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낚시줄을 끊어야 박근혜도 나라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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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만토스 작성일12-07-22 21:59 조회11,821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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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김대중의 낚시에 걸린 박근혜
김일성이 죽기 전에 자신의 母胎이며 원군이요 피난처인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중국의 체제가 몰락하는 엄청난 변화를 목격한다. 일당독재 체제로 인민들의 눈과 귀를 속이고 북한 땅을 통치해왔지만, 박정희의 남조선에 점점 뒤처져 가던 당시의 김일성의 마음은 한 층 다급했었을 것이며 그 결과 남한과의 전쟁을 피하고 화해를 통해 북한 패망을 막아 보려고 김영삼과의 남북정상 회담을 수락하는데, 김영삼은 김일성의 남북회담 수락에 감지덕지하여 그 대가로 이 땅에 숨죽여 오던 빨갱이들에게 자유를 주고 미전향장기수들을 김일성의 품에 안겨 준다. 바보가 든 毒杯였다.
일당독재 세습왕국의 달콤한 맛을 일찍이 몸에 익혀 버린 김정일이, 소련과 중국의 개혁 개방을 가슴에 담고 있었을 김일성의 속내를 눈치 채고 제왕을 꿈이 무산 될까 봐 남북회담 계획에 얼마나 놀랐겠는가? 오죽하면 김일성의 죽음조차 김정일의 암살이라는 소문까지 나왔었을까? 김일성이 남북회담을 시작도 못하고 急死하자 김정일 세상은 그가 원했던 것보다 빨리 찾아 온다. 김일성 死後 남북회담이라는 가당치도 않는 망발은 두 번 다시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그런 김정일이 취한 행동은 대한민국을 협박하는 일이었고, 남조선 적화통일을 무력으로 이루겠고 다짐한다.
김일성이 그토록 원했던 김대중의 남조선 대통령 당선은 꺼져가던 북한공산주의 독재체제에 구원의 불빛이 되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박정희 정부 말기에 이미 일본에서 북한의 지령에 의해 움직였던 한민통이라는 조직에 가담하여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왔던 김대중이 김영삼으로부터 1997년 대권을 물려 받았을 때, 김정일은 그가 목표로 내건 남조선 적화통일이 한 발 가까워 왔음을 온 몸으로 전율처럼 느꼈을 것이다. 김대중을 물고 늘어지면 그가 원하는 쌀과 돈을 마음대로 빼앗을 수 있다고 공석에서 큰 소리쳤었다는 김정일이었으니 말이다.
김대중이 한민통에서 돈을 받아 역적질 했던 내용이 바로 김정일의 김대중 옭아매기 작전의 핵심이었다. 김대중은 이제 대통령까지 하게 된 마당에 과거 일본에서의 반역적 활동과 북한과의 돈 거래가 들통나면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너무도 잘 알았다. 2000년 6.15일 남북정상회담은 그렇게 김정일의 협박과 김대중의 추악한 공명심 그리고 노벨상 수상이라는 명예욕이 뭉쳐서 이루어 낸 대한민국 사망의 음침한 前兆로 이 땅에 나타났다. 김정일의 올가미는 김대중에게는 죽음이 아니면 빠져나올 수 없는 무서운 것이었다. 아니 죽어서도 벗을 수 없는 것이었다.
김대중은 세상이 제 자리로 돌아와 또 다시 자신이 빨갱이로 감옥에 가고 죽음을 맞이하는 일도 없어야 했고 死後에도 자신의 역적질이 탄로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김대중이 측근을 통해 박근혜를 회유하고 노회한 술수를 부렸을 것이다. “박근혜는 전라도 표를 얻지 못하면 절대로 대통령을 할 수 없으니 지금부터 이 김대중이 시키는 대로 하라. 첫째, 부친 박정희가 김대중에게 가했던 迫害에 딸로서 용서를 구하고 국민 앞에 사죄하라. 둘째, 광주5.18 민주화 운동을 인정하고 그곳을 참배하라. 셋째, 북한 김정일과 가까이 하여 남북긴장 완화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이라.”
박근혜가 이상의 세 가지 조건을 충실하게 지켜 오고 있음을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다. 박근혜의 2000년 이후 지금까지의 행적을 되 돌아 보고 그 정치적 행적들이 지닌 의미를 상기해 보자.
1) 2000년 6월 방북에 앞서 김대중은 청와대를 내세워 박근혜와 동행을 요망한다는 설을 흘리고 한나라당 부총재였던 박근혜는 "나도 가고 싶다"고 화답했으며 이회창은 이를 거부한다. 2001년 김대중과 박근혜의 연계 의혹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2001년 6월 김대중 추종 의원들은 이회창의 상호주의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반북대결정책'이라고 규정짓고 이회창을 비난한다.
