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한 사실의 전파를 위해
큰일을 하고 계시는 조갑제 대기자님께 경의를 표하며 이 기회에 또 하나의 사실도 함께 전파되기를 아울러 바라면서 이 글 씁니다.
1. 노무현-김정일의
10.4회담이 있기 10년 전인, 1997.5.26 에 김정일은 노동신문 특집보도를 통해 6.25 남침직전까지 가동했던 “인민공화국 영웅 1호”
(성시백)의 대남공작활동을 대대적으로 인정하고 찬양한 바 있었습니다. ( 불가사의하게도 이 사실은 16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공론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상기하여야 할 것은 이보다 3년전엔 김영삼 대통령이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를 북송했었고 이보다 4년 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를 조건도 없이 북송했다는 사실입니다.)
2. “민족의 령수를
받들어 용감하게 싸운 통일혁명 렬사” 라는 제목의 이 노동신문 특집보도는 6.25 정전 이후에도 계속하고 있었던 대남공작을 본격적으로 재
강화한 신호탄으로 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김, 노의 두 과거정부는 오히려 철저히 침묵함으로서 북의 대남공작에 최대한의 협조를 제공한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것이 4.3위원회의 국방부 위촉위원으로 활동했던 제 자신의 견해였습니다. 이 사실의 전파를 위해 지난 10여 년간 거의 같은 주장을
반복해 왔으나 역부족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3. 대통령 노무현과 그를
수행했던 참모들은 김정일이 찬양 고무했던 북의 대남공작을 거론하며 그 중단부터 요구하는 것이 절대 필요한 절차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해서는 말
한마디 못하고 NLL포기의 동조발언 등 국민들의 분노와 모멸감을 자극하고 있는 대화록상의 발언을 하고 돌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오히려 국가보안법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자는 발언을 계속했던 것이고 그 발언록(사초)의 제거까지도 지시한 모양이니 이를 어찌해야 할
것입니까? 아직도 남과 북의 대화를 위하여 북한의 대남공작에 관하여 침묵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까?
4. 4.3사건 당시
3세의 유아였던 노무현씨는 16대 대통령이 되어 당시 73세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진압하며 발생했던 민간인 피해에 대하여
2003년 10월, 대한민국 정부차원의 공식사과까지 하고 나서 4년 후인 2007년 10월, 김정일을 만나서는 4.3사건의 배경으로 작용했던
대남공작의 중단에 관해서는 한 마디 말도 없이, 혈맹의 동맹국을 비난하는 등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발언을 함으로서 북한의 대남공작에 적극
협조했던 모습이 온 천하에 들어 난 이상, 이제 간첩죄로 고발을 해도 부족하겠지만, 우선 이제라도 지난 16년간 침묵으로 일관해 온 북한
노동신문의 특집보도((97.5.26) 의 내용과 그 의미만큼은 온 나라에 공론화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갑제.com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5. 대통령 노무현의
4.3사건 사과에 대하여 항의의 뜻으로 사퇴를 해야 했던 국방부 위촉의 4.3위원으로서 북의 대남공작문제에 대한 고뇌를 갖고 김 노 두 전직
대통령이 생존하고 있던 당시에 인터넷에 올렸던 글 하나를 참고로 아래에 붙여 놓습니다.
"김, 노 전임
대통령에게 따져 물어야 할 것
" http://rokfv.com/jboard/view.php?code=23&uid=2878&page=1&key=&keyfield=
2013.7.31.
12:00
www.rokfv.com 인강칼럼
추신 :
1. 문제의 특집보도는
베트남 참전 전우들의 홈페이지인 www.rokfv.com 인강칼럼의 헤드라인에서 " 10년전의 노동신문 특집보도(전문)"을 여시면
확인됩니다.
2.조갑제.com의
연극 동영상 노무현 -김정일의 바다 이야기 아래에 붙입니다.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2225&C_CC=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