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포로에 대해 한 없는 빚을 지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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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고아제 작성일13-05-01 15:31 조회3,805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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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6.25가 터지고 난 후 중공군이 개입하고 1.4후퇴를 하면서
다음해인 1951년 7월부터 유엔군은 북괴와 정전 협상에 들어간다.
이승만 대통령은 반발한다.
이 상태로 휴전을 하면 북괴가 다시 침략 해 올 것이고 남한은 적화 될 것이 뻔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생각은 지금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마찬가지니 끝까지 싸우겠다고 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꼭 정전을 하겠다면 안전장치가 필요 했다.
물론 미국은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래서 1953년 6월 18일 유엔군이 수용하고 있든 3만 5천여명의 반공포로 중에서
2만 6천명을 탈출 시킨다.
유엔군은 정전이 되면 북괴에 포로가 되어 잡혀 있는 유엔군 포로와 반공포로를
맞교환 해야 하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탈출을 시켜 버렸으니 큰일났다 싶었다.
어쩔수 없이 미국은 이승만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어주고 만다.
한미상호방위 조약은 전쟁이 나면 미국 의회의 승인 없이 69만 병력, 5개 항공모함전단,
160척의 해군함정, 1600여 대의 항공 전력이 자동으로 한국에 오게 되어있다.
북괴가 남침을 못하는 주 이유가 바로 이 자동개입 미국 전력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종북좌빨들이 주구장창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전이 되고 북괴는 8만명으로 추산 되는 국군 포로 중 8000명만 내 놓는다.
나머지 국군 포로를 깔고 앉아서 이들을 아오지 탄광 같은 탄광에 투입시켜
모자라는 북괴의 노동력을 채운다.
2만 6천명의 반공포로를 탈출 시킨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을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대한민국이 오늘날의 번영을 누리는 초석을 마련하는데
이바지 했지만 그대신 8만여명의 국군포로를 사지로 몰아 넣은 것이다.
이러한 희생하에 자유와 번영를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국군포로에 대해
한 없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이고 살아 있는 분이라도 구해 와야 하는 것이다.
댓글목록
자유조국님의 댓글
자유조국 작성일
광주 사태는... 민주화 운동이니 개발운동이니 그러면서... 수천~ 수억을 주면서.. 온갖 해택다 주고..
도대체.. 나라를 위해... 진정 충성을 다한 이들에 대해선... 개차반 취급하는... 이런 개탄스럽고 망할 나라가 어디에 있을지................ 진짜 개같은 나라에 살고 있음이.... 너무나 가슴 아픈듯....
湖島님의 댓글
湖島 작성일
정말 개같은 세월이다.
평균 84세- 당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눈물이 앞을 가릴 것이다.
그들이 있어 오늘이 있다. 이눔들아!
그분들을 데려와 고향산천을 보여줘야 할거 아닌가? 아니면 민주화운동(?) 보상금 1/3만이라도 달러를 보내 줘야 할꺼아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