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내통했던 5.18주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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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3-07-05 09:01 조회4,192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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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內通했던 5.18 주동자들
1. 김대중
국민연합대표, 1980년 5.18 민중봉기 계획, 최규하 임시정부 전복을 위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주모자, 1971년 일본에서 한민통 활동자금으로 북한 부주석 김병식으로부터 20만 달러 받았고, 1988년 간첩 서경원이 김일성으로부터 받아 온 공작금 1만 달러를 받았으며, 2000년 김정일에게는 5억 달러의 대한민국 國富를 김정일에게 진상하였다.
2. 황석영
황석영은 광주에서 1980년 극단 광대를 운영하며 5.18 불법시위 선동에 단원들을 적극 참가시킨다. 그는 1989년 3월 20일 북한에 밀입국하여 같은 시기에 북한에 들어와 김일성을 만났던 윤이상과 5.18광주를 주제로 한 대남-반미의식 고취를 위한 “님을 위한 교향시”라는 영화를 제작해 줌으로써 김일성으로부터 “재간둥이”라는 칭호와 함께 25만 달러라는 공작금을 받았었다.
3. 서경원
서경원의 카톨릭농민회가 1980년 5월15일 5.18폭동을 선동하며 주도했고, 동신실업전문대학 학생회와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명의로 제2시국선언문을 발표했으며, "우리가 흘린 이 젊은 피가 통일 민주조국으로 가는 노정에 핏빛 진달래로 피어 오르길 바란다!" 북한 김일성의 꽃 진달래를 흠모했던 그는 1988년 북한에 밀 입북하여 김일성으로부터 5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았던 간첩.
4. 윤한봉
5.18무장폭동의 실질적 지휘자였던 그는 공산주의 혁명가요 남민전 전사였다.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 당사자 박형선의 처남이 윤한봉이요 노무현의 측근 박연호도 그 사건 관련자이며 모두 광주일고 동문들이다. 5.18기념재단설립자 윤한봉은 동지 8명과 함께 박정희 암살을 계획했으나 5.18 직전에 꼬리가 잡혀 결국 미국으로 피신한다. 미국에서 1989년에는 전대협대표 임수경과 문규현신부를 김일성 평양축전에 밀 입북시키는 일을 성사시켰다.
5. 문익환
김일성의 충실한 심부름꾼 문익환은 안재구 등 남민전 간부들이 출옥하자마자 김일성의 부름을 받고 평양에 가서 지령을 받아 ‘구국전위’를 결성한다. 국민연합 중앙위 상임위원장이었으니 5.18광주 무장봉기의 선봉장이었다. 5월8일 폭력시위를 결의하였고, 남민전 전사 안재구와 그 가족을 극진히 돌봐 주었으며, 김대중으로부터 대통령 이전에 매달 500만원씩 받았었고, 간첩 이선실로부터도 수천 만원 단위의 공작금을 지원 받았었다.
6. 장기표
국민연합 조직국장 장기표, 심재권과 함께 5.18당시 서울 쪽 행동대장이었다. 윤상원을 김대중에게 천거한 장본인이니 윤상원은 사실상 장기표의 꼭두각시인 셈이다. 있지도 않은 신 군부라는 이름으로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억지를 부렸던 5.18세력의 사령탑이 바로 장기표인 셈이다. 그는 훗날 북한 여간첩 이선실과 접선하였고 그가 간첩임을 알면서도 숨겨 주었으며 그로부터 자금지원도 받았었다. 자생간첩 활동을 한 셈이다. 박정희의 산업화 노선에 목숨 걸고 반대한 인물.
다음은 김대령의 “역사로서의 5.18(4권) 221쪽에 언급된 5.18주도 세력의 북한연계에 대한 무서운 사실들을 옮겨 보겠다. 최근에 대한민국에 불어 닥친 진시황의 분서갱유 혹은 중세유럽의 마녀사냥을 닮아 가는 공포스러운 언론압살 현상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렴풋이 머리에 그려진다. 5.18무장봉기는 결국 박정희의 대한민국과 김대중의 종북 반역도들의 사활을 건 전쟁으로 해석 될 수 있으며, 5.18세력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인간들이 1997년 5.18특별법에 의한 대법원 판결을 신성시하여 국민들의 입을 원천봉쇄 하려는 이유가 여실히 드러났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황석영이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항쟁 이후이 문학’을 기고할 즈음 그의 동지 서경원은 김일성의 부름을 받아 이미 평양에 다녀 왔으며, 곧 이어 그와 문익환 목사가 밀 입북할 차례였다. 그 무렵 윤한봉은 북한과 더불어 ‘국제평화대행진’을 한창 추진하고 있었다. 그 행사란 평양축전 뒤 남에서는 한라에서 판문점, 북에서는 백두에서 판문점으로 행진하는 것이었으며,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윤한봉의 한쳥련이 문규현 신부와 임수경 양을 빌 입북시켰다.”
“김일성이 ‘국제 평화대행진’ 행사를 앞두고 북한으로 불러들인 문익환 목사와 서경원과 황석영 모두 남민전 중앙위원이었던 안재구에게 공작금을 보내어 ‘구국전위’ 결성에 착수하라는 지령을 보냈다. 전대협이 구국전위보다 몇 년 먼저 결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93년1월 구국전위가 공식적으로 출범하자마자 전대협을 장악하였던 이유는 김일성의 지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임수경 양이 밀 입북하였다. 임양과 동행하여 밀 입북했던 문규현 신부가 증언하듯이, 그녀의 밀 입북에 윤한봉의 개입이 있었다. 이처럼 1980년 봄 민란 선동의 주역들이 1989년의 평양축전을 전후하여 종북운동권의 큰 물줄기를 형성한다.”
5.18무장폭동의 주동자들은 하나같이 골수 좌익 반 대한민국 반역자였으며, 박정희의 조국근대화 大役事를 목숨 걸고 반대하였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붉은 색깔은 북한 김일성과 직간접적으로 한 통속이 되었었다. 5.18에 북한개입이 있었다는 논쟁을 원천봉쇄 하려는 무법자들이 무슨 짓을 하든 이미 5.18무장폭동은 북한 김일성의 대남적화통일 공작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였음을 감출 수가 없어졌다. 5.18에 즈음한 북한 특수군인들의 광주 침투와 시위선동 및 교란작전은 머지 않아 그 내막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지만, 지금 드러난 이상과 같은 북한연계 사실들만으로도 5.18광주 무장폭동은 從北 逆賊들의 대한민국 파괴활동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상.
2013. 7. 5. 만토스
댓글목록
JO박사님의 댓글
JO박사 작성일korea님의 댓글
korea 작성일운동권에 한번이라도 몸담았던 자들은 삼청교육대 부활해서 죽을 때까지 가두어 놓고 후려패야합니다.
korea님의 댓글
korea 작성일
김대중은 대학을 무제한으로 개교시켜 대학생의 북한공산주의 의식화 교육을 위해
공작을 열심히 한 범죄자.
다음,김대중은 주택투기 열풍을 일으키고, 이를 위해 분양권전매 자율화를
통하여 북한공산당을 위한 공작금을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