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불 수렁에서 건져낸 내 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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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12-08-25 07:34 조회5,7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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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기회[7]
아내는 친정에 있으면서 준호가 송금해 준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저축을 해 놓았다. 그 돈으로 집을 구입하기 위해 이웃에 있는 부동산에 집을 둘러보러 갔다.
복덕방 할아버지는 저 밑에 분양하는 주택이 있는데 한번 가 보자고 하였다. 복덕방 할아버지는 토성 위에 앉아서 토성 옆에 있는 개울가를 가르치면서 젊은이 저 땅, 한번 사 보지 않겠나 하였다.
“준호는 평당에 얼마나 갑니까?”
복덕방 할아버지께 물어 보았다.
평당에 1500원을 달라고 하는데, 어디 달라는 대로 누가 다 주나? 아마도1300원 정도면 흥정이 가능 할 걸세 하였다. 그 땅은 잡초가 무성하고 하수도 물이 흐르고 있는 시궁창이었다. 아무 쓸모없는 땅으로 보였다.
할아버지 저 땅을 사서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복덕방 할아버지에게 반문하였다. 준호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저런 땅은 사지 않겠다고 복덕방 할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돈만 있으면, 130만원 없는 셈 치고 1000평 만 사 놓으면 언젠가는 대박이 터질 것이라고 복덕방 할아버지는 무척 아쉬워했다.
그 당시 준호는 돈은 있었다. 집 구입 할 돈 현금600만 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쓸모도 없는 시궁창 땅을 사라고 권하는 복덕방 할아버지가 정신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 복덕방 할아버지가 나에게 사기를 치 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 복덕방 할아버지 말씀이 적중하였다!”
약 5년 후, 시궁창이던 그 땅에 복개공사를 하였다. 복개공사를 한 그 위에는 큰 도로가 생겨났다. 아무 쓸모없던 시궁창 땅이 반듯한 상가로 변했다.
“평당 1300원 하던 땅이 갑자기 5백 만 원으로 뛰어 올랐다!”
준호는 하늘이 내린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처삼촌, 운영과장이 거주하는 서울 송파구에 근사한 단독주택을 하나 구입 하였다.
“준호는 열사의 땅 모래바람 속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그들 부부는 결혼 1년 여 만에 내 집 마련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행복하였다.
신혼 초에 서울에다 근사한 집을 마련하였다고 모두들 아주 부러운 눈초리로 그들 부부를 바라보았다.
준호는 미동건설에 무조건 3개월은 근무를 하여야 했다.
사우디 쥬 베일 현장으로 출국 할 때, 귀국하여 무조건 3개월은 근무하겠다는 각서를 써 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는 퇴직금 때문에 이런 각서를 받았던 것이다. 사실은 해외에서 귀국하여 사표를 내게 되면 국내에서 근무한 기간까지 해외 급료로 계산하여 퇴직금 을 주어야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각서는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노동법이 상위법이기 때문에 일단 사표만 내면 각서와 상관없이 퇴직금은 마지막 근무한 날로부터 계산해 주어야 한다는 노동청 근로감독관의 유권 해석이었다.
그는 국내에서 5년, 해외 1년을 근무하였기 때문에 6년간의 해외 근무로, 퇴직금을 받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계속 미동건설 회사에 근무하기로 하였다.
“준호는 회사에서 한 달간 휴가를 얻었다!”
그는 대구로 내려갔다.
어머님과 동생들에게 선물도 갖다 주었다. 어머님께 서울에 집을 하나 구입했다고 하였다.
어머님은 무척 흐뭇해 하셨다.
친인척들과 이웃들도 몰려 왔다. 어머님께서는 음식을 장만해 그들을 대접하였다. 그들은 한 결 같이 준호를 칭찬하였다.
준호는 처가가 있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장모님과 처남과 처제들이 반겨 주었다.
결혼 3개월 만에 중동으로 출국하는 바람에 처갓집 친척들에게 인사를 드리지 못해, 인사를 하러 다녔다. 처가 친척들은 사위 잘 보았다고 장모님께 칭찬이 자자하였다. 장모님께서는 어깨가 으슥하셨다.
