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책-박정희 양날의 칼-10 월 유신, 김형아교수 호주 국립대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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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ATRIOTISM 작성일12-07-18 13:53 조회4,07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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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의 칼
김형아 교수 - 박정희 유신독재는 양날의 칼, 독재 없었으면 산업화도 없었다 !
'박정희는 여느 독재자와 달리 청렴(!)했으며, 유신이 없었으면 중화학공업도 없었고
오늘날의 산업화는 불가능했으며, 새마을 운동의 할수 있다 정신으로 한국인의 정신을 개조했으며,
유신독재란 것도 미국이 한국을 놓아버리는 상황에 대비한 불가피한 것이었으며....
결론적으로 박정희의 독재는 청렴한 독재 혹은 선의의 군국주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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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국립대학 김형아 교수 발표 논문. 박정희 높게 평가한 이유는? |
뉴데일리 |
"독재 없이 산업화 불가능, 새마을이 국민성 바꾼 덕"
김형아 호주국립대 교수 "유신-경제성장 따로보는데 둘은 양날의 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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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국가 건설'하려면 국민성 바꿔야 한다고 생각"
김 교수는 2005년 출간한 자신의 저서 '박정희의 양날의 선택'에서도 "박 대통령의 중화학공업 추진과 유신체제는 한쪽 없이는 나머지 한쪽도 존립할 수 없는 '양날의 칼'이었다"었다고 평했다. 또 "유신이라는 독재체제가 없었으면 경제성장은 이뤄질 수 없었다"고 했다. 유신체제가 싫어서 한국을 떠난 사람이 30년 후 한국에 돌아와 유신과 새마을운동을 재조명하고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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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를 마친 20일 오후 연세대 상남경영원에서 그는 "박정희의 과오를 미화해선 안되지만 그는 국가지도자로서 책임을 다했다"고 평했다. 유신체제 하에서 데모를 하다가 호주로 도망쳤다는 그가 30년이 지난 지금 "박정희 시대를 연구하다 보니 좋든 싫든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이 한국인의 국민성을 바꿨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박정희 시대 이전 한국인은 게으르고 의타적이고 수동적이라는 인식을 스스로 했고, 장준하 함석헌 한태연 같은 지식인들도 국민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서 "박정희는 '국가 건설'을 하려면 국민성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통해 '할 수 있다,하면 된다'는 캠페인을 일으킨 것은 그 때문"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산업화 공로는 평가받을만 하지만 독재는 잘못됐다'는 질문에 "한국 학자들이 유신과 경제성장을 따로 보는데 결국 이 둘은 '양날의 칼'"이라고 했다. 그는 "누이가 공장에 가서 받은 월급으로 대학 공부를 마치고 성공한 뒤 부모에게 왜 누이를 공장에 보냈느냐고 대드는 것과 비슷하다"면서 "현실의 이면을 보지 않거나 무시하면 안된다"고 반박했다.
'민주주의를 하면서도 산업화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에 그는 "매우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이라며 "어느 나라도 희생을 치르지 않고 산업화를 이룬 나라는 없었다. 박정희의 리더십은 전체적으로 평가할 때 과오보다 성과가 컸다"고 말했다.
"모든 세계가 강한지도자 찾는 상황…한국만 그렇지 않더라"
"지금 중국 경제개발 모델이 바로 박정희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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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좌파학자들의 박정희 평가에 대한 안타까움도 묻어났다. 그는 "최근 박정희 시대 산업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진보학자도 생겨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지만 지금도 박정희의 리더십에 대해선 굉장히 부정적이고 평가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독재에서 무슨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있겠느냐'면서 학문의 문호를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지금 모든 세계가 '강한 지도자'를 찾고 있는데 한국만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가 지도자 리더십의 성격은 무엇이며 지도자의 역량과 비전은 어때야 하는지 지성인들이 사상에 구애되지 말고 학술적·대중적 토론이 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화와 독재를 '양면의 칼'이라고 평한 그는 "지금 중국의 경제개발 모델이 바로 박정희 모델이다"고 했다. 김 교수는 "유신이라는 악마적 독재를 했지만 그 체제와 그 시대의 산업혁명을 분리해 이해할 수 없다"면서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80년대 386세대는 절대빈곤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모 세대와 다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계승한 게 있다"고 했다. 그것을 '할 수 있다, 캔 두(Can Do) 정신'이라고 칭한 김 교수는 "80년대 학생운동 주도 세력은 산업화 시대의 '캔 두 정신'을 갖고 민주화란 꿈을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 시대와 시간적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 객관적 시각이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또 한국이 아닌 호주에서 연구했기 때문에 이념을 따지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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