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이 불러온 5.18광주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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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2-12-07 11:04 조회9,691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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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이 불러온 5.18광주의 비극
이 글의 제목은 필자가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다. 한 평생을 언론에 종사하면서 언론의 자유와 올바른 목소리를 부르짖다가 네 번씩이나 감옥생활을 하는 등 권력에 맞서 정의로운 언론인 생활을 해 왔고, 김대중을 유난히도 생각하여 세 번씩이나 어려움에서 구했으면서도 종국에는 그로부터 2년이라는 감옥생활 선물을 받았으며, 미국에서 국제인권상, 국제평화의 상을 수상한 언론인 손충무씨(이하 존칭생략)가 그 유명한 “김대중 X-파일”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5.18광주사태에 대한 작은 제목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김대중 X-파일 제1탄 “김일성의 꿈은 김대중을 남조선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라는 책에서 손충무는 5.18광주의 비극을 당시의 정세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여 결국 김대중이 불러온 비극으로 평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요약한 1980년 초의 긴박했던 정치역정과 김대중이 초래했던 5.18광주 비극의 원인과 결과를 그의 저서 ‘김대중 X-파일 제1탄’에서 인용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김대중 X-파일 제1탄 238쪽-248쪽)
1) 김대중의 신민당 입당이 김영삼 때문에 실패할 것을 깨닫고 재빨리 방향을 바꾼다.
2) 5.18광주의 비극을 잉태시킨 ‘김대중 신민당과의 결별’ 및 ‘국민연합’ 김대중에 의해 점령
3) 대통령 집권 욕에 불탄 나머지 객관적인 정세판단이 환상, 과신, 착각에 의해 완전히 흐려져 김대중을 초조하게 만들었고 결국 비극의 광주사태를 불러 오게 된다
4) 국민연합을 사조직화 하여, 제1조직은 반체제운동 복학생으로 구성된 ‘민주연합청년동지회’ 김대중의 전위조직 결성하고 학생운동 전담시킨다
5) 제2조직은 ‘민주헌정동지회’로 일반인을 상대로 김대중의 외곽전위조직을 결성한다
6) 제3조직은 ‘한국정치문화연구소’로 20-40대의 정치지망생로 구성한 김대중의 외부사조직 결성
7) 대학가에서는 학원민주화를 둘러싸고 전국 85개 대학 중 40개 대학에서 학내시위, 단식투쟁, 철야농성, 총장실점거 등 실력행사가 빈발한다
8) 4월14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취임한다고 발표한다.
9) 4월21일 사북탄광 노조폭동사태가 발생한다
10) 5월1일 서울 대전에서 최초 학생가두시위 발생, 5월3일 서울대총학생회에서 15일 대규모 가두시위를 예고하고, 김대중은 학생운동을 정당한 저항이라고 발표한다
11) 손충무는 전두환을 면접하고 당시 워싱턴의 우려와 북한의 움직임을 설명하다
12) 전두환이 손충무에게 김대중에 대한 불만 토로하다. “이런 사태를 만들어 내는 것은 김대중파들입니다. 나는 김대중을 유능하고 똑똑하며 언젠가는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 가운데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손 국장(손충무)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한 김대중의 행동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측(중앙정보부, 보안사령부, 경찰)이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김대중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김영삼과 헤어지고 대학복학생들과 종교인들을 앞세워 국민연합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나(전두환)의 예편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 역시 믿을 수 없는 인간입니다. 손 국장도 조심하세요. (중략)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김대중에게 나쁜 선입관을 갖고 잇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내 주변 많은 사람들이 김대중에 대해 나쁜 이야기만 하고 있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 사람(김대중)은 지금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 왔으니 조금만 참고 때를 기다리면 될텐데… 너무 성급한 것 같습니다”
13) 전두환이 손충무를 통해 김대중에게 2년 정도의 미국외유를 권하지만 김대중은 거절한다. 김대중이 철저하게 도착되어 있다고 하며 국민의 외침이 모두 자신을 향해 쏟아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4) 5월12일에는 더욱 과열양상을 띄는 학생시위를 기화로 제주도를 포함 전국비상계엄학대 공포
15) 같은 날 김대중의 국민연합이 ‘민주화 촉진국민연합대회선언문’을 발표한다. 그 내용은 비상계엄령 즉시 해제, 신현확 총리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즉시 퇴진, 정치범의 전원석방과 복권, 언론자유보장, 유신정우회 통일주체국민회의 정부개헌심의위원회의 즉시 해체에 대해 정부의 명확한 대답을 국민 앞에 밝힐 것이며 이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5월19일 정오를 기하여 행동강령에 기초하여 우리 국민은 투쟁에 나선다.
