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좌익은 광주와 5.18을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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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보세요 작성일13-05-25 09:51 조회3,537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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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사태 때 북괴 특수군의 침투병력을 굳이 600명이라는 숫자에 못 박지 않더라도 침투 그 자체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5.18이 아니라도 언제는 북괴의 간첩이나 무장공비가 침투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하물며 5.18과 같은 무력봉기에 북괴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더 이상 할 것이다. 만약 그동안 5.18의 북괴군 개입설에 대한 수사와 연구 자료도 없이 불쑥 증인만 내세워 주장하였더라면 그것은 마치 ‘카더라 통신’이 되어 국정원이 TV조선을 통해 알려 준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성의 없는 증거 조사와 다름없었을 것이다.
5월 22일 TV조선이 국정원 고위관계자를 취재하여 보도한 내용은 “함경북도 청진시 낙양동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묘’를 북한 정보원을 시켜 현장 조사했지만 묘비 속 이름들과 ‘광주민주화운동’과 연결 지을 증거를 찾지 못했다” “특수부대원의 이름을 나열하고 특수임무를 공개하는 것도 상식에 맞지 않다”고 하는 간단명료한 내용증명 날리듯이 보도하였다. 그리고 조갑제 대기자는 그 보도로서 ‘상황 끝‘이라고 판단을 내렸다.
나는 평소에 존경하는 조갑제 대기자님의 의견에 날을 세워 반박하고 싶지 않다. 다만 상식선에서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한다. 아무리 김대중이 역적 ,빨갱이, 대남공작원 제 1호라고들 하지만 항간에서 흘러나오는 말 중에 무기고 습격계획을 김대중이 미리 다 알고 있었던 계획이라는 루머를 차마 믿고 싶지가 않다. 일생을 민주와 평화를 추구했던 우리의 대통령이었으니 국민으로서 부끄럽기 때문이다. 진실로 북괴가 아닌 시위대의 소행이라면 그 엄청난 모의와 사태에 김대중대통령은 영원히 그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역사적으로 난이나 사태에서 그 주모자가 살아남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1980년 7월 전두환정권에서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대중은 1982년 12월 같은 정권하에서 기적 같은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어 나중에 대통령의 자리에 까지 올랐던 천운을 타고난 인물이다. 그렇다면 국가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치국을 했어야 하는데 끝내 아집을 버리지 않고 김영삼, 노무현과 더불어 지나친 민주화로 필요 이상의 좌경세력을 창출하여 작금의 국가기강을 초개처럼 무너뜨렸다. 지금 이 나라의 지도자가 누구인지도 모를 지경이니 이는 명백한 치국의 실패다.
무기고 탈취란 북괴의 5.18 개입의 키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44개 무기고 습격은 어마어마한 계획이며 시민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짧은 시간 안에 동시다발로 일사분란하게 실패 없이 습격, 탈취한 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이 역적모의는 훗날에도 계속 이어 질 5.18을 연구하는 군사전문가와 사가들의 이성적인 평가에 의해 보다 깬 후손들로 하여금 용서받지 못 할 반역자로 각인될 것이며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은 달력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러므로 무장폭동으로 대란이 일어난 광주의 입장에서는 북괴의 5.18 개입설의 확고한 입증은 훗날을 생각해서라도 차라리 다행한 일인 것이다. 그것은 김대중과 광주시민에게는 더할 수 없는 기회이며 유리한 입장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무장폭동이라는 그 오명을 북괴에게 넘겨주어야 비로소 민주화의 운동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호남의 영웅 김대중의 동상이 수백 년 성상으로 남아 광주를 빛나게 해줄 것이다.
댓글목록
EVERGREEN님의 댓글
EVERGREEN 작성일
북괴의 침투공작이 기정 사실이므로 좌익이 역사 바로 세우기에 방해하지 말고 인정하라는 깊은 뜻이 담긴 글이군요.
추천합니다.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518생각은 무슨 518생각!!!!
거기서 받아쳐먹은 보상금 생각밖에는 없을 껄?????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