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련합뉴스] 풀지못한 비극(?) 보도연맹 희생자 명복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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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碧波郞 작성일13-07-09 08:47 조회3,207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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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이승만 정부는 1949∼1950년 좌익 관련자들을 전향시키고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국민보도연맹'이란 단체를 조직했다. 주로 사상범을 대상으로 했지만 지역별 할당이 떨어지고 공무원들의 실적 올리기 경쟁이 불붙으면서 순수 민간인이 등록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보도연맹원들이 남하해오는 북한군과 결탁할 것을 우려, 위험 요소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이들을 즉시 구속하고 형무소 경비를 강화토록 했다. 이 조치로 북한군이 충북에 입성하기 일주일 전인 1950년 7월 5일께 청원군 오창면과 진천군 진천면 보도연맹원 400여명이 오창면 장대리 양곡창고에 갇혔다.
그로부터 6일 뒤인 11일 새벽 이곳을 지나던 헌병대와 군인들이 창고에 갇힌 연맹원 대다수를 살해했고, 이날 오전 8시30분께 국군 수도사단의 요청에 따라 미군 전투기가 창고 주변을 폭격해 생존자도 대부분 사망했다. 이것이 바로 '국민보도연맹' 사건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충북 청원 오창 양곡창고 학살 사건이다. 이 기간에 충북 12개 시·군에서는 최소 6천명에 가까운 민간인이 보도연맹원으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전국적으로는 약 2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보도연맹과 같은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정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을 토대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를 발족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부터 1년간 희생자 유족들로부터 진실규명 신청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억울한 희생이 증명된 민간인은 4천934명에 불과하다. 수많은 유족이 진실규명을 신청하기까지 1년이라는 접수 기간은 너무도 짧았다. 대부분 접수 사실을 몰라 신청을 하지 못했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빨갱이'로 몰려 평생을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아야 했던 일부는 또 다른 피해를 우려해 신청을 포기했다. 결국 과거사정리위는 전체 보도연맹 희생자 가운데 2.5%인 4천934명의 명예만 회복시킨 뒤 2010년 12월 모든 활동을 종료했다.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 유족은 국가배상의 길도 막혔다. 법원에서는 과거사정리법이 국가의 불법행위를 일괄 정리하려는 시도였던 만큼 진실규명 조사 절차가 진행될 당시 신청하지 않은 것을 권리 행사 포기로 간주하고 있다.
정부가 과거사정리위의 활동을 재개하거나 관련법을 새롭게 제정하지 않는 한 뒤늦게 진실을 밝히고 싶은 수많은 희생자의 한을 풀어줄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조동문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 사무국장은 "정부의 진실규명 신청이 재개되면 그 즉시 접수할 수 있도록 유족회 차원에서 미신고자 접수를 하고 있지만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알 수가 없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이어 "보도연맹 진실규명을 역사의 올바른 정립이 아닌 단순 민원으로 보는 정부의 무관심이 가장 큰 문제"라며 "전쟁 중 정부가 범한 참혹한 범죄인 만큼 보다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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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합뉴스가 무슨 저의로 보도연맹을 들먹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제주 4·3 사건을 뒤집은 빨갱이세력입니다.
보도연맹사건도 그런 의도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군을 능멸하려는 음모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의장님께서 만약 이승만 전기를 집필하신다면,
보도연맹사건도 한 번 살펴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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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계단님의 댓글
하늘계단 작성일
제가 오늘 아침 지운 글 중의 일부입니다. 모든 것이 모두 김일성 마귀새끼의 남한 기습전쟁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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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괴뢰 마귀새끼의 기습 남침 전면 전쟁이 아니었다면 왜 이승만 대통령께서 그렇게 전쟁 초기에 우왕좌왕 했겠습니까? 바로 자고 있는 사람 해골 부수기 식의 공격을 그 김일성 마귀 괴뢰새끼가 감행했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한 달도 안 돼 대한민국 전체가 북괴 손에 넘어가는 아주 급박한 위기 상황에 남한 내 빨갱이부터 없애고 재정비해야 된다는 생각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남한 내 빨갱이들부터 소탕해서 위험한 불씨부터 제거해야 단 얼마라도 더 나라 멸망을 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625전쟁 초기 모든 남한의 빨갱이 숙청이든 무엇이든 그것을 따지던데 그 모든 원인과 모든 책임은 완전 100프로 기습공격을 한 북괴 김일성 마귀새끼가 모두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김일성 마귀새끼가 기습전쟁을 안 일으켰으면 단 한명도 억울히 죽었을 리가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다 마귀새끼 김일성 개새끼가 기습하는 바람에 남한은 우왕좌왕하여 우선 반역무리들을 척결하였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나라가 우선 살기위해 내부의 적부터 소탕해야 한다는 아주 위기에서 나온 결정이였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죄를 이승만 대통령과 혹은 이승만 대통령이 승인 안 하셨더라도 그 밑의 장관이나 누구에게 돌리는 짓은 그당시 북괴가 진주만 기습처럼 일시에 기습하여 벌어진 돌발 상황이었기 때문에 남한의 모든 사람 억울히 갑자기 죽은 모든 책임에 대해서도 북괴가 그것도 김일성 괴뢰 마귀 개새끼가 마땅히 받아야 할 괴뢰책동 때문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승만 대통령때의 재판 판결을 보면 1000명이 죄를 지었으면 900명은 훈방등으로 그냥 풀어주고 100명이 형을 받았는데 그것도 사형판결 받는 사람은 극히 일부였고 모두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즉 10퍼센트 이내만 형을 받았습니다. 김일성 살인마귀새끼가 남침 없었으면 일정 시간 가면 다 죄값 다 받아서 풀려날 사람들입니다. 죄값도 못받고 죽은 모든 책임은 마땅히 북괴 공산당과 마귀 두목 괴뢰 새끼가 모조리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저의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