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에 침묵하는 비겁한 웰비잉 애국자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3-04-29 00:13 조회6,570회 댓글5건관련링크
본문
5.18에 침묵하는 비겁한 웰비잉 애국자들
5.18광주 폭동의 주동인물들은 한결같이 골수 좌익분자, 반국가행위자, 간첩들이다. 김대중, 윤상원, 황석영, 서경원, 문익환, 윤기권, 윤이상 등 우리가 더 이상 구구한 설명을 할 필요도 없는 이른바 반역자들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자들이 앞장 서서 일으켰던 5.18에, 북한 김일성의 대남적화통일 전략이 합세하여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남한을 적화시키려 했던 역적들의 난장판이었음이 5.18의 역사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광주의 5.18단체들이 아무리 민주화 운동이라고 각인시키려고 발버둥치며 편향적으로 날조한 기록이 세계유산에 등재 되어 있다 해도 그 거짓은 언젠가 반드시 그 검은 속내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 것이다.
이런 반 대한민국적 역사를 모를 리 없는 조갑제 기자 등 소위 글 줄이나 쓰고 대중 앞에서 말발이 제법 먹혀 들어 가는 인사들이 안타깝게도 비겁한 처신을 내 보이며 대한민국 중반의 역사를 붉게 물들인 반역의 역사에 눈을 감고 귀를 막아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에, 필자는 분노해 마지 않는다. 소위 애국인사라는 사람들은 속된 말로 “5.18폭동의 역사에 침묵함으로써 웰비잉 애국활동으로 이름을 팔며 입으로만 편하게 애국흉내를 내고 있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5.18을 神聖視 하며 그 중심인물 김대중을 가히 神格化 해 놓은 광주 전라도를 향해 공격을 감행 할 용기도 신념도 없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종북, 이적, 좌익빨갱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자격조차 없다고 봐야 한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5.18광주가 바로 남북한 빨갱이들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1979년 10.26에 의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시해되었다. 그리고 최규하 총리가 과도기 정부를 꾸려 가고 있었으며, 그런 국가위기의 시기에 김대중과 국민연합이라는 반 정부 단체는 최규하 정부를 무너뜨리고 실권을 장악하려 했다. 5.18폭동반란은 당시에 오직 반 정부활동에 전념했던 김대중, 문익환 등과 간첩 서경원까지 연루되었던 단체들이 남한에서 폭동반란을 일으켜 정부를 전복하려 했으며, 북한에서는 그 혼란을 틈타 대한민국 적화의 호기로 보고 북한군을 광주에 침투시켜 합작으로 일으켰던 대한민국 국가전복을 획책했던 엄청난 반역행위였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10. 5. 13일자 조갑제 기자는 “북한특수군부대의 광주개입 주장은 믿을 수 없다”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게재함으로써 종북빨갱이들과 온 몸으로 싸우고 있는 진정한 대한민국 국민들을 무척이나 실망시키고 말았었다. 그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다.
