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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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여사 작성일13-01-12 04:31 조회4,803회 댓글1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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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사태는 호남인의 본성 그 자체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집단적인 잔인성 의 난폭함
입과 귀가 얇은 이중성
급한 성격의 호남인의 본성 그때문이다
타 지역인이라면 그런 멍청한 일은 하지않는다
현역인 국군과 싸우다니 권위주의시대 그들을 이길수 있었겠는가
경상도 군인들이왔다 건장하고 잘 생긴 자들이와서
광주 사람들을 다 때려죽인다고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이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호남인의 어리석음때문이었다
5.18광주사태때 호남인들은 주먹밥을 내세우고있으나
호남인의 입장에서는 시위대가 굶어죽게 생겼다고 하였으나
진압군의 입장에서는 그 밥먹고 열심히싸워라 부추겼다는것이다
누가 옳은 것일까
정보화 시대 안 철수에게 물어보아야한다
댓글목록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제 2의 5.18이 일어나지 않기위해서는
남한의 우리국민은 신중히 생각해야한다
지금이야 대한민국 젊은이들 모두가 고등교육 이상의 공 교육을 받있으므로
호남인이라고해서 왕따 당할필요가없다
그 시절의 사람들은 지식이없어 그 큰 비극을 자아 냈다는것이다
군인부대에 경상도 군인들만 있는곳이 어느 부대란말인가
진압군 중에는 호남인도있었다니 그자체가 거짓말인었던가
조 사천씨가 장갑차 운전자가 아니었드라도 타고다니면서
시위를했다 는 것만으로도 범 법자가 된다는것이다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
시민군 장갑차 사수가 시민군 장갑차 운전자보다 더 극악한 무장폭도였을 것입니다. 조사천씨 사망 사건 내력을 알게 되면서 아래 링크 사진을 다시 보게 됩니다.
http://www.facebook.com/photo.php?fbid=530224470324133&l=2e7424f053
일반 민간인 담력으로는 도저히 저렇게 시민군 장갑차 사수 행세를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시민군 장갑차 사수 조사천씨가 죽자마자 또 한 명의 장갑차 사수가 나타났습니다. 이 사람 모습을 보면 자기도 조사천씨처럼 죽을 수 있다는 걱정조차도 전혀 없어 보입니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광주사태의 원인.....학생들의 대모 때문이었다
과정......시민군들은 경상도 군인들이와서 광주 사람들을 다 때려죽인다고하니
최 선을 다해 열심히 싸웠다
결과.....지식이 부족한 시민군들은 애써싸운 보람도없이 돌이킬수없는 비극을 자아내고 말았다
적은 외국이나 북에서 온 자들이 아니라 형 이나 아저씨 벌되는
남한의 국방임무중인 현역 이었으며 사망자는 광주 시민들이었으니
이 멍청한 자 들의 행동을 어찌한단말인가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
광주사태는 주동자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http://www.facebook.com/photo.php?fbid=530633596949887&l=9e93fd5fac 에서 보시면 피켓에 "전두환 대갈통을 세멘트 바닥에 깔아 버리자"고 적혀 있습니다. 이런 살벌한 구호가 광주시민들 구호로 잘못 알려져 왔지만 실제로는 광주시민들은 전두환이 누군지 전혀 몰랐습니다. 광주시민들은 그런 구호들을 따라 외쳤지만 그것은 주동자들의 구호였지 광주시민들 마음 속에서 우러난 구호가 아니었습니다.
송석참숱님의 댓글
송석참숱 작성일2013 새해!! 시사논객 구국기도 님 여기서 자주 뵙기를 바라며 건승하시길 축원합니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광주사태의 주동자나 다름없는 자들은
진보[좌파]의 정치권 자들이다 집권이 목적 이었던 야당은
기회는 이때다 란것을 노려 그 시절 지식이없는 자들의 단점을 악용해
헛 소문을 퍼뜨려 시민들을 분노시켰고 시위에 합세시켜 진압군과 맞서 열심히 싸웠으나
권위주의시대 기세 등등했던 현역을 이길수는없었다
더구나 카빈총으로 자기편인 시민들을 죽였다니 멍청한 자들이아닌가
자동차 회사의 차도 고위직의 허락 없이는 끌고 나오기 어렵다
대 부분의 국민이 여당과 정부의 뜻을따라 살아간다면 그시대의 흐름따라 원만한 삶을 살수있으련만
일부 부와 권력 탐욕에 눈이 먼 어리석은 자들이 그런 비극을 자아 낸다는것이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아무리 호남인들이 깡다구를 부려봤자 대한민국 남한엔
더 넓은 면적과 인구가 존재하고있으며
국민도 각 지역에서 거주해 살아 간다는것이다
5.18재단이나 5.18 연구소 호남인들은 대답해보라
조 사천씨를 죽인 자가
시민군인가?
북한 군인가?
국가 유공자[민주화운동]가 가되려면 떳떳히 밝힐수있어야한다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
5월 21일 오후 1시부터 전일빌당 앞 시위대를 향하여 집단 발포가 있었다는 것이 5.18측 주장입니다. 그러면 공수부대 집단 발포의 바로 그 현장에 조사천씨와 인부들이 임금을 받으러 우르르 몰려 들었다는 것인지 5.18 단체들에 물어야 합니다.
<<우리 집은 교육대 정문 맞은편 도로가에 있었다.
다음날(21일) 인부들이 집으로 놀러 와서 점심을 같이 먹은 남편은 인부들 임금을 주어야 하는데 공사를 맡긴 사람한테서 그 돈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남편과 인부들은 동구청 뒤에 산다는 사장집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
그런데 남편과 인부들이 나가고 30분도 채 못 돼서 같이 나간 인부 중 한 사람이 급하게 뛰어들어왔다. 남편이 총에 맞았다는 것이었다. 남편 일행이 시위차량(운행하는 정규버스가 없던 때라)을 타고 금남로에 도착해 걸어서 전일빌딩 근처를 지나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나더니 그와 동시에 남편이 "어이 나 총맞았나보네" 하면서 쓰러졌다고 했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도청 앞에서 장갑차타고 목에 총을맞아 사망한것을 여러 사람이보았고
외 국인 기자가 사진을 찍어놀았다니 더 이상 무슨 변명이 필요합니까
그여자는 딴동네 산다고 하였고 모든것이 다 거짓말이니 법의 심판을 받아야겠군요
그 동네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살고있으며 충장로의 도매업자나 광주 시민들 중에
기억하고있는 자가있는지 사진을 확대해 조사하세요
1월11일자의 내용을 참고해 주세요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호남인들은 먼 훗날 누가이것을 따질것이가 그래서대강 거짓 증언을해서
뒤짚고 말았지만 지금 5.18을 제조명하지않으면 않된다는것이다
더 기가막힌것은 사실론 자인 내가 그때 그일을 생생이 기억하고있으며
10 여년의 세월속에 모든 정보가 다 쏟아져 나왔다는것이다
법 으로 해결 하던가
정보화시대 서울대 총 학생 회장에게 물어보아야 정답이 나올듯함.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이 일어난지 어연 32년이 흘렀고
그동안 그여자는 어떻게 살고있는지
만나 본적은 없었다
그여자는 그즉시 그동네를 떠낳고
지금은 딴동네서 살고있다하여도 그즉시 도청앞에서의
부군인 남편의 소식을 누가 알려주었는가
조사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