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영웅 박정희 -- 친일파가 아니라 지략의 애국자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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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람가세 작성일14-08-24 00:07 조회1,76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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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영웅 박정희 -- 친일파가 아니라 지략의 애국자다 (2)
박정희는 어떻게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는가?
여러 연구자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말한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박정희는 1940년 4월에 만주군관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기 전에도 동 학교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고 한다. 박정희가 21세, 22세이던 1938년, 1939년 당시 나이가 많아 만주군관학교 입학 요건이 안 되었기 때문이었는데 당시 만주군관학교의 입학 가능 나이는 16세 이상 ~ 20세 미만이라고 제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과연 어떻게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할 수 있었는가? 혹자는 박정희가 혈서 지원서를 썼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혈서를 쓴 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 게 입교가 가능했던 이유는 될 수 없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왜냐 하면 명색이 규칙을 중시하는 군관학교라는 곳이 혈서를 썼다고 해서 한 번 입학시켜 주면 그 게 선례가 되어 앞으로는 누구나 혈서만 쓰면 다 받아주게 되어 학교의 규범과 질서는 허물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정희가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이유에서 나이 제한의 예외로 인정받았기에 가능했던 것이니 그 것은 이미 거론된 아래와 같은 이유들 중 하나이거나 그 복합이라고 할 수 있다.
1. 대구사범학교 시절 교련 교관이였던 아리가와의 추천장
2. 대구사범학교 시절 교련 과목 이수로 얻은 하사관 자격증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시절 교련 교관이였던 아리가와와의 인연은 각별했다. 박정희와 아리가와는 민족적 출신은 서로 달랐지만 의미있는 소통이 가능했고 아리가와는 박정희를 출신을 떠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여겼거나 최소한 그런 싹을 봤음이 틀림없다.
"입교할 수 있었던 진짜 원인은 만주군관학교를 주인공에게 소개하였고, 대구 사범학교 시절 교련교사를 역임하였으며, 그 당시 만주주재 일본관동군 독립수비대장 아리가와 대좌의 강력한 추천으로 연령제한 규정을 예외로 하여 입교가 결정된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1등으로 만주군관학교를 우등 졸업하였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일본 육사의 3학년에 편입하여 유학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호산자)
즉, 대구사범학교 시절 아리가와라는 교련 교관과의 인연의 끈이 박정희를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만주 군관학교를 박정희에게 소개한 이도 그 아리가와였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만주군관학교라는 데가 무슨 어린 애 장난하는 데도 아니고 엄연히 나이 제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규칙을 무시하고 누가 혈서를 써서 보낸다고 하여 입학시켜 주는 데는 아니었으니, 누군가의 강력한 추천과 그 이상이 있었기에 박정희가 입교할 수 있었고 그 누군가가 바로 아리가와였던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추천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고 능력과 열정에 대한 인정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며 더구나 아리가와는 일본인이었고 박정희는 조선인이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출신이면서도 추천했다는 건 매우 특별하게 보아야 하며 그 만큼 박정희라는 인물이 무언가 특출한 데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사람을 추천하는 일에 매우 중대한 사회적 의미가 녹아 있다는 사실도 참고할만하다.)
그리고 필자는 단순히 아리가와의 추천서 하나로만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입학이 가능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말한 대로 일국의 군관학교라는 곳은 규칙을 중요시하는 곳이기 때문에 누가 추천을 한다고 해서 그 것만 믿고 입학시켜주는 것도 상식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리가와는 박정희를 추천하면서 나이 제한에서 예외가 될 수 있는 실제적인 요건을 찾아 박정희와 만주군관학교 모두에 알려 줬을 것이고 그 게 바로 박정희의 하사관 자격증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아리가와는 박정희가 나이 문제로 만주군관학교 입학에 실패하자 추천서를 쓰기로 마음 먹었고 아울러 박정희가 대구사범학교 재학 시절 교련과목 이수자여서 하사관 자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추천서에 적는 걸 빠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하사관 자격이 있는 자는 만주군관학교의 나이 제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26세 미만까지 지원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이 있었으므로 1939년 당시 22세였던 박정희가 나이 문제로 고민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몇 번이나 지원하고 떨어진 것은 바로 그런 예외 규정을 몰랐기 때문이고 그런 사실을 아리가와가 확인하여 알려 준 것이고 기왕이면 입학을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추천서까지 써 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정황인 것이다.