4년 전부터 한 탈북자가 "광주사태에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주장을 하고 일부 애국단체에서 이에 동조하고 있다. 이 탈북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5.18사태 당시 함경남도에 위치해 있던 우리 부대는 전투동원상태에 진입하라는 참모부의 명령을 받고 완전 무장한 상태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24시간 진지를 차지하고 광주사태에 대해 긴급속보로 전해 들으면서 20여일 이상 출전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부 비 편제 서기로 자주 동원됐던 나는 나중에야 당시 제10군단장이었던 여병남과 7군단 참모장이었던 김두산의 대화를 통해 특수부대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었고 희생도 많았지만 공로가 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북한군 특수부대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광주에 특수부대가 침투 했었다는 말이 공공연한 비밀로 나 돌았다. 특수부대들에서 선발한 최정예 전투원 1개 대대가 해상을 통해 남파됐으며 그중 3분의 2가 희생되고 나머지 인원이 모두 귀대 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개연성이나 증거가 없다.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함이 타당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1. 광주사태는 목격자가 많은 사건이다. 광주시민 수십 만 명과 진압군이 목격자이고, 수백 명의 직업적 구경꾼들, 즉 기자들이 취재했다. 외국 기자들도 많았다. 공개 리에 일어나고 공개적으로 취재된 사건이다. 광주사태를 취재했던 나를 포함한 어느 기자도 북한군 부대가 개입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2. 광주사태에 개입한 북한군이 대대규모, 즉 수백 명이라는데, 이들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을 당시 진압군(계엄군)의 장교들 중 어느 한 사람도 북한군의 출현에 대해서 보고하거나 주장한 사람이 없다. 3. 광주사태 사망자는 국방부 조사에 따르면 193명이다. 이들 중 군인은 23명이고 경찰관이 4명이다. 군인 사망자 23명 중 13명은 공수부대에 대한 국군 교도대의 오인 사격 등 진압군끼리의 충돌로 죽었다. 5월27일 광주수복을 위해 계엄군이 진입할 때 국군 3명이 죽었다. 나머지 7명의 군인들이 무장시민들에 의해 죽은 셈이다. 대대 규모의 북한군이 개입했다면 국군 사망자가 이 정도에 그칠 리가 없다. 4. 당시는 계엄령이 펴진 상태였다. 해안과 항만은 철저히 봉쇄되었고 공중감시도 정밀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어떻게 침투한단 말인가? 침투 병력 중 3분의 2가 희생되었다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이들을 섬멸한 국군이 있을 것 아닌가? 무장간첩 한 명만 사살해도 부대 표창을 받는데 수백 명을 사살한 국군 부대가 이 자랑스런 사실을 숨겼단 말인가? 5. 全斗煥 정권하에서는 광주사태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단서가 나오면 이를 반드시 확인했을 것이다. 전혀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6. 탈북자의 증언은 傳言에 불과하다. "내가 광주에 내려왔었다"고 나서도 믿기 힘든 판에 "카더라"란 이야기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7. 광주사태는 1980년 5월18일부터 시작되었다. 그 직후 광주 일원은 봉쇄되었다. 5월21일 계엄군은 광주시내에서 철수, 외곽을 포위했다. 이때 市外로 빠져나가던 시민들이 매복하고 있던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죽기도 했다. 대대규모의 북한군이 이런 상황에서 광주로 잠입했다면 국군과 대규모 전투가 발생했을 것이다. 정규군끼리의 충돌은 한 건도 없었다. 김일성(또는 김정일)이 5월18일 광주 상황 보고를 받고 특수부대의 출동을 명령했다고 해도 그 부대가 광주 부근에 나타나려면 빨라도 20일 이후일 것이다. 그때는 이미 광주가 철통같이 포위되어 있을 때였다. 수백 명의 북한군이 등장할 무대는 없었다.
위 내용을 전체적으로 해석하면, 조갑제 기자의 5.18에 대한 인식이 가히 초등학생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할 수 있거나, 아니면 그가 공공연히 주장하듯이 5.18이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명제에 어긋나지 않게 말하려고 억지스러운 궤변을 늘어 놓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된다. 그 이유는 대 기자의 칭호를 받고 있는 조갑제씨가 과연 박정희 시해사건를 발단으로 1980년 5.18광주폭동이 일어나기까지의 숨가쁜 권력투쟁 속에 김대중을 필두로 재야정치단체로 위장한 좌익반역자들의 대한민국 전복을 위한 불법 반정부시위와 김일성의 대남적화 야욕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말하고 있고, 더욱 실망스러운 점은 광주에 침투했다는 북한특수군인들이 마치 인민군 복장을 하고 우리 국군과의 전투가 없었으니 그 많은 북한군의 광주개입은 없었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웃지 못할 내용인 것이다.
