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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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여사 작성일12-12-04 21:50 조회5,215회 댓글6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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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의 세월속에 5.18의 정보는 다 나왔다
지금까지 나온 정보에 2가지만 추가하면된다
1.주동자들은 21일 이전 내란 음모를 꾸몄기에 군복 입고는 버스를 탈수없었다
2.5. 18 재단에 입력해있는 21일 처음 사망한 자는
진압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 한것이 아니라
시민군이 쏜 카비총에 맞아 사망 하였다
그런데 그여자는 사장댁에 가다가 진압군의 총에 맞아 사망 했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
카빈총에 맞았다면 국군에게는 책임 없다
댓글목록
초보자님의 댓글
초보자 작성일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그 여자가 사망한 경위를 증언을 하였나요.
죽은 여자가 증언한것 처럼 문장이 쓰여져서..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5.18 광주사태 당시 21일 진압군의 총에 맞았다는 분은 조 사천씨다 이분은 우리옆 모나미 문구 아저씨인데 장갑차 타고 사망했다 점심 때 쯤이었는데 내조카를 보내놓고 마음을 놓을수가없어 행길있는데로쳐다보고있는데 어느 남 학생이 교복을 입은 자가 나에게 한말 큰일 났어요 문구사 아저씨가 돌아 가셨데요라며 내가 이것저것 묻자 대강 알려주고 사라짐.모나미 문구 여자에게 내가 직접 전해줌.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읶 끝나지 않았다는것을알고 나는 그때 그 사건을 회상해보며 이것저것 정보를 맞춰 본 결과 답을 얻을수가있었다 32년의 세월속에 모든 정보는 다나왔다 2가지만 추가 하면된다
1,21일 이전 내란음모를 하였기에 군복입은자는 다 때려잡아라
2.호남인들은 진압군의 총에 사망 한줄알고 있었으나 카빈총에 사망하였다는것이
수사기록에서 적혀 았었다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조 사천은 누구인가?
이분은 그당시 장갑차 운전수였다. 군에서 장갑차 끌어 본 경력이 있었던지 아무나 끌수없는 장갑차를끌고 광주 시내를 질주하고 다녔으니 장갑차랸 군인 들만 탈수있는 것이므로 호남인의 입장이 불리하니 카빈총으로 쏴서죽임. 그분의처[정 동순]은 내가 3.4.번을가서 말해도 자기 남편은 대모 하러 갈사람이 아니다. 했으나 도청 앞에서 시체를줄지어 놓았을때 시숙과가서 확인 하였는데그여자는 무서워서 먼 거리에 있었고 시숙이 봄 잠바 입은것을 보고 확인 히였다고함.얼마후 그집은 가게를 정리하고 떠니면서 들은말은 장례비로 60만원을 준다 하는데 시집 식구들아 딴데로 갈까 염려 스러워서인지 손도 못 대게한다.
지금도 오치동에셔 살고있다고들었다 아드님도 성장해 광주 시청에 근무중이라고.....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5.18은 전 두환의 발포명령이 아니라 조 사천을 카빈총으로 쏜 다음 부터 시작됬다
호남인들은 이분이 진압군이 쏜 총에 맞은줄 알았으나 월간조선에서 나온 5.18수사기록을보니
카빈총 사망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호남인이 죽였다는것 아닌가
호남인들은 말해보라 조 사천 그분을 죽인자가
북한군 인가
호남인 인가
pc가 나오자 이분을 홍보용으로 이용 했다는것은 산 자중 기억하고 있었다는것 아닌가
왜 장갑차 운전수 였다는것을 증언 하지않았는가
장여사님의 댓글
장여사 작성일
남남갈등의 해소를 하려면 5.18을 제조명해 마무리 하여야한다
뒤짚혀진 역사를 끌어 안고는 절대 다시 시작 할수없다
국익과 후손들의 장래를 위하여
다음 정부로 미룬다는것은 골치 아플 것이고
시간낭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