만주군관학교에 어떻게 조선인들도 입학 가능하게 되었는가?
운명적으로 박정희의 길을 터 준 홍사익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군이든 만주국군이든 일단 입대할 필요성 有
배움의 차원에서
면종복배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언급하고자 한다. 당시 만주군관학교는 어떻게 조선인 입학을 허용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원래 1932년 만주국이 건국된 후 처음에는 만주군관학교에 조선인들이 입학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고 일본계, 몽골계, 만주계만 장교로 진입할 수 있었는데 그런 규정을 고쳐 조선인도 만주국군의 장교로 진입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인물이 바로 조선인 출신 일본군 육군 장교 홍사익이었다는 사실이다.
홍사익은 1932년 3월 1일 만주국 건국이 선포된 직후인 1933년 4월 일본군 육군 소좌(소령)로서 관동군사령부에 배속되어 당시 갓 태어난 만주국군의 고문으로 파견되어 있으면서 조선인도 만주국군의 장교로 진입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래는 관련 자료이다.
"(만주국군 고문으로 있던 홍사익은) 만주국이 장교 요원 훈련기관 목적으로 설치한 육군중앙훈련처(봉천군관학교)를 지도, 감독했다. 특히 만주국군 고문으로 있는 동안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청년들의 만주국군 장교 진입을 제도화했다. 중앙육군훈련처의 입학 자격을 일본계, 몽골계, 만주계로 제한해 놓은 규정을 일부 고쳐 우선 현역으로 만주국군에 들어와 있던 조선인 사병들이 장교가 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이듬해 군관 학생 입학대상에 조선계를 포함시켜 모집공고를 내도록 조처했다. 1934년 1월에는 훈4등 서보장을 받았다." (위키백과에서)
이 사실은 박정희 평가에서 매우 중요하며 박정희의 만주군관학교 입학 필요성과 정당성을 말해주는 사료가 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근대화 되지 않은 나라, 열강의 식민지가 된 나라, 군사력이 없는 나라의 백성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군대 경력을 쌓고 근대(近代) 문물을 익히는 일은 필수라는 사실이다. 비교를 해 보면 1. 그렇게 경력을 쌓고 문물을 익히면서 때를 기다리는 것도 당시 조선과 조선인들이 실질적인 힘을 기르는 좋은 전략으로서 때로는 2. 직접 총을 들고 독립 투쟁에 나서는 것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고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홍사익과 박정희인 것이다.
홍사익이 일본군 장교로 근무하지 않았으면 박정희가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군대 경력을 쌓는 일은 불가능했으며 그러면 훗날의 5.16 군사혁명과 10월 유신을 통한 부국강병 기틀 마련도 없었을 것이며 한국은 여전히 세계 최빈국 중 하나로 남게 되었을 것이고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 여러분들도 최빈국 수준의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을 사는 우리는 당시 만주국군이나 일본군에 입대한 조선인들을 무조건 친일파라고 비난해서는 안되며 그들이 그렇게 해야만 했던 시대적 상황과 필요성을 일단 인정해 줘야 하는 것이다.
조선과 조선인들의 후예인 오늘의 한국인들에게 세계 10대 교역국이자 중화학공업국이라는 실질적인 힘과 풍요를 부여하는 길을 가게 추동한 건 바로 박정희와 같은 만주국군 입대자들이었으며 아울러 결과적으로 그 길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일본군 장교 홍사익이었다는 명백한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독립운동이든 뭐든 힘이 관건이다. 의지가 있어도 힘이 없으면 허사이므로 힘 없는 나라의 백성들은 그 힘을 기르기 위해 다양한 선택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힘이 없으면 나중에라도 힘이 될 수 있는 선택과 행동을 하는 게 현명한 것이고 일제 때 박정희 등이 선택한 만주국군 입대 등은 바로 그런 식으로 긍정해 주는 게 합리적이고 올바른 평가이다.
(계속)
유람가세, 2014-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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