이제 조갑제 기자가 광주5.18에서 북한군 개입을 보거나 듣지 못한 이유를 지만원의 글에서 발췌하겠다. 이 글을 읽고 난 후에도 조갑제 기자가 광주5.18에 북한 개입은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애국이니 대한민국을 외치는 글을 쓰거나 말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기 눈으로 보거나 듣지 못한 과거의 역사를 쓰고 말하려면 이미 남겨진 다른 사람의 기록을 믿고 인용할 수 밖에 없는데도, 유독 5.18광주에 북한특수군이 개입되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과 기록은 애써 무시하고 믿을 수 없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자기모순인 것이다.
이제 정규육사졸업, 월남참전, 미해군대학교 박사, 군사전략가 지만원이 주장한 5.18광주에서의 북한특수군 개입 정황을 들어 볼 차례다. 적진에 침투한 소수정예 특수군들이 당시 국군의 군사정보에도 노출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남조선 일반인 신분으로 위장하고 시위대와 합세했던 특수군사전략이, 기자들의 눈과 귀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1) 5월 21일 08:00시, 특수인력 300명이 광주 톨게이트에 20사단이 통과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화염병으로 공격하여 20사단 선발대를 혼비백산시켰다.그리고 무전기와 공용무기가 탑재된 위엄 있어 보이는 지휘용 지프차 14대를 탈취했다. 지휘부가 혼비백산이 되자 나머지 20사단 선발대는 오합지졸이 됐다. 그런데 이 300명은 나머지 20사단 병력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서둘러 지프차 12대와 15대 이상의 군용트럭들을 빼앗아 거기에 분승한 후 부지런히 방위산업 업체(장갑차, 군용트럭 생산)인 아시아자동차로 달려갔다. 오전 9시였다.
아시아자동차에는 또 다른 곳에 대기하던 300명이6대의 대형버스를 타고 9시 정각에 무더기로 도착했다. 5월 21일 아침 9시, 아시아 자동차 공장에는 600명이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장갑차 4대와 군용트럭 374대를 탈취했고, 이들 트럭들은 곧장 전라남도 17개 시군에 산재한 무기고를 향해 출발했다. 그리고 정오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5,408개의 총기와 광주시 전체를 날릴 수 있는 TNT를 탈취했다. 먼 곳에 있는 무기고는 아마도 아시아자동차에서 300km는 됐을 것이다. 1985년의 안기부 기록에는 38개 무기고를 털었다고 기록돼 있는데, 북한이 발간한 “대남공작 역사책”들에는 6개의 무기고가 더 추가돼 있다. 그러니까 모두 44개 무기고를 털은 것이다.
이런 것이 5.18단체들도 인정한 ‘80%가 양아치 계급인 기층세력’이 주도한 작전이겠는가?만일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이들은 빨갱이 아니면 또라이들일 것이다. 이 600명중 300명은 감히 20사던 지휘부를 혼비백산 시킨 게릴라 중의 게릴라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 물어보자. 이 300명이 구두닦이, 넝마주이, 자개농과 철공소 시다들로 구성된 인간들이겠는가를!
그리고 나머지 300명은 왜 다른 곳에 대기했는가?만일 20사단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다 해도 나머지 300명은 무기고를 털어야만 했지 않았겠는가? 그날 아침 9시, 아시아 자동차에 집결하여 일거에 44개 무기고를 털은 600명의 행위가 과연 양아치들로 구성됐던 600명이었겠는가?
2)모란봉의 꽃으로 불렸던 전옥주는 ‘연고대생 600명’이 곧 광주시민들을 구하러 온다며 용기를 내자고 독려했다. 그러나 그 600명의 연고대생은 국가가 엄청난 보상을 해 줄 때, 단 한 놈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민주화 영웅’이 없다. 모두가 북으로 간 것이다.
3)광주시민들이 피를 흘려 탈취한 무기였다면 과연 이렇게 쉽게 그리고 빨리 무기반납 운동이 전개됐을까?
