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기자의 5.18 관련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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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사연 작성일13-06-01 11:13 조회3,227회 댓글3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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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기자가 5.18 북 특수군 개입여부 관련하여 하는 주장을 보면 기본적으로 새롭게 발굴, 제기된 많은 객관적인 기록과 증언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연구가가 자신이 과거 알지 못하던 기록들을 제시한다거나 또는 새로운 증인이 나타나게 되면 그 사안을 다루었던 모든 연구가는 당연히 그 정보들을 입수하여 새로 검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깔아뭉개고 기존의 설에 집착하는 것은 이미 그 설의 객관성을 잃게 하고 그 설의 경쟁력 자체를 포기하는 행위가 될 것이다.
(5/22 TV조선 <시사토크 판> 대담; 고딕체는 방송사 대담자, 대답은 조갑제 기자)
/// *33년 전 광주사태 당시 부산 국제신문 사회부 기자셨죠?
趙甲濟(이하 성명 생략): 네.
* 사회부 기자로서 회사의 방침에 불복하고 광주에 가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불복했다기보다는 제가 그 당시에 釜馬(부마)사태에 대한 책을 쓰고 있었어요. 그 연장선상에서 광주사태가 났기 때문에 직업적 호기심에 휴가를 내고 광주에 갔습니다.
* 그래서 해고까지 되셨죠?
그것 때문에 해고되고, 그 뒤에 新軍部(신군부)가 해고된 걸 모르고 解職者(해직자) 명단에 넣어서 확인射殺(사살) 당했습니다.
‘북한군 개입說’이 나온 지 7년… 아무도 檢證하지 않았다!
* ‘광주는 당시에 어땠다’라고 한 마디로 얘기하면 어떻습니까?
제가 광주사태에 대해선 지금까지 취재하고 있습니다. 그때 현장에서 5월23일부터 27일까지 취재를 했습니다. 시민들도 만나고 진압한 공수부대원들도 만났습니다. 정치적으로 그 상황을 관리했던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이것은 그 성격이 이미 確定(확정)된 사건입니다. 최근에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루머에서 시작해서 그것을 계속 바로 잡는 과정을 통해 광주사태의 眞相(진상)이 확정되었다고 봅니다. ///
원문;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1427&C_CC=AZ
위의 인용문 두 번째 단락에서 보면 조갑제 기자는 5.18을 부마사태의 연장으로 보는 듯하다.
조갑제 기자는 “제가 광주사태에 대해선 지금까지 취재를 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지만원 박사의 책 3종이 나온 이후로도 어떤 연유에서인지 fact 수집을 위한 취재를 하지 않고 있고, 탈북자들이 증언집을 낸 뒤에도 취재를 하지 않고 있는데 이 태도로 보면 최근 나온 김대령 박사의 저서도 읽지 않고 있을 것 같다. 또 최근 방송에서 본인이 직접 왔다고 주장하는 탈북자(김명국;가명)가 있다고 하는데도 그를 만나 스토리를 들어보려고 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취재하고 있다는 말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그 성격이 이미 확정된 사건”이라 하는데, 아마도 조갑제 기자의 5.18에 대한 시각은 김영삼의 위헌법률인 5.18특별법 이후 정부가 공식적으로 결론지은 내용과 같아 보인다. 그래서 조갑제 기자의 주장은 5.18 관련한 두 번째 대법원 판결에 便乘(편승)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최근에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해 새로운 국면을 맞았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루머에서 시작해서 그것을 계속 바로 잡는 과정을 통해 광주사태의 眞相(진상)이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루머에서 시작해 그것을 계속 바로 잡는 과정”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있었으며 진상은 누가 확정했다는 말인지?
결국은 5.18과 관련한 尨大(방대)한 기록을 분석한 책이 여러 종 나오고 간접증인과 직접증인이 존재한다고 전해져도 그 情報源(정보원)은 취재하지 않고 모른 척 무시하면서 두리뭉실한 말로 부인하며 기존주장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갑제 기자가 fact 수집을 의도적으로 기피하거나 설사 알아도 사실정보를 기존주장에 유리하게 取捨選擇(취사선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태도는 기자라면 절대로 취해서는 안 되는 경우에 해당된다. 도무지 기자답지 않은 것이다.
