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군의 사망자가 겨우 23명이었다는 게 이해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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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우주 작성일12-09-28 18:22 조회12,115회 댓글7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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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자별 사망자 통계 (계엄군)
날자 |
계엄군사망자 |
사망원인 |
20일 |
1명 |
|
21일 |
3명 |
정관철 중사는 계엄군의 차량에 깔려 즉사 함, |
22일 |
3명 | |
23일 |
1명 |
|
24일 |
11명 |
장갑차를 타고가던 공수부대원을 시민군으로 |
25일 |
1명 |
|
27일 |
2 |
광주시 재탈환 작전을 벌이던 도중 |
28일 |
1 | |
합계 |
23명 |
|
출처 : http://blog.chosun.com/sagin/3947857
위의 도표가 사실이라면, 좀 이상하군요.
5.18 당시 우리측 공수부대원의 사망자는 총 23명입니다.
그런데, 북괴특수군이 3백명 이상 사망했다면,
뭔가 좀 이해가 안됩니다.
댓글목록
지만원님의 댓글
지만원 작성일
23명에서 11명을 빼면 12명입니다. 적은 숫자지요.
북한특수군은 우리 군과 교전을 하러 온 게 아니라 유언비어 뿌리고, 시민들 자극하고,
양아치 계급들 조직하고, 무기고 털어 광주폭도-시민들에게 쥐어주려 왔습니다.
북한군이 수백명 단위로 죽을 수 있었던 곳은 제 판단에 오직 교도소 총 공격입니다.
우리 군은 이미 호를 단단이 파고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었고, 북한군은 노출된채 총공격을 했을
것입니다. 수백명이 아니라 수천명이 공격해 와도 땅속에 몸을 묻은 우리 병사는 살고 공격해
들어오는 북한군만 죽게 돼 있지요. 저는 월남전을 해봐서 금방 이해가 갑니다.
사람들이 믿기 어려울까 하여 제가 미리 분석을 해놓았는데요.
초롱이님의 댓글
초롱이 작성일
북한특수군의 남파목적이 전면전이 아니고,
한정된 인원으로 폭동을 유도하는 것인데..
특수부대와의 교전은 꼭 필요한 교도소공격을 제외하고 가능한한 피한 결과가 아닐까?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교도소는 '전.평시 국가 보안 목표'인 만큼, 평시에도 군부에서는 비밀리에 점령 훈련을 함. 주로 야간에,,,. 북괴군에서 광주교도소를 점령하라는 지령을 받고, 광주 지휘부에서는 아마 당황했었을런지도 모름! ,,. 그러나 '軍令 如山(군령 여산)'이니,,. 아마도 교도소 습격에서 수다히 죽었을 것임! ,,. 모모한 공격 시도! ///
더우기 '특수부대를 '보병'처럼 운영치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더 더욱! ,,.
고로; 특히, 광주 교도소를 감제하는 '설탕 고지' 쟁탈전에서는 수다한 희생이 수반되어졌었을 것임!
제가 보교 교관 시절 (1982년 초)들은 얘긴데, 야간에 금을 월선하면 교도소 우에서 가차없이 조준 사살했다고 함! 그 선 못 미처 접근하면 위협 사격만 했지만! ,,.
멸공공수님의 댓글
멸공공수 작성일교도소 방어 했던 군인한테 물어 보면 몇명이나 조준사격했나 물어 보면 나오겟네요...
우주님의 댓글
우주 작성일네, 박사님 잘 알겠습니다.
우주님의 댓글
우주 작성일
참호를 파고 수성전을 했다고는 해도,
그래도 우리 공수부대원들이 정말 잘 싸워준 결과라고 생각이 됩니다.
정호용 장군이 우리 군인들 훈련을 아주 잘 시켜 놓은 것 같습니다.
전투력이 강한 부대가 아니었다면, 그런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우리 군인들은 최고로 용맹한 군인들이었습니다.
서양돼지님의 댓글
서양돼지 작성일그럼 정말로 피가튀고 살이튀는현장은,교도소쪽이었네요,그런대 시청앞에서 격렬한 총격전이 있었다고 우기는자들은,교도소 총격전을 의도적으로 숨기려한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