5월 21일, 계엄군은 600명이 이끄는 분위기에 놀아난 광주시 폭도들에 의해 모두 광주시 외곽으로 쫓겨났다. 이에 할 일을 잃은 북한 특수군은 5월 22일 광주교도소를 6회 공격하는 등의 마지막 발악을 하다가 세가 불리해지자 모두 도망을 쳤다. 그런데 북한 특수군이 모두 철수하자마자 아무 것도 모르는 광주시민-학생들이 ‘시민수습대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가장 먼저 겁이 나는 것은 눈앞에 쌓여 있는 무기더미였다.“이 덤터기를 어떻게 쓰나!” 그래서 가장 먼저 주도한 것이 “무기 반납하여 광명 얻자”는 것이었다.
자기들이 피를 흘리면서 무기고를 털었다면 과연 그 무기를 회수하여 반납하자 했을까? 쌓인 무기는 남이 털어준 공짜의 무기였다. 당시 계엄사 역시 무기반납 여부에만 관심이 있었지, 어떤 인간들이 무기고를 털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전두환이 이끄는 정보요원들도 전두환처럼 정치군인이었지 내공은 맹탕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전두환 집단은 정치군인 집단이었다. 이는 전두환 집단이 이익집단이었지, 애국집단은 아니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4) 몸서리쳐지게도 이 600명은 1985년에 발행된 북한의 역사책 ‘광주의 분노’ 34-35쪽에도 나온다.
“누군가가 군중들 속에서 ”총! 총!“ 하고 피나게 절규하였다. . .그 총이 없었기 때문에 군중들은 놈들이 순진한 녀학생들의 옷을 벗겨놓고 갖은 희롱을 다하며 지어 젖가슴까지 도려내어 죽이고, 배를 갈라 태를 치는 것을 보고도 저지시키지 못하였다,. 시민들은 드디어 ‘피를 피로 갑자면 총을 들어야 한다’는 구호를 들었으며 무기획득을 위한 투쟁에 떨쳐 나갔다. 5월 21일, 광주고등학교와 숭일고등학교 학생들이 ‘학도호국단’의 무기고를 들이치고 많은 무기를 탈취하였다. 이것은 광주 인민봉기과정에 봉기군이 처음으로 벌린 무기탈취투쟁이었다. . . .이 때부터 봉기군들은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 놈들의 무기고를 본격적으로 들이치기 시작하였다. 폭동군중들은 괴뢰들의 군용차령 공장인 ‘아시아 자동차 공장’을 습격하여 314대의 군용차량을 로획하였으며 그 밖에도 414대의 각종 차량들을 탈취하였다. 봉기군들은 이 로획한 차량들을 타고 다니며 놈들의 무기고들을 들이치고 많은 무기를 로획하였다. 600명으로 구성된 폭동군중의 한 집단은괴뢰군 제199지원단 제1훈련소의 무기고를 기습하여 숱한 무기를 탈취하였고, 지원동 석산의 독립가옥에 보관되어 있는 많은 폭약과 뢰관들을 빼앗아 내었다.”
“600명으로 구성된 폭동군중의 한 집단” 북한의 대남공작 역사책에 명시돼 있는 이 표현은 그냥 가벼이 넘길 표현이 절대로 아닌 것이다.
끝으로 조갑제 기자를 위시한 비겁한 웰비잉 애국자 여러분 , 다음과 같은 한 탈북군인의 증언을 읽고 왜 자신의 눈과 귀에는 5.18광주에 침투했던 북한특수군인들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는지를 심사숙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산 증인으로서 5.18광주폭동은 김일성이 고용하고 키워온 고용간첩 김대중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허물고 적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려 했던 반민족적 행위였다는 것을 만천하에 증언합니다.
광주폭동이 일어날 당시 저는 인민군 정찰국 소속 124군부대 대남파견 전투원이였습니다.
저의부대에는 1979년4월에 “부대작전조 역량을 보충하고 작전조 인원들의 머리를 장발로 자를데 대하여” 라는 명령서가 하달되였습니다
당시 북한에서 머리를 장발로 자른다는 것은 자본주의 문화적 침투라 하여 사상투쟁의 대상 이였습니다 북한에서는 민간인들 조차 장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남파견부대에 장발을 지시한 것은 1980년 5월 광주를 비롯한 한국전역에서 다발적인 폭동을 준비하여온 북한최고수뇌부가 한국머리스타일 문화를 인식한 사전준비였습니다.” 이상.
