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탄 25만발의 시민군 대 200발의 계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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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3-05-27 08:15 조회4,440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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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탄 25만 발의 市民軍 대 200발의 戒嚴軍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경 시민 군이 먼저 발포한 지 불과 1시간 좀 지나서 부대단위 급의 무장 시민 군이 등장하였다. 그리고 실탄수가 200발을 별로 넘지 않던 공수부대에 비해 이때 시민 군은 25만 발이 넘는 실탄을 보유하고 있었다. 즉, 시민 군이 공수부대보다 1,000배 이상의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때 영화(화려한 휴가)에서처럼 공수부대가 도청 광장에서 시위대를 추격하며 사살하고 있었다는 捏造된 내용과는 달리,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계엄군이 주저앉아 있는 상태에서 시민 군 차량공격을 받고 있었음을 시민 군 장선호는 이러게 증언한다.
“그때가 오후 2시쯤이었다. 도청 앞에는 계엄군들이 연좌하여 있었는데 그때 시위대 차량인 군용트럭 한 대가 계엄군 쪽을 향하여 빠르게 달려갔다. 순간적인 일이라 계엄군들이 피한다고 했으나 그 중 2 명이 군용트럭에 치여 버렸다 (장선호, 1988)”
계엄군은 21일 도청 앞 광장에 운집하여 퇴로를 차단당하고 공포에 떨고 있었는데, 청문회에서는 그런 계엄군을 향해 애국가를 부르는 시민들에게 집단발포 했다는 터무니 없는 누명을 씌우려고 안 간힘을 썼었다. 그런데 그런 계엄군의 급박한 상황이 있기 전의 시민 군의 亂動은 발포명령을 누가 내렸느니, 발포는 누가 먼저였느니 따위로 왈가왈부 하는 것이 전혀 무의미하다 할 정도로 無法天地요 殘忍無道 하였다.
파출소를 불사르고, 경찰들을 감금하고, 방송국에 방화하고, 세무서를 태웠으며, 버스를 경찰들에게 돌진시켜 4명을 압사시키는 시민 군을 두고 계엄군의 발포 운운하는 자는 “사람을 칼로 죽이면 무죄요, 총으로 죽이면 유죄”라는 궤변을 지껄이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1997년의 대법원 판사들 그리고 대법원장은 대체 어떤 인간들이었을까? 지금 혹시 살아 있다면 답 좀 해 보라. “당신들이 판결한 내용 대로라면, 당시의 계엄군은 총포로 무장하고 광주를 무법천지로 만들었던 시민 군들에게 모두 총을 맞아 죽든지 불 구덩이 속에서 타 죽든지, 그것도 아니면 계엄하에서 불법시위를 자행한 시민 군에게 항복하고 감옥 가든지 사형을 당했어야 한다는 뜻인가?” 대법관이라는 당신들이 대체 1997년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양심선언 해야 한다. 혹시 저 세상에 간 사람들은 저승에서 염라대왕에게라도 양심선언 해야 할 것이다. 이상.
2013. 5. 27. 만토스
댓글목록
만토스님의 댓글
만토스 작성일무기고를 습격하고 탈취한 실탄으로 무장한 시민군을 청문회와 대법원은 마치 아이들 병정놀이 쯤으로 생각했었나 봅니다. 하기야 계엄군을 반란군으로 못 박아 놓고 재판을 진행한 인간들에게는 시민군이 국군이요 국군이 반란군이라는 역적의 논리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인민재판을 감행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빵구님의 댓글
빵구 작성일
만토스님이 정말 영양가 있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지만원 박사님 께서는 바로 이런 영양가 있는 자료로 분석을 해주셔야 합니다.
200여명의 사망자중 25만발 칼빈 엠원 탄약으로 죽일수 있는 인원과 200발의 엠16탄약으로 죽일수 있는 인원을 비교해 주세요.
25만발 중 등뒤에서 쏜 탄알 숫자도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