 껍데기를 홀랑 벗기는 짓이 야당 패거리들의 입을 잠시 틀어막고 개인적인 보복을 가하는 양수겹장인가는 몰라도 우익끼리 꼬시래기(망둥어) 제 살 뜯어 먹기를 한 것이다. 어쩌면 그런 정도는 개의치도 않을 박근혜다. 지금의 우익국민에게 있어 박근혜는 마치 다른 레일의 열차를 타고 다소곳이 앞만 보고 있는 냉정한 옆모습을 열차의 유리창문을 통해서 바라보는 기분이다. 아직 그 꿍꿍이속의 10%가 베일에 가렸다.
그리고 꼭 답해 주기를 바란다. 2002년 꽃피는 5월의 어느 날 북한에는 굳이 무슨 이유로 올라갔나요? 그 이유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북한을 방문했을 그때나 지금이나 새침한 자세로 얌전히 웃는 모습 외에는 그의 생각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임수경과 다른 점은 허가를 받고 올라갔다는 것이다. 임수경이 무단 방북하여 번개춤을 추고 내려온 공인 된 종북의 꽃이라면 박근혜는 허가를 받고 갔다 온 의문의 꽃이다.
정말이지 우리 국민에겐 우리가 뽑은 그 통치자들이 항상 말썽꾼들이었다. 그들의 돌출 행동이 우리를 곤경에 빠뜨렸다. 때로는 우리의 재산을 탕진했으며 때로는 우리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한국의 대통령 대부분은 왕좌에 올라갔다 내려오면 전 가족이 부자가 되어있다. 좋은 사업이다. 그들이 바로 가장 무서운 내부의 적이다. 만약 박근혜가 전두환에서 마무리를 짓는다면 우익의 세계에서 거센 탄핵을 받아야 할 것이다.
댓글목록
전야113님의 댓글
전야113 작성일
1979년도
전두환에게 받은 6억원 -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 부동산 시세로 가치 평가하면-
신촌로타리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가는 길 와우산 아래 대로변 인접 땅값이-
당시 평당 5만원 정도입니다 -
물론
50평 정도의 대지 위에는 조그만한 집도 있었던 건물 포함 기준입니다
600,000,000원 나누기 50,000원 = 12,000평에 해당
따라서
대지 50평 기준하면
12,000평 나누기 50평 = 240채 건물이 포함된 50평짜리 집을 구 할 수 있는 금액이
바로
600,000,000원 입니다 !
박근혜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까지 마무리 짓지 못하면 조롱거리 대통령으로 마감 될 것이겠지요
광솔님의 댓글
광솔 작성일2000년 10월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 조명록이 미국을 방문하고, 이어 미국의 여자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북한을 방문하는 등의 교류가 있었슴.
광솔님의 댓글
광솔 작성일
박근혜는 부모 돌아가시고 청와대 나올때 유족연금 한푼도 지급 못받아.
박근혜 연금 0원, 이희호 권양숙 월 8백만원
만일 박근혜가 1980년이후 30년간 유족연금을 받았다면
그 금액이 30억.
박근혜 6억원의 진실
1979년 청와대 금고 속에 있던 돈 중에서.
박근혜는 청와대 나올때 6억 받았다.
그러나 6억 중 3억원을 수사본부에 내놓았다.
그 3억은 새마음 병원 운영하면서 국민들에게 다 돌려줌.
박근혜 당선자님께선 받으신 6억중에서 3억을 돌려주셨고
남은 3억으론 새마음 병원을 운영하시면서 어려운 국민들에게
무료로 치료해서 한해에 1억씩 적자.
결국 병원을 폐업
최성령님의 댓글
최성령 작성일
속이 풀리는 시원한 글입니다.
나의 결론.
박정희 대통령 이후의 대통령들 다 합쳐도
박통의 발톱 때도 안된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은
박통 발톱의 무좀에 불과하다.
여보세요님의 댓글
여보세요 작성일
김정일이 들러리를 선 꼴이란 것은 아무도 생각 못한 날카로운 분석이다.
김장수의 NLL공동어로수역 반대에 대한 노무현의 각본....고개가 끄덕여지는 분석이다.
그로인한 쌓이고 쌓인 김정일의 화풀이 설....이 또한 날카로운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