2013. 4. 28. 만토스
댓글목록
전야113님의 댓글
전야113 작성일
북한
탈북군인의 증언에서
600명이 어떻게 남으로 침투하였는지 그 루트와
북으로 귀대 과정의 루트 또한 정확히 추가로 밝혀야 확실한 증거가 된다 생각합니다 -
그러지 않고는
조갑제같은 소인배들의 장사속을 뒤집지는 못합니다
見義思利하는 자들이니 전라5.18광주 장사나 하겠다는 심사라 봐야지요 -
조갑제씨는 작년 총선과 대선에서 대한민국의 정권이
전라인민당에게 넘어 갈 것이라 점치던 기회주의자들 한 명이라고 보면 틀림 없지요 -
종북세력들이란 바로 그런 기회주의자들이라고 보면 틀림없지요
누가 정권 잡던지 한자리만 끼면 된다는 반역행위 심보가 바로 기회주의자들입니다
콱~~ 몽둥이로 잡아야 !
유사시에는 반드시 종북세력은 ㅊ ㅅ 해야 합니다 !
만토스님의 댓글
만토스 작성일조갑제 기자는 6.25남침전쟁을 일으켰던 북한 김일성 족속들을 향해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남침소식을 듣자마자 “그 개 자식들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외쳤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이는 자신이 직접 듣지도 않았던 말을 공공연하게 옮기고 있지 않는가? 그런 조 기자가 왜 유독 5.18광주의 음침한 역사에 대한 지만원 박사의 사실적, 과학적, 논리적 진단뿐만 아니라 남북한에 널려 있는 수 많은 5.18역사 기록을 자신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믿을 수 없다고 하는가? 이런 모순적 언행은 훌륭한 평을 받고 있는 조 기자의 단순한 기자정신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5.18광주사태에 대한 과거 자신의 미숙했던 인식을 인정하고 고치지 못하는 아집과 자기합리화를 위한 억지스러운 언행으로 나는 생각한다.
전야113님의 댓글
전야113 작성일
- 밑져야 본전-
종북주의자들의 심보를 대변하는 말입니다
대한민국에는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호하는 법이 있기 때문이지요 ㅎㅇㅎ
개성공단을 포기해도 북괴는 한국의 법으로는 어쩔 수 없으니
'밑져야 본전- 이라고 하지 않습니가 ㅎㅎㅎㅎ
전라교주 김대중이란 인간이
햇볕정책'이라고 마구마구 퍼줘 핵무기 개발하고
속으로 대한민국을 얼마나 비웃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밑져야본전이 그들의 장사속인데,
이솦우화에 나오는 그런 웃기는 짓거리를 과연 진지하게 받았을까요
대한민국에서
이적행위하며 웰빙하는
5.18광신 종북세력들은 필히 척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북한에서 배워야 할 점은
단 하나
이적행위하는 세력들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 !
신생님의 댓글
신생 작성일
갑제형은 5.18뿐만 아니라 12.12의 역사관도 문제입니다.
저같은 민초들이나 무식하여 12.12 혹은 5.18에 관하여 진실공방 하는것이지
저 윗공기를 맡고있는 지식인 정치인 언론인 등은 사실만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2.12와 5.18에 관하여서는 저 윗공기를 맡고있는 분들이라면
12.12는 정당한 법집행이며 5.18은 반란 폭동이란것을 모를리가 결코 없습니다.
12.12와 5.18에 관하여 민주화운동 운운 하는것은
그들이 좌익빨갱이 이거나 정신병자이거나 사기꾼이기 때문입니다.
사필귀정님의 댓글
사필귀정 작성일5.18의 진실이 규명 돼면 모-든 역사가 바로설 겄이다 그리고 국가의 기강도 바로 설겄이다 정의의 법도 국가의 모-든 비리도 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