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金日成을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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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반도 작성일12-11-12 17:03 조회3,7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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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는 김일성을 꿈꾼다 !!
임직원 1,000명 남짓의 안랩연구소 창업자 안철수가 50년간 수백만 명의 생계와 복지를 책임져온 삼성, LG를 삼성동물원, LG동물원이라며 막말을 서슴지 않더니 달랑 논문 다섯 편으로 ‘세계적 석학’을 자처하며 국민을 우롱하고, 정치경험이 전무한 이공계 인사가 정치개혁의 주체를 자임하는 희대의 정치코메디가 대선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안철수는 더 이상 까불지 말고 대한민국의 경제영웅들 앞에 무릎꿇는 겸손함으로부터 정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김일성이 60여전 전에 이미 써먹은 낡은 수법을 되풀이 하는 것이 새정치는 아니다. 21세기 개인우상화는 그 자체로 중대범죄라는 것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1. 자칭 ‘불세출의 항일영웅’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
북한이 김일성의 대표적 항일무장투쟁으로 찬양하는 전투이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았다.
김일성이 1937.6.4 동북항일연군 주력부대를 인솔하고 일제의 전략상 요충지인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보 (현재 양강도 보천군)를 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는 전투를 말한다. 북한에서는 이 전투를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 중 가장 큰 업적으로 여기고 있다.
보천보 전투에 대한 북한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937년 5월 하순 주력부대에서 선발된 우수한 대원들로 원정대를 편성하여 김일성이 직접 백두산지구 비밀근거지의 곰산 밀영에 와 보천보일대를 정찰하고 국내진공작전 준비를 완료했으며 1937년 6월 4일 밤10시 주력부대에서 선발된 1백50여명의 원정대를 김일성이 지휘하여 전투를 시작했다. 이 전투로 일제의 경찰관주재소, 면사무소, 산림보호구, 농사시험장 등 일제의 모든 기관들이 불타고, 일본인들은 처형당했다.
북한은 정권수립후 이 전투를 기리기 위해 1955년 8월 7일 보천보에 「보천보혁명박물관」의 문을 연후 1963년 새건물로 단장하였고, 1967년 6월 량강도 혜산시에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을 세우며, 김일성의 우상화에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이때 일경 7명이 죽었으며 여러 명의 중상자가 발생하였다고 전해지나 일각에서는 일본인 요리사와 유탄에 맞은 갓난 아이가 사망했을 뿐 그 피해가 적었다고 전해지는 등 구체적인 사실은 확실하지 않다.
일제탄압이 극심하였던 시기에 일어난 이 사건은 동아일보에서 두번이나 호외를 발행하여 보도하였으며, 조선인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키고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공격부대가 김일성의 부대가 아니라 또 다른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이끈 부대였다 는 설, 보천보가 인구 1,300여 명의 작은 마을이고 무장병력은 주재소 순사 5명뿐이었으며 이들 을 상대로 한 물자보급투쟁이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을 볼 때, 북한에서 역사적인 항일 승리전투 라고 하는 것은 과대평가이다.
2. 자칭 ‘세계적 석학’ 안철수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압축성장으로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올라섰지만 세계가 인정하는 석학은 없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억지춘향으로 돈 퍼주고 노벨평화상 하나 달랑 수상한 것을 제외하곤 학문적 업적으로는 노벨상의 국물맛도 보지 못한 나라이다. 훌륭한 과학자, 사상가, 문학가는 많지만 노벨상을 탈 정도로 업적이 객관화되고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분이 아직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아쉽지만 실망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드디어 마침내 세계적 석학을 배출했고, 그 분이 바로 세계적인 안랩연구소 창업자 안철수라는 분이란다. 이를 기념해서 대한민국을 빛낸 인물로 면학증진하는 학생들의 본보기로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단다. 그 분이 쓴 논문은 총 다섯 편인데 그 중 두 편이 석사학위논문과 박사학위논문이란다. 또 한편은 논문 제2저자로 참여한 논문이라고 한다. 남은 두 편의 논문에서 학문적 업적이 얼마나 위대하면 세계가 인정한 석학이 되었는 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두 편의 논문이 이뤄낸 세계적인 학문적 업적에 대하여 일언반구 말이 없다.
외국에서 세계적 ‘석학(碩學)’으로 인정하는 한국인 교수도 있다. 바로 강길선 전북대 교수다. 강 교수는 최근 '세계조직공학재생의학회'로부터 최고 영예인 ‘펠로’(碩學)에 선임된 인물이다. 세계조직공학재생의학회의 펠로 선임은 1998년 창립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강 교수는 1995년 美아이오와대 생체의용공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바이오 장기-제약 개발 분야를 연구해 왔다. 현재까지 300여 편의 국제과학기술학문색인(SCI) 등재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고 70여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안철수 원장의 5편의 논문 수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그를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여전히 평가하고 있다. 한 구인구직사이트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시고 싶은 CEO를 조사한 결과, 안철수가 41%대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세계최고의 전자 제조업체를 일군 이건희 삼성회장은 2위, 세계 IT산업계의 황제로 부상한 미국 애플 CEO 스티브 잡스가 3위에 올랐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데 주역 역할을 한 정주영 현대 창업주는 고작 4위에 그쳤으며,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아예 랭킹에 오르지도 못했다.
경영학의 대가였던 미국의 피터 드러커는 생전에 정주영, 이병철 등 한국의 창업가들을 가장 위대한 기업가정신의 소유자로 칭송한 바 있다.안철수는 고작 13년동만 벤처기업을 일궜을 뿐이다. 그런데도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보다 더 존경받는 경영자로 평가받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대중조작, 미디어조작이 만들어낸 거짓 우상일 뿐이다.
3. 김일성, 안철수 우상화와 대중적 지지도
해방직후 남한 내에서 김일성의 대중적 인지도는 우익성향의 선구회(先驅會)가 1945년 11월 남한에서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김일성은 ‘조선을 이끌어갈 지도자’ 가운데 여운형(33%), 이승만(21%), 김구(18%), 박헌영(16%)에 이어 9%를 획득함으로써 다섯 번째를 차지하였다.
‘일제시기 최고 혁명가’를 묻는 질문에서도 7%를 얻어 여운형(20%), 이승만(18%), 박헌영(17%), 김구(16%)의 뒤를 이었다. 이 여론조사가 우익성향의 단체에 의해 이루어졌고, 또한 남한 공간에서 실시된 점을 고려한다면 당시 김일성의 대중적 입지는 결코 낮은 수준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김일성에 비하면 안철수는 청출어람(靑出於藍), 청어람(靑於藍)이다. 김일성은 ‘보천보 조작’을 발판으로 대중적 인지도를 만들고 정계에 뛰어들어 경쟁자들과 피터지는 투쟁끝에 권력을 쟁취했다면, 안철수는 ‘세계적 석학 조작’을 통해 안철수 광풍을 만들어 대선 90일전에 전면 등장해 대권을 아주 그냥 날로 먹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김일성보다 우상화에 더 집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진실도 아니고 가치와 철학도 아니고 오직 우상화 조작 덕분이었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안철수를 통해 해방정국의 김일성을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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