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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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여사 작성일13-01-06 05:37 조회4,782회 댓글6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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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의 홈 페이지에 상세히 잘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니 5.18재단에도있을것이라믿는다 제가 제의한
조 사천씨의 죽음까지도 다 나와있었다
좌파란 자들은 5.18광주사태를 둔갑을시켜
민주화운동으로 뒤짚었던것이다
5.18재단...장갑차 운전자라는것을 숨겨버렸다
그 분의 처...진압군이 쏜 총에 가슴에맞았다
수사기록....맹 관상[카빈총 사망]
댓글목록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참고로 알려주고싶은것은 김 영철씨입니다
5.18광주사태당시 그분의 직책은 무엇이엇는지 잘모르겠으나
들은바로는 간첩으로 몰렸다고했습니다
광천동 시민아파트에 살고있었는데 그시절
그 분은 자원봉사자나 다름없는 분이셨지요
5.18이 끝나자 심한고문을받아 정신병자가되어
오랜세월을 병원에서 지내다가 돌아가셨답니다
인간적으로는 돌아가실때 너무나 짠해 불쌍했습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분이 5.18에 가담했다면 당연하다고봅니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그 시절 법에따라선 어쩔수 없었으니까요
그분은 광천동에서 성당을다니며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였고
야학을 운영하며 광천교회를 다니며 동네주민에게
선심을 베풀며 살았습니다 처음부터 의도적 이었다면
잘한것은 아니겠지요 성직자들이 잦은 집회를하며
김 수환 추기경님이 5.18에 관련된것도 다 광주의광천동
성직자들 때문이 아니었나싶습니다 5.18때 1000만원이란 돈을 보내줘
시위를 부추긴것에 불과해 추기경님의 삶에 누가된점
그러나 그 분도 모르고 한일이었지 알았다면 그럴수 없었겠지요
aufrhd님의 댓글
aufrhd 작성일
유언비어에 당한 것이지요.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고단위수법으로 속이면 속는 법이니깐요.
5.18반란 폭동은 북괴의 '유언비어'가 만들어 낸 적화전략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라고나 할까~
한가람님의 댓글
한가람 작성일
김수환 추기경 같은 분도 고단위 속임수에는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식견과 기도수행을 거치신 분들께는 혜안이라는 능력이 생깁니다.
속임수에 당할 당시에는 몰랐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흐르며 되집어 보면 그 거짓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이 죽을 때 까지도 5-18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분은 그 높은 자리... 만인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진실을 몰랐던 거지요.
그런 면에서 저는 김수환 추기경도 그저 기도나 열심히 한 젊은 시절은 어땠는지 몰라도,
나이 들어서는 자리나 잘 지키는 늙은이에 지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 존경???... 그런 것을 투사할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도사님의 댓글
도사 작성일
그 당시의 신협은
쇠뇌되어있던 집단이였습니다.
시사논객님의 댓글
시사논객 작성일윤한봉과 정상용 등 8인의 광주운동권은 꼬뮌주의 혁명가 그룹이었는데, 김영철이 그 중 일원이었으며 5월 25일 임시혁명정부 성격의 투쟁위원회 중책을 맡았습니다. 그가 평소와 달리 갑자기 호전적인 시민군이 되었던 것은 그가 거의 맹목적으로 윤상원의 혁명 거사에 협조적이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