준호는 서울로 올라 왔다.
그는 회사에 출근을 하였다.
그는 철도 공사가 발주한 충북선 복복선공사 현장으로 내려갔다.
준호는 현장 가까운 곳에 하숙집을 정했다.
그 하숙집 주인 어르신께서는 반 기 문 유엔사무총장과 아주 가까운 집안 어르신이었다. 그 어르신께서는 반 기 문 총장의 칭찬이 대단하셨다. 가문에 영광이라고 하셨다.
사실은 그 당시에는 반 기 문 총장이 어떤 인물인지 우리들은 잘 모르고 있었다. 그 곳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방치)마을은 반 기 문 유엔사무총장이 태어난 마을이었다. 반 씨들의 집성촌이었다. 참으로 인심이 좋고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아 모 내기를 하지 못해서 걱정이 태산 같다고 하셨다. 준호가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굴삭기로 하루만 물구덩이를 파서 경운기로 물을 퍼서 심으면 근방 모심기를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장 소장 ‘허락’만 떨어지면 제가 내일 당장 굴삭기를 몰고 가서 모내기를 할 수 있도록 ‘물구덩이 을 파주겠습니다.’ 여기도 약 2m 정도만 파면 물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지금 당장 면사무소에 가셔서 면장님에게 말씀하십시오.”
지금 모내기철인 데도 비가 오지 않아 모내기를 못하고 있다. 우리 농민들은 속이 바짝 바짝 타 들어가는 심정이다. 하늘만 쳐다 볼 수만 없다. 굴삭기라도 불러 와서 물구덩이라도 파서 모내기를 해야 게다고 말씀하십시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굴삭기를 불러올 돈이 없다.”
때문에,
여기 철도 공사를 하고 있는 미동건설 현장 소장에게 굴삭기를 대민 지원을 좀 해 달라고 면장님이 나서서 주선을 좀 해 주십시오. 준호는 그 어르신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그 이튿날 준호는 굴삭기를 몰고 가서 물구덩이를 파고 있었다. 음성 군수와 원 남 면장은 직원들을 대동하고 현장으로 나왔다. 준호에게 수고 한다고 격려도 해 주었다.
또, K B S 청주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러 나왔다. 준호가 굴삭기로 물구덩이를 파는 모습과 인터뷰도 해 갔다. 그날 저녁 9시 뉴스 지역방송에 준호가 인터뷰하는 모습이 청주방송을 통해 방영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모내기를 무사히 끝냈다.
마을 주민들은 준호 때문에 모내기를 무사히 끝내게 되었다고 고마워하였다.
준호는 마을 주민들에게 인기가 대단했다.
준호와 부 기사 외에 두 명이나 더 있었다. 굴삭기를 배우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본사 비서실을 통해서 내려온 회장 친척이라고 하였다. 또, 한 사람은 현장 관리과장 조카 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준호의 파워는 대단했다.
어느덧 벼가 누렇게 익은 가을이 되었다.
주민들은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미동건설 현장 사무실로 가지고 왔다. 그때 굴삭기로 물구덩이를 파주어 모내기 잘해 풍년이 들었다고 하였다. 만일, 그 때 물구덩이를 파주지 않았다면 모내기, 시기를 놓쳐 흉년이 들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들은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였다.
때문에 너무 고마워서 돼지를 한 마리 잡아 왔다고 하였다.
“그 때가 그의 생애 최고로 행복 했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 기능공 중에서 중장비 기사가 최고의 인기 직종이었다.
그 중에서도 굴삭기 기사가 최고로 인기가 좋았다.
불 도 저가 푸싱을 하고 폐 로더가 상차를 하는 작업을, 굴삭기 한 대로 완만한 경사를 잡아서 작업을 다, 해 치 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굴삭기 때문에 불도저 와 로더가 밀려 나게 되었다.
중동 붐으로 중장비기사가 모자라 파격적인 좋은 조건으로 오라는 회사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회사를 옮기지는 않았다.
그런데 ……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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