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과 국민을 사랑했던 영부인들 프란체스카 육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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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제지자 작성일13-04-24 22:35 조회3,934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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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굶어 죽는 국민들이 많은데 두가지 반찬이면 됬지 뭘 더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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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내 보고를 받으신 육여사 께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4.소록도의 빨간사과 박근혜가 호남에서 유일하게 득표를 이긴곳
아직도 소록도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천대하고 거부하던 이들과 악수를하고 병원을 지어준 육영수 여사라고 한다.
다음은 육영수 여사가 소록도를 방문해 그들 소외계층과 나눈 일화이다."맛 있겠네요. 이렇게 소중한 선물을 난생처음 받 아 본답니다. 정말감사하다고
모두에게 전해 주세요 그리고이거 여기서 먹어도되죠?" - 국모를 추억하며중 한장면
6.“나라가 못 살아 이국 땅 지하 수천 미터에서 여러분들이 이런 고생을 합니다. 내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 “아...어머니...” - 1964년 12월 10일
광부들도 사실은 100대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사람들이다. 63년 파독광부 500명 모집에 4만6000명이 몰려들었다. 상당수가 대학졸업자와 중퇴자들이었다. 당시 남한 인구 2400만명에 정부공식 통계에 나타난 실업자 숫자만도 250만명이 넘었다. 이런 시절이니 매월 160달러의 직장에 지원자가 밀려드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루르탄광 지하 1000m와 3000m 사이 막장에서 1m 파들어갈 때마다 4~5마르크를 받았다
독일 땅에 도착한 한국 간호사들이 처음 맡았던 일은 알콜 묻힌 거즈로 사망한 사람의 몸을 닦는 작업이었다. 70년대 중반에는 서베를린에만 한국 간호사가 2000명이 넘었다. 66~76년 독일로 건너간 한국 간호사가 1만30명, 광부들은 63~78년까지 7800여명이 건너갔다. 이들의 송금액은 연간 5000만달러로 한때 GNP의 2%대에 달했다.
조국을 사랑했고 국민을 사랑했던 영부인들
감사합니다 프란체스카
감사합니다 육영수
댓글목록
송석참숱님의 댓글
송석참숱 작성일
조국을 사랑했고 국민을 사랑했던 영부인들
감사합니다 프란체스카 여사님
감사합니다 육영수 여사님
이땅에 대한민국이란 이름으로 해가뜨고 또 해가 질때까지
두분의 고결한 이름은 길이 길이 기억되고 칭송을 받으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