조갑제 기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요소로는, 현장에서 직접 보았다고 하는 점을 내세우는 점인데 이것은 일반인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위의 조갑제 기자의 글에는 “23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 있었다”고 하였다. 5.18건은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전개되었다. 한데 조갑제 기자가 현장을 본 것은 10일 중 5일간으로 크고 중요한 사건들이 발생한 초기에는 현장을 보지 못했다.
또 개인적으로 지명도가 높아 이 역시 일반인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나아가 조갑제 기자의 주장은 김영삼의 위헌법률 이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부에서 공식 규정한 내용과 궤를 같이 함으로써 5.18과 관련한 국가 공식결론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조갑제 기자의 주장은 그에 반하는 많은 새로운 근거들을 무시하고 반론들의 내용도 검토하지 않고 지만원 박사의 책이 나오고 탈북자들 증언집이 나오기 이전의 결론이 옳다고만 强辯(강변;억지주장)하고 있으므로 그 주장은 이미 효력이 없어 보인다. 즉 지만원 박사의 책과 탈북자의 증언집이 나온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update가 전혀 되지 않아 시효가 이미 지난 낡은 설에 불과한 것이다.
조갑제 기자가 평소 하는 많은 활동(글, 저술, 강연)들은 나라가 좌경화되는 가운데 나타나는 수많은 가지를 치는[剪枝;전지]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일에 多大한 공을 세우고는 있지만, 지금 문제가 된 사안은 수많은 가지들에 풍부한 양분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는 뿌리에 해당하는 것이다. 가지치기 아무리 많이 해도 뿌리가 살아 있는 限 가지는 계속 돋아나게 마련인데 어찌하여 뿌리를 자르는[根絶;근절] 작업을 가로막고 나설까? 그것도 기자답지 않게, 새로운 근거와 증언들이 많이 속출하고 있음에도 그것들을 취재할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딱하게도 많은 가지치기 功(공)으로도 그 뿌리자르기를 방해하는 過(과)를 상쇄하기에는 한참 모자랄 것 같다.
文史哲(문사철) 학자들 중에는 자신의 학설이 후에 다른 학자의 학설에 의해 객관적으로 완전히 부인되어도 자신의 설이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가지고 가는 사람이 간혹 있다. 지금이라도 새로운 기록과 증언들을 취재하여 설의 수정을 시도하지 않으면 조갑제 기자도 이러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 눈에 뻔히 보인다.
댓글목록
경기병님의 댓글
경기병 작성일지박사님의 최근글을 읽고 조갑제 기자의 단순한 오기, 자존심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부정세력과의 연계가 되어 있기에 수십년이 흘러도 입장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사연님의 댓글
고사연 작성일
아마도 토론에 나오지 않을 것 같고...새로운 증거수집도 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5.18특별법 이후의 정부공식결론과 일체화되었으니까요.
12.12에 대해서도 정승화를 두둔하고, 시해사건 이후 정승화가 시해범이 김재규인 것을 알고도 체포하지 않고 정이 김에 방조한 사실에는 눈감고 전두환 측이 권력욕에서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어요.
또 전두환에 대해 '감정'을 가졌던 것 같아요.
전두환이 월남에 연대장으로 파견되었을 때 있었던 이상한 사건과 광주사태가 비슷한 맥락이라는 암시를 주는 글을 전에 쓴 적 있고 박사님이 그 글에 바로 반박하는 글을 올리신 적도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역시 감정적인 것으로 보였는데...
'감정'을 가졌던 이유는 전두환 때 '解職(해직)'을 두 번 당했다고 해요. 이것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심각한 문제지요. 상식적으로 사적 감정을 가질 만도 하지요.
이걸 보면 원래 귄위주의 정권에 좀 안티한 성향이었던 것으로 짐작되네요.
거머실님의 댓글
거머실 작성일반론이 제기되면 그 반론에 대해 실증적 자료제시 또는 논리적 반론이 논쟁의 정도 아닌가?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면 논쟁의 패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