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패망이 주는 교훈,,,,,정도님의 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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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view 작성일12-05-26 22:33 조회8,66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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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도에 자유월남은 세계 4~5위의 군사력을 자랑하던 베트남이었읍니다. 당시에 국내에서도 베트남 전쟁이 발발하자 언론에서 대서 특필로 방송하고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외치며 대한민국도 베트남처럼 초토화 될수 있다고 경각심을 국민들에게 일깨워 주었고 국민들도 긴장과 불안속에서 생업에 종사했던 나날들 이었읍니다.
베트남적화전쟁이 거의 월맹군의 승리로 돌아갈 즈음 북한의 김일성은 다음은 대한민국의 적화차례라고 북한주민들에게 알리고 군사력 증강을 하면서 중국의 모택동을 만나고 소련의 후르시초프를 연이어 방문하면서 대한민국의 적화전쟁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니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 달라고 하고 다짐을 받고 김일성은 북한으로 귀국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자주국방 강화를 외치며 비상사태에 돌입하여 삼엄한 경계의 분위기로 흘러가자 김일성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전쟁을 포기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저도 5학년 초등학생이었는데 언론과 학교에서 베트남 적화과정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어린마음에 두려움이 마음에 잠재되어 있던 추억이 있읍니다.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은 2차대전때 스위스(삼엄한 경비태세로 희틀러가 침입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와 거의 같은수준이라고 소련과 중국은 논평했다는 일화가 있읍니다. 당시에 김영삼이나 김대중이가 유언비어를 퍼트려 우매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찌 되었을까?,,,,그것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더 잘 판단하실 것이라 봅니다.
베트남 전쟁이 월남의 참패로 마감되면서 월남백성들은 피난을 가고 국외로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1000만명정도가 도륙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몇 안되는 반듯한 우익의 지도자들 중에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허드렛일 하면서 생계를 꾸려 갔다고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많은 인구가 도륙당하는 바람에 피비린내로 인해서 질식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피로인한 공해로 인해 보트나 배로 피신하여 대양 한가운데 표류하면서 생활을 하니 베트남인들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는 말할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뒤에 월맹군 수괴들은 공산화에 적지않게 공로가 있는 좌파들을 제일먼저 도륙하고 기독교인들을 모두 도륙하는 대 참사가 발생하니 이를 목격한 기자들이 세계 각각의 언론에 보도하면서 공산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인식되었고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단지 유일하게 3개나라(중국,소련,북한)만 민주주의로부터 사회주의의 승리라고 자축하면서 기뻐하였고 이 이야기는 50살 이상 살아온 중국교포나 조선족 교포들도 잘 알고있는 실화입니다.
당시에 바다에 표류하는 베트남인들은 이나라 저나라 항구에 도착하여 먹을것을 달라 도움을 호소해 보았지만 싸늘하게 외면하는 나라들이 많았고 심지어 어떤 나라는 항구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총으로 발포하였다고 합니다. (아마 말레이지아가 발포하였던 것으로 추측함)
베트남인들은 선박위에 표류하면서 나라잃은 슬픔을 달래야 했고 자살하는자, 물에빠져 죽는자들이 있었고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인들의 처절한 삶을 참모들에게 보고를 받고 베트남인들을 위로하고자 대한민국 남해안 어느 외딴섬에 정박하게 하여 식량과 의복을 제공하기도 하였죠 ,,,그후 3개월정도? 섬에서 살아가다가 식량과 의복을 제공하고 그들을 되돌려 보냈는데 베트남인들이 뿔뿔히 흩어져서 버어마나 주변의 나라로 밀입국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정확한 정보는 없읍니다.
