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5,16'을 '구데타'라고 폄훼하는자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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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피터 작성일12-07-11 07:47 조회5,450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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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5,16’을 ‘구데타’라고 폄훼하는자들은 누구인가?
김 피터
불과 몇 개월 앞둔 금년의 대선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딸, 근혜씨가, 여전히 가장 유력한 후보로서의 위치가 변하지 않는 추세를 보이자, ‘반대자’들의 ‘박정희 때리기’ 및 ‘516 폄훼’발언이 날을 세우고 있다.
특히 최근 박근혜 캠프에 들어간 이상돈 전 비대위원이 ‘516’에 대하여 ‘군사혁명’이라는 뜻의 발언을 하자, 민주당대표 이해찬, 김현 대변인 등이 ‘516은 혁명이 아닌 구데타’라고 공격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그후 또 어떤 매체에 의하면, 이상돈이 ’군사정변’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잘못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는 보도도 있어, 이상돈의 발언 진의를 확실히 알수는 없다.)
문제는 반 세기가 지났는데도, 5,16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바로 정립되어 있지 않고 있다는데 있다. 여전히’ 혁명’으로 해석하는데는 문제가 있는, ‘4,19’는 ‘4 19혁명’으로 정착이 되어 있다. 총포로 무장하고 국군에게 대항했던 ‘폭동’ 내지 ‘반란’ 수준의 5,18 광주 사건은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법적으로 이름이 붙여져 있다.
5, 16 혁명은, 물론 그 시작은 군인들이 주체가 된 ‘군사 구데타’적 방법이었지만, 그후 그것은, 어디까지나 ‘혁명’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5,16은 분명히 ‘군사혁명’으로 명명(命名)되어지고, 그 혁명적 대변혁 및 성취에 대하여, 역사적, 법적으로 통일된 명칭과 해석이 나와야 한다.
5,16을 여전히 ‘군사 구데타’라고 폄하하는자들은 누구인가? 첫째로, 소위 ‘민주투사’라고 자처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철없던 학생시절 데모를 하다가 체포되어 관계 당국에 의하여, 어떤 형태이건 ‘고통’을 당한 자들이다. 문제는 그들이 그때, ‘체포, 고통’당한것만 기억하고, 박정희 정권에 대한 무조건적 ‘반감’, 악감정만 가지고 있다는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인 공정한 판단을 못하고 있는것이다. ‘박정희= 군부독재, 더 나아가 ‘악마’라는 공식을 머리에 입력하고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는것이다.
다음으로 북괴, 좌익, 종북주의자들이 박정희와 5,16을 제일 싫어한다. 왜냐하면 4,19 이후 거의 무정부 상태 같은 혼란 속에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치며 적화통일이 가까웠다고 꿈꾸던 그들에게, 5,16은 그들의 꿈을 깨트려버리는 철퇴를 가했기 때문이다. 5,16혁명의 ‘혁명공약’은 분명히 ‘반공을 국시로 삼는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5,16으로 태동된 그때의 정부는 남한 내에 있던 적색분자들을 계속 일망타진하였다. 5,16이 없었으면 아마 남한은 ‘베트남’처럼, 공산화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좌익분자’들은 박정희와 5,16 혁명을 합헌정부를 총칼로 무너뜨린 불법 ‘구데타’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폄훼하는것이다.
그러면 5,16을 왜 단순한 군사구데타 가 아닌, ‘혁명’으로 지칭해야 하는가?
우선 ‘혁명(Revolution) 이란 말의 뜻을 정확히 찾아 볼 필요가 있다. Random House 사전에 보면 ‘혁명’에 대하여 다음과같이 설명하였다. (1)기존 정부 혹은 정치적 제도를 강제로 전복시키는 것(a forcible overthrow of an established government or political system) (2) 어떤것에 대한 완전한, 널리 미친, 대체로 과격스런 변화(a complete, pervasive, usually radical change in something)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때때로 비교적 빠르게(relatively quickly) 진행된다
‘혁명’은 일반적으로 정치제도 및 사회체제의 과격한 변화를 의미하지만, 사회, 경제, 문화, 사상, ‘삶의 방식’등의 급격한 변화도 가리키는 말이다.
5,16혁명은 단순히 국가 권력, 정부형태의 교체만을 이룬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낡고 병든 사회, 경제, 문화, 사상, 국민의식, 국민 생활 전반에 걸처 근본적으로 ‘대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5,16은, 부정될수 없는, 진정한 ‘혁명’이였던것이다.
흔히 과거 중남미 등에서 일어났던 전 근대적 ‘군사 구데타’와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르다. 소수의 권력욕을 가진 군인들이 국민의 호응은 전혀 없이,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시켜 권력을 잡고, ‘과두정치’(oligarchy)를 자행했던, 중남미의 그런 구데타와는 완전히 다른것이였다.
5,16 혁명은 국민의 호응을 크게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1961년 새벽, 목숨 내걸고, 한강 방어선을 돌파하고 서울에 진입한 혁명군의 기본 병력이란 사실 1천여 명 정도의 해병대 병력이었다. 혁명에 참가하려던 대부분의 부대들은 육참총장의 명령으로 출동이 저지되었었다.