16) 5월18일 0시를 기해 김대중 등 반 체제인사들이 ‘내란선동 및 음모혐의’로 체포된다.
17) 광주에서는 계엄령이 선포된 그 날 바로 광주사건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고 ‘김대중’조직의 계획적 행동이며, 전국계엄령에 대결하는 궐기였다고 계엄사가 발표한다.
18) 18일부터 시작된 광주의 학생데모는 20일에 이르러 군중을 끌여들인 폭동상태로 에스컬레이트하고, 그 속에서 과격분자들의 파괴활동이 표면화 되었다. 전남대 어느 학생이 “20일부터 데모양상이 변하고 우리들이 생각 한 것과 달라졌다”면서 데모에서 폭동으로 변했음을 말한다. 또 조선대의 한 여학생은 “학생이 아닌 사람이 끼어들어 선동하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는 상황도 20일부터의 폭동화를 보여 주는 것이다. 광주는 20일 이후 불과 연기에 휩싸인 ‘무정부상태’로 돌변했다.
필자는 이상과 같은 언론인 손충무의 기록에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5.18단체와 좌파들이 떠들어 대는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은 순전히 김대중과 그 후예들 혹은 북한 김일성이 침투시킨 특수군부대의 선전선동을 위한 유언비어였음을 느낄 수 있다. 전두환과 신 군부는 처음부터 권력을 노리고 12.12와 5.18을 일으킨 것이 아님을 전두환 자신이 말하지 않았는가? “그 사람(김대중)이 조금만 때를 기다리면 될텐데…” 최규하 대통령 과도정부는 분명하게 정치자유화 과정을 선포하였고 당시에는 점차적인 정치자유화를 실현하고 있었던 시기였는데도 김대중과 민주화 광신도들의 변명은 자신들의 성급하고 부당했던 권력찬탈 행위로 인한 5.18광주폭동 사태를 모두 전두환과 신 군부에 떠 넘기고 말았음을 김대중 X-파일은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김대중이 불러온 5.18광주의 비극’은 실로 대한민국 건국 후 중반의 역사를 암흑으로 변질시켰으며, 그 비극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한 미래까지도 후손들에게 거짓과 왜곡 날조된 역사를 진실인 것처럼 가르칠 것이다. 2007년의 ‘화려한 휴가’ 그리고 작금의 ‘’26년’이라는 영화로 인해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순박한 국민들은 김대중과 반체제인사들이 민주화의 가면을 둘러 쓰고 권력을 획득하려고 일으켰던 내란음모범죄행위였음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범죄행위를 막으려 했던 전두환과 신 군부에게 원한을 품도록 끊임없이 세뇌하고 있다. 비극이다. 이상.
댓글목록
금강인님의 댓글
금강인 작성일오죽했으면 리틀김대중이라고 불리웠던 한화갑이까지 박근혜 쪽으로 왔을까요.
조슈아님의 댓글
조슈아 작성일
5.18 에 관한 팩트영화를 제작해서 다시 5.18 역사를 뒤집어야 할텐데.......
TV 드라마로 흥미있게 제작해서 방영을 하면 역사를 왜곡하는 기만의 세력들이 완전히
초토화 될터인데 말입니다.
그정도의 배짱있는 리더쉽이 세워져야 대한민국의 번영이 있으리라 봅니다.
박근혜 선수는 2% 부족 , 하지만 차선이라도 선택을 해야겠기에 박근혜를 찍어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