마지막으로 말씀 드릴것은 공산수괴들이 좌파들을 전부 도륙하고 우익들은 왜 살려 두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역사를 읽어보면서 우익을 처벌하지 않고 살려두는 이유를 제 나름대로 분석(추축)해 보았읍니다. 나라를 배반한 좌파들은 살려 두었다가는 또다시 반기를 들어 적잖은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에 처형을 시키지만 우익은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는 몸이 부서질 정도로 겁없이 사력을 다해 저항하지만 대세가 기울었으면 깨끗한 패배를 인정하고 망명을 하거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고사리나 나물을 캐먹으며 살아감니다.역사를 보면서 이름을 빛낸인물들 보면 그렇게 생을 마감하더군요
우익들은 패배를 인정하면 깨끗이 물러날줄 알고 있기에 공산수괴들이 살려 두는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베트남적화전쟁이 거의 월맹군의 승리로 돌아갈 즈음 북한의 김일성은 다음은 대한민국의 적화차례라고 북한주민들에게 알리고 군사력 증강을 하면서 중국의 모택동을 만나고 소련의 후르시초프를 연이어 방문하면서 대한민국의 적화전쟁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니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 달라고 하고 다짐을 받고 김일성은 북한으로 귀국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자주국방 강화를 외치며 비상사태에 돌입하여 삼엄한 경계의 분위기로 흘러가자 김일성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전쟁을 포기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저도 5학년 초등학생이었는데 언론과 학교에서 베트남 적화과정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어린마음에 두려움이 마음에 잠재되어 있던 추억이 있읍니다.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은 2차대전때 스위스(삼엄한 경비태세로 희틀러가 침입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와 거의 같은수준이라고 소련과 중국은 논평했다는 일화가 있읍니다. 당시에 김영삼이나 김대중이가 유언비어를 퍼트려 우매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대통령이 되었다면 어찌 되었을까?,,,,그것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더 잘 판단하실 것이라 봅니다.
베트남 전쟁이 월남의 참패로 마감되면서 월남백성들은 피난을 가고 국외로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1000만명정도가 도륙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몇 안되는 반듯한 우익의 지도자들 중에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허드렛일 하면서 생계를 꾸려 갔다고 합니다. 베트남에서는 많은 인구가 도륙당하는 바람에 피비린내로 인해서 질식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피로인한 공해로 인해 보트나 배로 피신하여 대양 한가운데 표류하면서 생활을 하니 베트남인들의 삶이 얼마나 괴로웠는지는 말할수 없을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난뒤에 월맹군 수괴들은 공산화에 적지않게 공로가 있는 좌파들을 제일먼저 도륙하고 기독교인들을 모두 도륙하는 대 참사가 발생하니 이를 목격한 기자들이 세계 각각의 언론에 보도하면서 공산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인식되었고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단지 유일하게 3개나라(중국,소련,북한)만 민주주의로부터 사회주의의 승리라고 자축하면서 기뻐하였고 이 이야기는 50살 이상 살아온 중국교포나 조선족 교포들도 잘 알고있는 실화입니다.
당시에 바다에 표류하는 베트남인들은 이나라 저나라 항구에 도착하여 먹을것을 달라 도움을 호소해 보았지만 싸늘하게 외면하는 나라들이 많았고 심지어 어떤 나라는 항구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총으로 발포하였다고 합니다. (아마 말레이지아가 발포하였던 것으로 추측함)
베트남인들은 선박위에 표류하면서 나라잃은 슬픔을 달래야 했고 자살하는자, 물에빠져 죽는자들이 있었고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은 베트남인들의 처절한 삶을 참모들에게 보고를 받고 베트남인들을 위로하고자 대한민국 남해안 어느 외딴섬에 정박하게 하여 식량과 의복을 제공하기도 하였죠 ,,,그후 3개월정도? 섬에서 살아가다가 식량과 의복을 제공하고 그들을 되돌려 보냈는데 베트남인들이 뿔뿔히 흩어져서 버어마나 주변의 나라로 밀입국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정확한 정보는 없읍니다.
마지막으로 말씀 드릴것은 공산수괴들이 좌파들을 전부 도륙하고 우익들은 왜 살려 두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역사를 읽어보면서 우익을 처벌하지 않고 살려두는 이유를 제 나름대로 분석(추축)해 보았읍니다. 나라를 배반한 좌파들은 살려 두었다가는 또다시 반기를 들어 적잖은 위협적인 존재가 되기에 처형을 시키지만 우익은 나라가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는 몸이 부서질 정도로 겁없이 사력을 다해 저항하지만 대세가 기울었으면 깨끗한 패배를 인정하고 망명을 하거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고사리나 나물을 캐먹으며 살아감니다.역사를 보면서 이름을 빛낸인물들 보면 그렇게 생을 마감하더군요
우익들은 패배를 인정하면 깨끗이 물러날줄 알고 있기에 공산수괴들이 살려 두는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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