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교통사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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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일조풍월 작성일14-08-02 02:12 조회2,207회 댓글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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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뜻밖에도 슬픔이 엄습하지 않았다
어머님 살아계실 때 가족들 모여 술한잔 하면 노래방을 갔고
불효자식이란 흘러간 노래를 18번 같이 불렀었다
부를 때 마다 가슴이 복바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콧등이 시큰거렸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이노래는 절대로 부르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정정한 어머님이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급사를 했는데
눈물도 나지를 않았다
무당 신내림 굿하는 동영상을 찍다가도 눈물이 났는데 이게 웬일인가 말이다
갑자기 다리를 절단 당한 사람이 얼마간은 침대에서 일어 나다 곤두박질 친다고한다
아직 다리가 있는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있는데 그 그림자의 실체가 보이지 않을 때의 황당함이
슬픔을 압도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어리둥절한 정서는 감정의 사치였다는것을 한참뒤에 깨달았다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보름 정도 되었을 때
몇번의 어머님 꿈에서 처절하게 통곡을 하고난뒤에 알아차렸다
어머님이 돌아가신뒤에
가해 차량 운전자가 어머님 장례식에 조문을 왔었다
여동생 셋이 운전자에게 달려들어 감히 여기를 오느냐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나는 동생들을 만류하고 조문객으로 응대를 했다
그가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기에 당신 마음 잘아니까 편히 앉으라고 했다
여동생들이 쫓아와 나에게까지 울분을 터뜨렸다
동생들이 지금 격하니까 그만 돌아가라고 보냈다
내가 동생들보다 인격수양이 잘되서 이렇게 조문객으로 접대를 한것도 아니고
어머님의 급작스런 죽음에 대하여 별 문제의식을 못느껴서 그런것도 아니다
모든게 허망했기 때문이다
허망함이 슬픔과 분노를 삼켜버렸다
어머님을 화장한뒤에 화장터 납골당에 어머님 잿가를 안치했다
사자의 아파트 같았다
여동생이 어머님 틀니를 여기에 넣어놓자고 한다
어머님의 죽음에 대한 자식의 애절한 마음인줄 알지만 허망한 마음만 커졌다
교통사고라 보험과 합의 문제가 남았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알수가 없었다
동생들과 지인들이 합의를 잘봐야 한다고 조언을 해줬다
그러나,
보상과 합의금을 더 받아 내기 위하여 보험회사와 흥정을 한다는게 달갑지가 않았다
어머님 죽음을 흥정한다는것 자체가 싫었다
보상금과 합의금을 받는것 자체도 돌아가신 어머님에게 죄를 짓는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보상금가 합의금도 마다할 만큼 현실이 녹녹치는 않았다
보상금과 합의금은 주는 대로 받았다
동생들에게 또한번 욕을 먹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로 죽는다면
슬픔과 허망함에 압도 되어 합의금이나 보상금을 더 받아 내려고 애를 쓸수잇을까
더구나 어린 자식이 하루 아침에 죽고나면
그 충격은 부모를 잃은 자식보다 수백배는 클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않는가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고 처리하는 과정이 다를수 있지만
나의 중3짜리 딸아이가 교통사고로 그렇게 갑자기 죽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넋을 놓고 있을것 같다
보상금 합의금은 동생보고 처리하라하고 맨붕으로 몇달을 지낼지 모를것 같다
내 딸의 죽음을 댓가로 뭔가를 요구한다는게 나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할것이다
나오는 보상금을 받는것도 야합하는 기분이 들것이다
그래서, 장학금으로 기증하는 분들이 있을것이다
연평도 포격인가, 천안함 폭침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님이 자식의 보상금을
국방부에 헌금한것도 자식의 죽음을 댓가로 돈을 받는 자신이 싫었을것이다
제3자가 위로차원에서 이것 저것 챙겨줄수는 있지만
자식 잃은 부모가 이것 저것 챙기려고 하는것은 의아하다
갑자기 죽은 사람이 측근일수록 슬픔이 크고, 허망함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냥 멘붕이 되어버릴것이다
인간사 부질 없음이 뼛속 깊이 사무칠건데 뭔가 이득을 챙기려는 마음이 생길까
어머님 사망 보상금을 받기는 햇지만
더 받아 내기 위하여 이런저런 흥정은 하지 않았다
어머님 죽음을 댓가로 흥정을 한다는게 나에게는 어불성설이었다
그렇다고 부자는 아니다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보상금을 경로당 등에 기부를 하지 못했다
댓글목록
한가람님의 댓글
한가람 작성일
그러한 힘든 일이 있으셨군요....늦게나마 모친의 명복을 빕니다.