물론 6군단 예하의 포병 병력이 그날 육군본부 에 출동하기는 했으나, 그들은 장도영 총장의 명령으로 그 이튿날 원대 복귀하였다. 출동이 저지되렀던 김포의 공수단은 해병부대가 한강교를 돌파하는 것을 보고 서울에 진입하였다. 60만 국군 병력에 비하면 혁명군이란 한줌도 안되는 소수의 병력이였다. 그런데도, 어떻게 5,16혁명이 성공될수 있엇는가?
물론 여러가지 여건과 변수가 많았지만, ‘국민’의 성원과 지지가 없었다면 성공할수 없는것이엿다. 윤보선 당시 대통령은 “올것이 왔다”고 했다는데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바로 국민이 기다리던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바로 ‘그날’ 나 자신은 분명히 보았다. 서울 시내로 진입해 들어올 때, 도로변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며 우리 혁명군을 환영하던 모습을 !. 그날 오후에, 서울 시청부근, 조선 호텔 앞에서 경계를 서 있던 해병 소대원들에게 얼굴도 모르는 아주머니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주먹밥, 빵 등을 갖다 주던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런 국민들의 호응 속에서 5,16혁명은 국민 혁명으로 발전할수 있었던 것이다. 국민의 호응과 지지가 있을 때, 그것은 ‘혁명’이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프랑스 혁명이 그랬고, 낫세르의 이집트 혁명, 미국의 시민 혁명, 오늘날 중동의 자스민 혁명 등이 그런것이다.
조국 근대화, 경제 부흥, 후진국 농경사회를 ‘경제 선진국 형 산업사회 구조 ’형태로 바꾸고, 철강, 자동차, 조선, 전기, 전자, 정보통신, 석유화학, 등 각 분야의 개척, 도전 및 눈부신 발전, 항만, 철도, 고속도로, 지하철, 공업단지조성 등 산업 기반, 인프라 구축, 새마을 운동으로 농촌의 획기적 변화, 치산 치수, 과학기술 진흥, 국방 안보의 강화, 등 등…. 모두 허리띠 졸라매고 ‘잘살아보세’ 함성을 지르며 진군해 나가던 그 모습을 이해찬, 손학규, 문제인, 김두관은 기억이나 하고 있는가? 여기에 그때의 혁명적 변혁과 성취를 일일히 열거하려면 한이 없을것이다. 대물림 가난과 구조적 후진 상태의 5천년 역사에서 이와 같은 ‘대변혁’, ‘대도약’, ‘잘 살게 된’ 국가적 변화가 언제 있었는가?
2010년도 ‘리서치 앤 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대한민국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대통령이 누군가?’에 대하여 국민 75.6%가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래도 5,16을 ‘혁명’이라고 평하기를 인색해 하는가?
국내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뜻있는 지도자들도 다 한국의 기적적인 ‘도약’을 칭송하며, 5,16을 ‘혁명’이라고 부르는데, 오직 국내의 일부 역사의식이 잘못된 자들, 좌익 분자들만 여전히 5,16을 폄훼하고 있다.
한국의 검인정 국사교과서에는 아직도 5,16을 여전히 ‘군사정변’이라고 기술하고 있는가? 앞으로, 이번 대선을 통해, 올바른 역사관을 가진 지도자가 정권을 잡게 되면, 그것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 대한민국을 오늘날의 세계 경제 10위권에 들어서게 한 원동력인 그 ‘5월 16일’을, 법적으로,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라. 그리고 목숨 걸고 5,16 혁명에 참가했던 노병들을 ‘국가 유공자’로 추서하라. 역사관이 잘못된 YS. DJ, MH 가 대통령이 되어 역사를 꺼꾸로 만들어 놓았던, 모든 잘못된 ‘Upside down’(꺼꾸로된)‘역사’를, 올바른 궤도로 다시 세우기를 간절히 바란다.
댓글목록
그건뭐지님의 댓글
그건뭐지 작성일
전 박정희 대통령께서 최고의 치적은 당연히 경제일 겁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은 자연보호입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산이 없다고 봐야 하는 그야말로 민둥산만 있었습니다.
지금 산을 가보십시오. 그때 심었던 나무들입니다.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고 우리나라 국민의 저력을 눈으로 보여 주었던 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설악산 개울물에서 악취(시궁창)가 나고 산이란 산엔 무슨 음식점, 러브호텔, 펜션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민주화 운동 했다는 놈들이 만든 무시무시한 자연 파괴행위입니다.
우리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 주어야 할지 모르는 돈에 눈이 멀었던 놈들이 산물이죠.
그들은 이명박이 추진한 4대강, 제주 구럼비를 말하며 자연보호를 외치지만 자기들이 저지른 무시무시한 자연 파괴행위에 대한 어떠한 외침이나 시위 한번 없었습니다.
이런 이중성이 저들입니다.
그린벨트까지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허가를 내주었고 수도이전을 말하고 나서 온 국토를 무슨 특구, 여긴 무슨 지구라 하여 전국 이곳저곳 부동산을 땅 투기장으로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자연보호란 걸 전혀 하지 않은 뚜렷한 증거론 그 당시 그놈들은 전국에 골프장 1,000개 허가를 내주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누가 더 대한민국을 위했는지 누가 더 국가의 미래와 번영을 바라였는지 그 답이 나옵니다.
설악산 개울에 악취를 만들어야 합니까. 아이들이 개울에서 수영하는 그런 산을 물려 주어야 합니까.
일조풍월님의 댓글
일조풍월 작성일박정희 전 대통령 반정만 되는 인물만 나와도 투표를 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