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600명 연고대생이 바로 북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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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3-05-31 22:25 조회4,857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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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에 600명 연고대생이 바로 북한군?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는 연일 5.18광주에 북한군은 오지 않았다고 열심히 떠들어 댄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가 이제는 아예 오지 않았다고 못 박아 열변을 토한다. 참으로 가관이다. 그는 과연 무엇을 위해 왜 북한군 개입 說을 애써 부정하고 있을까? 조갑제 기자가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부터 나는 그 말썽 많은 5.18에서의 “연고대생 600명”이라는 유언비어에 대해 김대령씨의 “역사로서의 5.18”에서 언급된 것들을 열거하고 정리하여 나름대로 그 수수께끼의 답을 추정해 보기로 하겠다.
1. 탈북자의 증언
자유북한군인연합 공동대표 최중현씨는 북한 4군단 70정찰대대 출신 이덕선 씨로부터 당시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정찰대대들이 광주에 투입된 정황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들었다 한다. 이덕선씨에 따르면, 광주에 투입된 인원은 모두 600명 이었으며 선봉부대는 2군단 정찰대대 300여명이었다. 나머지 300여 명은 인민군 각 군단, 저격여단 등에서 차출된 정예병력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2. 북한 책 “광주의 분노” (조선로동당출판사, 1985, 34-35)
이때부터 봉기군들은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 놈들의 무기고를 본격적으로 들이 치기 시작했다. 폭동군중들은 괴뢰들의 군용차량공장 “아시아 자동차공장”을 습격하여 314대의 군용차량을 로획하였으며 그밖에도 414대의 각종 차량들을 탈취하였다. 봉기군들은 이 로획한 차량들을 타고 다니며 놈들의 무기고들을 들이치고 많은 무기를 로획하였다. 600명으로 구성된 폭동군중의 한 집단은 괴뢰군 제199지원단 제1훈련소의 무기고를 기습하여 숱한 무기를 탈취하였고, 지원동 석산의 건립 가옥에 보관되어 있는 많은 폭약과 뢰관들을 빼앗아 내었다.
3. 1995년 대한민국 검찰 조사보고서 (서울지방검찰청, 1995, 92-93)
02:30경 용산을 출발, 고속도로를 경유하여 08:00시경 광주에 도착한 20사단 지휘차량 인솔대는 광주공단 입구에서 진로를 차단한 수백 명의 시위대로부터 화염병 공격을 받고 사단장용 지프차 등 지휘용 지프차 14대를 탈취 당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사병1명이 실종되고, 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09:00시경 20사단 지휘차량을 타고 온 시위대 300여 명과 고속버스 5대를 타고 온 시위대300여 명이 아시아 자동차 공장을 점거하고 장갑차4대와 버스 등 차량 56대를 탈취하여 광주시내로 진출하였음.
4. 고졸 3수생 시민 군 김원갑이 김영택 기자에게 전한 증언 (김영택, 1988, 124)
도청에 들어간 시민 군은 처음에 김원갑이 지휘하고 있었다. (군대를 전혀 모르는 그가 총지휘자일 수는 없고 아마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계엄군이 철수하자 광주공원의 시민회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무장시위대를 차량에 태워 도청에 들어 왔다. 밤을 도청에서 세운 김원갑은 아침7시쯤 시민군 500 여명을 지휘하면서 시내 요소요소에 바리케이트를 치는 한편 돌고개쪽, 교도소쪽, 백운동쪽, 운남동쪽, 지원동쪽, 광천동쪽 그리고 고속도로 진입로 등 7개소에 임시초소를 세우고 600여 명을 배치하여 계엄군의 동태를 감시하는 한편 시내 주요 건물에도 시민 군을 배치했다.
5. 5월22일부터 복면부대 등장과 전옥주의 300명 선동방송
21일 도청을 점령한 시민군은 22일에는 2천여 명의 군중이 도청 앞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300여 명의 극렬시위자는 경찰복과 공수단 복장을 하고 복면을 한 모습으로 40여 대의 군용차량을 몰고 송정역에 집결하여 공포를 쏘면서 시위를 하였고, 관광호텔, 전일빌딩, 전남의대, 유진온천 등 건물 옥상에 기관총을 설치하고 광주에 이르는 도로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하였다. 애초에 600여 명 중 일부 시민군이 광주진입을 위해 계엄군에 무기자진반납을 하고 먼저 들어 왔고, 나머지 300여 명이 송정에서 무장시위를 했다는 정황이다. 전옥주는 그때 마이크를 들고 시내를 달리면서 연고대생 300명이 송정리 쪽에서 오고 있다고 방송하여 시민군을 흥분케 한다.
조갑제 류의 사람들은 북한 책이든 탈북자의 증언이든 전혀 관심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기자나 계엄군의 증언과 반드시 대조를 해야 조금은 수긍을 하리라고 본다. 시민군이라고 이름은 되어 있지만, 사실상 도청을 공격하고 점령한 것은 위에서 반복되는 300명 단위의 시민 군이며 그들은 신분노출을 피하기 위해 300여 명의 병력 지휘에는 형식상 광주시민을 앞세운 듯하다. 고졸 3수생 김원갑이 어떻게 600여 명의 병력을 전략요충지에 순간적으로 그토록 세심하게 배치할 수 있겠는가? 바로 신원미상의 특수군인들이 사전의 계획대로 지휘하였음이 눈에 선하지 않는가?
1980년대의 연고대생 여러분 중에 광주5.18에 왔었던 사람 누가 있나요? 만일 아무도 광주에 온 사람이 없다면 그들이 바로 북한군일 수 밖에 없습니다. 누가 그들을 외계인이라고 할 것인가? 50대의 연고대생 출신 여러분, 하루빨리 5.18단체에 신고하여 민주화 영웅도 되고 자손대대로 국가의 보상도 챙기시기 바랍니다. 김원갑씨가 지금도 생존해 있다면, 당신이 지휘한 600여 명 시민군 중에 대체 몇 사람이나 신분을 알고 있었는지 양심선언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 중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는지, 당신이 모르는 사람들 모두는 틀림없이 북한군인이었을 것입니다. 이상.
2013. 5. 31. 만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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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무어님의 댓글
마이클무어 작성일만토스님,명쾌한 결론입니다. 조갑제는 더 이상 글장난 하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