저는 오늘이 어머님 기일... 그래선지 새벽잠에 어머님과 동네 모임에 참석한 꿈을 꾸었습니다.
깨어나서 노래처럼 흥얼거렸습니다--- 젯밥 한 그릇 올리고 내일은 만월당에 찾아 뵙겠습니다~~~
풍월님의 글을 읽고 느낀 것은... 세월호 사고 학생들의 부모중 일부는 자식 사랑이 없었던게 아닌가 하는...
EVERGREEN님의 댓글
EVERGREEN 작성일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동감합니다. 이보다 더 사실적이고 가슴에 와닿는 표현은 없을 겁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이 글을 읽고 차분한 마음으로 곰곰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다리님의 댓글
아다리 작성일
일조풍월님!
공감합니다.그리고,삼가 애도의 뜻을 마음으로나마 표합니다.
저도 작년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 한동안 공허함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임신여군중위 사망-사망직전 7개월된 아기출산-외손주 인큐베이터 4개월-유골 횡성보관소 4개월보관
-순직부결(1.전례없음 2.여군 생긴 이래로 처음발생)-유골찾음(제 머리맡에4개월 보관)-국민권익위원회 민원제기-여군 단순사망 재심-순직처리:2013년10월 - 대전 현충원 안장:2013년11월-
여식이 여군사관 임관후 처음으로 근무했던 인제 12사단~
저의 선친이 군생활 하셨고,제가 태어났던 곳,그리고 제 딸이 근무 했던 곳...
위 일조풍월님의 글을 읽으면서 제가 겪었던 순간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습니다.
일조풍월님의 글을 통하여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제자신도 당시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아 당혹스러울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었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A 혹은 B인지? ......
이제는 지나간 바람이 되어 과거의 한부분이 되었습니다.
제 스스로 ~위로아닌 위로는 매주 일요일 신애 엄마와 인큐베이터에 있다 살아난 외손주 그리고 사위와 함께 대전 현충원에 가서 딸과 무언의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제 아내는 늘 눈물의 대화를 하지요~
제 선친이 묻혀있고, 제 딸이 묻혀있는 대전 현충원~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저려오죠.
일조풍월님!지혜롭게 매사를 잘 대처하시는 분 같습니다.
배울점이 많구요~세월호사건도 유가족들이 잘 대처를 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이미 사망한 자식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소함으로 인하여 죽은자들이 두번 죽는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제 여식 장례치를때 일이 생각나네요~
사단에서 모금을 하여 위로금으로 적지 않은 돈을 받았었죠.
장례식후 집사람과 사위와 상의한후 받은 돈에 조금 더 보태서 부대에 기금으로 남겼고,부대장병들 덕분에 장례를 잘 치뤘다고 사단장한테 감사편지를 전달하였더랬습니다.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위 일조풍월님이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진 사실이 다시 돌아올수 없기 때문에
남은자의 몫이 무엇인지를 많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습니다.
지나간 일들에 아픔과 눈물은 많았지만,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세월호 유가족을 보면서 순수함이 흔들려서는 안되는데~
휘둘려서는 안되는데 하는 마음 뿐입니다.
--어찌됐던 12사단에서는 우리 유가족이 드린 돈을 한푼도 쓰지 않고 다시 저의 외손주 장학금으로 내규화시켜서 남겨놓았습니다-이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한편으론 부대에 고맙고 미안하면서 어떻게 보답할까? 생각중에 있습니다.
일조풍월님! 글 하나하나 제 가슴에 깊이 각인되고 있습니다.
귀한 말씀 가슴 깊이 간직하겠습니다.
일조풍월님의 댓글
일조풍월 작성일
아다리님
참으로 고통스럽고 허망한 일을 겪으셨군요.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다 키운 따님을 그렇게 잃으셨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감히 짐작을 해봅니다
따님의 보상금을 부대에 희사하고
부대에서는 다시 외손주 장학금으로 돌려놓았다니
참으로 감동스런 일이군요
이런경우를 찬란한 슬픔이라고 하는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존경합니다
암환자 앞에 감기 자랑한것 같아 민망합니다
세월호 유족들중 일부의 의아한 제안을 보면서 답답하여 올린글이니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혈혈단신 객지에서,
수십년만에 고향분을 만난것 처럼 감동스럽습니다
웅비4해님의 댓글
웅비4해 작성일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모친께서 극락왕생하시길 빕니다
제 어머니는 40여년 전, 마흔아홉에 돌아가셨지요
선상근무를 하던 때라 임종도 장례식에 못 치루었어니 실감이 안났었습니다
49제 때에야 겨우 참석했었는데.. 참 허망했습니다
일조풍월님의 그 느낌, 조금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님께서 냉정을 찾으시고 대인답게 사후수습을 잘 하셨습니다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