2) 2001년 7월 5일 김근태는 박근혜와 방북하고 싶다 했고 동년 7월 30일 박근혜와 만나 2시간 동안 밀담을 나눈다. 3월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탈당하였다. 빨갱이 김근태와 회동이 흥미롭다. 2002년 5월 10일 박근혜의 방북. 유럽코리아재단 이사 자격으로 방북 하여 김대중 정권과 무관했다는 그는 김정일과의 만찬 장에서 남한 赤化초대장인 6.15남북선언 이행을 약속한다.
3) 2002년 9월 박근혜는 이회창의 대북관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그 해 11월 한나라당에 복당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나라당의 수많은 정책에 대해 침묵하거나 어깃장을 놓아 왔다. 國庫蕩盡 국가결속력 瓦解의 세종 시 원안 固守, 광우병 폭동사태 시 정부 진압에 시위대를 편들고, 용산폭동 시에도 진압경찰을 비난하며 자신의 소속정당을 의심케 하는 망언을 터뜨렸다.
박근혜는 김대중 김정일과의 連繫 후부터 대통령의 꿈에 부풀어서 살았을 것이 뻔하다. 그런 박근혜의 일관된 색깔은 이념논쟁을 회피하는 철저한 중도주의였다. 김대중이 암시한 그 방법만이 대권을 거머쥘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을 것이다. 이명박 중도와 쌍벽을 이루며 여당을 산산조각 내고 보수우파 울타리를 철저하게 깨는 일이었다. 보수를 죽여 놓았다는 결론에 도달 한다.
그리고 이제 박근혜의 대선출마 발표와 함께 모든 종북좌파 정치집단과 빨갱이 단체들이 이구동성으로 박정희의 5.16을 저주하는 聲討에 열을 올린다. 이미 빨갱이들에게 점령 당한 언론을 무슨 수로 감당하겠는가? 빨갱이들과 그들에 부화뇌동하는 야당 정치집단은 이 때를 기다려 왔다. 박근혜의 지옥 같은 날들이 시작된다. 보수와 빨갱이 양쪽에서 돌팔매가 날아 오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는 김대중의 지시대로 中道를 내 걸고, 박정희의 애국정신 罵倒에도 눈을 감으며, 5.18폭동반란의 역사를 민주화 운동으로 포장하는데 合心하였고, 북한 악마집단과 손을 잡음으로써 保守右派를 분노하게 하여 그들을 自中之亂에 빠뜨린다. 保守를 모두 산산조각 내 버리고 終局에는 그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대통령의 꿈도 無産될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낚시로 保守도 죽이고 박근혜도 스스로 죽게 되는 김대중의 一石二鳥 돌 화살이 박근혜에게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 남쪽 대한민국 땅에서 현실로 다가 오는 악마들의 꿈이었는데 박근혜는 어떻게 解夢하고 있을까? 아니면 악마들의 꿈이 있었는지조차 대통령이라는 미끼에 취해 모르고 있었을까? 이념 전쟁이 치열한 한반도 땅에서 위정자들이 중도주의를 내 걸고 비겁하고 교활하게 제 榮辱을 채우며 살아 남으려는 더러운 정치행각을 일삼다 終局에 어떤 末路가 다가 올지 우리는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두 중도주의자에게서 그 표본을 보고 있다. 박근혜가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김정일 김대중-박근혜 사이의 凶惡한 낚시 줄을 모두 끊어야 자신도 살고 대한민국도 起死回生할 것이다.
이상.
댓글목록
proview님의 댓글
proview 작성일이미 걸려들었다고 봅니다. 다만 자신의 몸이 부서질 각오로 메서운 결심을 한다면 모를까? 박근혜나 전두환 모두 전사모 박사모들에게 철통같이 감시당하고 있기에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참고로 전사모나 박사모 모두 사이비종교집단 출신이거나 전라남도 출신들이라는거,,,,,,,,,,,,,
경기병님의 댓글
경기병 작성일박정희의 아바타인 박근혜는 박정희 장군의 혁명공약 정신을 존중하여 청와대 밖으로 원대 복귀하는 것이 옳다. 대체적인 보수 지성들이 박근혜에 기대하는 바가 그렇다고 본다. 그 것이 아버지와 보수세력들을 함께 위하는 길이다.
일조풍월님의 댓글
일조풍월 작성일
맞습니다
확실하게 커밍아웃해야 합니다.
이렇게 어영부영 대통령이 된다고 가정해도 이명박보다 나을수가 없을겁니다.
심심도사님의 댓글
심심도사 작성일
아마도 이명박보다 못할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도 명박씨는 처음엔
북한군에 의해 배가 파손 됐을 때....
"내가 배를 만들어 봐서 아는 데 운운 했지만...."
그래도 북한과 가까이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겝니다
그 이후로....
공쩍으로도 사쩍으로도 북한을 도와준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아는 한 ,
박근혜는 그러지 않을 걸로 봅니다
몰래 몰래 보따리 보따리 싸서 도와 줄 것으로 봅니다
바로 그게 우리 우익들의 속을 뒤집어 놓을 거라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