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반역도들의 대한민국 역사침공 '백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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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르스 작성일13-01-06 08:14 조회5,561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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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좌파의 소굴이라고 불리우는 ‘민족문제연구소’라는 곳에서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백년전쟁'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친일파와 반민족자로 몰기 위해 단편적이고 부정확한 사실을 시중에 나도는 영화장면과 결들여 흥미위주로 짜깁기 한것이다.
골수좌파 역사학자로 정평이 나있는 성균관대 서중석교수가 해설을 하고, 또라이 탈렌트 권해효란 자가 나래이터로 등장한 이 역사 왜곡 다큐멘터리는 이승만을 묘사하기를 부정한 방법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한 요령꾼, 돈과 출세를 위해 동포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는 하와이 깡패, 일본의 정책을 비호한 A급 민족반역자, 부동산 재태크의 귀재, 독립운동자금으로 여성과 향락을 즐기는 부도덕한 플래이보이, 독립자금을 다 떼어먹고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방해한 자, 변신의 귀재, 맥아더에게 온갖 아첨으로 대통령이 된 자라는 내용으로 편집하였다.
또 하나의 문제작 '프레이즈보고서'는 박정희를 격하시키기 위해, 대미 로비스트 박동선의 스캔들과 관계된 ‘프래이즈보고서’라는 미국의 일개 국회의원이 박정희를 공격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를 기초로 하여, 한국의 경제성장은 박정희의 공로가 아니라 순전히 미국이 압박하고 코치한 것으로 비하하고, 1960년대 경제개발 초기 단계에서 발생한 증권파동이나 이병철 사카린 밀수사건 등 지엽적인 문제를 침소봉대하여 한국의 경제기적에 대해 조소를 보내고 있다.
이런식으로 한 인간의 일생을 악의적으로 편집한다면 예수그리스도는 한낱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체 마굿간에서 태어난 천덕구러기로서, 이상한 종교를 만들어 혹세무민하다가 잡범과 함께 사형당한 사형수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 석가모니는 결손가정에서 자라나 결혼후 아들까지 낳고도 가출을 한 비정한 아버지로서, 평생을 떠돌이로 살다가 식중독사고로 객사한 노숙자로 표현가능하며, 공자는 노나라에서 권력을 남용하다가 국외로 탈출한 후, 비슷한 무리들을 규합하여 천하를 떠돌면서 벼슬구걸하다가 죽은 '상갓집 개'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파괴의 기본은 그 나라 국민들에게 자기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박탈하고,자기 역사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우리역사를 부정하는 대표적인 역사관이 "대한민국은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하면서,불과 50년전 세계 최빈국인 우리나라를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부상시킨 찬란한 역사를 기회주의자들의 역사로 낙인찍은 노무현의 역사관이다. 이러한 역사관은 일제강점기에 일본학자들이 한민족을 "허구헌날 당파싸움만 하면서 외국에게 침략이나 받은 열등민족"으로 비하시킨 일제의 식민사관과 본질적으로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대한민국의 건국자체를 부정하는 역사관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기반을 만들고 국가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민족의 지도자를 파렴치범으로 비하시키는 역사파괴를 서슴치 않고 있으며,백년전쟁이라는 저질 다큐멘타리를 DVD로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튜브를 이용하여 세계로 전파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 될 국가라는 인식으로 똘똘뭉친 종북좌파들은 집요하게 추진한 국사교과서 왜곡에 이어, 이제 대한민국 역사와 긍지에 똥칠을 할 목적으로 총 공세를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같은 종북노들의 역사파괴공작을 방치할 경우 우리는 찬란한 역사를 잃어버린 역사의 낙오자가 될 지도 모른다.
소위 민족사를 연구한다는 곳에서 이따위 싸구려 작품을 만들 시간이 있으면, 우리민족의 영광스런 고구려 역사를 중국역사로 둔갑시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제대로된 대응을 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댓글목록
aufrhd님의 댓글
aufrhd 작성일
역시 빨갱이들에게 점령당한 대한민국 현실,
기가 막히군요!
피안님의 댓글
피안 작성일
역시 지 박사님이 나서야 합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연구와 책으로 확실히 이 좌익 붉은 소굴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려야 합니다.
광주출신 시인 곽재구의 글에는 윤이상이가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연루
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국제적인 구명운동으로 독일로 돌아가게된것을 언급하면서
80년 5월의 광주폭동에 여러국적을 가진 음악가들이 변변한 추모곡 하나 만들어내지
못해 윤이상이가 광주여 영원히 삼부의 교향시를 작곡 했다고 미화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