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케 전투 40주년 워크솝에서 발표한 내용
페이지 정보
작성자 안케 작성일12-04-25 05:16 조회15,836회 댓글7건관련링크
본문
앙케 전투 40주년 워크숍에서 발표한 내용
안녕하세요?
먼저 호국영령들과 앙케 전투에서 산화한 영령들에게 고개 숙여 삼가 명복을 빕니다.
앙케 전투 4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해 주신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오 홍 국 연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본관, 연구소장님을 비롯하여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 귀빈님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 치열하고 처절했던 앙케 전투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지휘관님들을 비롯하여 동료, 선후배 전우님들을 이렇게 만나 뵈게 되어, 감개무량 합니다.
저를 간단히 소개 하겠습니다.
저는 맹호 기갑연대 수색중대원으로서 월남 전사에서 최대격전지 앙케 전투를 직접 체험한 앙케 의 눈물 저자 권태준입니다.
“월남 참전!”
대한민국 단군개국 이 후, 월남전 참전으로 인한 가난을 떨치고 경제부흥과 국가산업 인 푸 라를 구축하고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 한 것은 월남 참전 용사들의 피와 눈물과 땀의 대가라 생각합니다.
“일부 좌익 언론인과 학자들은 용병이니, 양민 학살이니, 뭐니, 망발을 하고 있습니다.
“희생과 아픔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패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천년 역사 속에서 우방을 돕기 위한 해외 원정으로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그 때만큼 찬란한 역사로 자리 매김 한 기적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먼 훗날 월남전의 참전으로 우리 민족의 빛나는 역사중의 하나로 진실 되게 기록 되리라 믿습니다.
아울러,
월남 참전의 이 위대한 업적을 젊은 세대들에게 교육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위대한 업적을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각, 군 사관학교와 대학교, 고등학교까지 월남 참전 학과를 신설하여 교육할 것을 제안 드립니다.
또, 월남전에 대한 연구위원, 인원도 대폭 보강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앙케 전투 40주년을 맞이하여 꽃다운 젊은 청춘을 피어보지도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신 우리 소대장님을 추모하기 위해서 지난 4월7일 현 충 원 국립묘지에 고이 잠들어 있는 소대장님 묘비를 참배하고, 편지를 써서 인터넷상에 올렸습니다.
그 편지 내용을 잠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목 : 저승에 계시는 소대장님에게!
김진흥 소대장님 안녕하세요?
벌써, 40주년 소대장님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군요.
1972년 4월12일 전사 하신 날이니까.
다가오는 4월 11일이 소대장님의 기일 날이 되는 셈이군요.
공교롭게도 이 날은 대한민국 운명을 결정짓는 선거를 하는 날입니다.
소대장님!
지금, 대한민국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면서 풍요로운 대한민국 체제하에서 살 것이지?
아니면!
자유와 인권이 없고 암흑 속에서 굶주리고 있는 저 북한 체제하에서 살 것인지?
국민들이 이것을 결정하는 날이, 바로 소대장님의 기일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 월남참전 전우들이 이역만리 전쟁터에서 피 땀 흘려 이 만큼 잘 살게 만들어 놓았더니,
무상급식이 뭐니 하면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들은, 대한민국 해군기지를 ‘해적’ 기지라고 떠벌리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대장님!
오늘은 소대장님이 계시는 저승 소식이 너무나 궁금하여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살려 이렇게 두서없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 곳 저승 생활은 어떠하신지요?
아마도 잘 계시고 있겠지요?
그날 그 장소에서 소대장님과 함께 저 세상으로 동행한 수색중대 제1소대 전우들과 제1소대장 임 진우 중위님도 잘 계시고 있는지요?
그 치열하고 처절했던 앙케 전투에서 고엽제 비를 맞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전우들도 행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못쓸 다이옥신 고엽제에 피폭되어 평생 동 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다가 결국은 가족들에게 까지 무거운 짐만 지어놓고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고엽제 병마에 시달리며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전우들은 곧, 저 세상으로 갈 것이란 생각 때문에, 소대장님이 계시는 그곳 저승 소식을 무척 알고 싶어 합니다.
소대장님!
그때 제가 대필했던 펜팔편지, 탤런트 지망생이고, 빼어난 미모라고 알려졌던 그 여대생 기억나십니까?
권 병장 너, 각오해!
“만일 편지 답장이 오지 않으면 알지?”
소대장님의 그 늠름한 목소리가 지금도 내 귓전에 쩌렁쩌렁 하게 들여오는 것 같습니다.
상대가 탤런트 지망생이고 빼어난 미모의 여대생이란 정보에, 콧대가 높을 대로 높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무척 긴장했었습니다.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연대전술기지 내 미니동물원에서 사육하고 있는 공작새 깃털을, 밤에 아무도 모르게 가위로 잘라 와서 편지 봉투 속에 넣어 보내지요.
권 병장의 이 같은 정성에 감동을 받았는지?
소대장님이 전사한 후, 그녀한테서 편지 답장이 왔었습니다.
김중위님의 편지 첫 구절에 ‘폭음만이 귓전을 울리는 전선의 밤입니다.’ 라는 사연이 전혀 실감을 못 느낄 만큼, 이곳 고국의 밤하늘에는 별들만이 속삭이듯 반짝거리는 평화로운 밤입니다.
이 밤도 김중위님의 늠름한 모습을 그리면서 MBC-문화방송 ‘한 밤의 음악편지’ 담당자에게 김중위님에게 보내는 사연을 신청했다는 내용과 함께, 생전 처음으로 받아본 귀하고 귀한 신비스런 공작새 깃털과 편지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탤런트 시험에 무난히 합격했다는 절절한 내용의 편지 답장이 왔었습니다.
아마 그 빼어난 미모의 여대생도 지금쯤은 40여 년이란 모진 세월의 세파 속에 할머니가 되어 있겠지요?
소대장님!
이제 권 병장도 소대장님 곁으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그 못쓸 고엽제 병마와 싸울 여력이 다 소진 된 것 같습니다.
만나게 되면 상상을 초월한 이곳 세상의 발전상을 보고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이승에서 권 병장 올림
지금까지 경청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앙케 의 눈물 저자 권 태 준
댓글목록
금강인님의 댓글
금강인 작성일가슴이 뭉클합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www.systemclub.co.kr/board/data/cheditor4/1110/r1tjXJPhhdTELD4xBIaanTIeCIOFe8ZF.jpg
↗ '육군보병학교' 및 '지 만원' 박사님께서도 근무하셨던 '학교부대'들 및 '기성 사단', 기타 부대 마크들!
1950.6.25 동란 발발 기간 중에 있었던 치렬했던 고지 쟁탈전들!
제9사단{백마부대}의 중공군과의 강원도 철원, 구철원 "'백마고지' 전투!"
제수도사단{맹호부대}의 중공군과의 강원도 금성군 금성읍 金城川 북방 "'수도고지' 및 '指型능선' 전투!"
제15사단{승리부대}의 중공군과의 강원도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 명파리 북방 "'351고지' 전투!"
,,, ,,, ,,, ,,, ,,, ,,.
위 3가지 '高地 爭奪電' 전투들 특히 1953.7.27 휴전을 임박하여 치뤘었던 상상을 초월하는 전투들였다고들 합니다! 치렬의 극을 다했었던!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이ㅐ후의 어떤 세계 도처에서의 각종 전쟁.전투 사레보다도,그 어떤 인류 역사상 전투들보다도 참혹.잔인하며 비인도적 상황! ,,. 피아간에 공히, 후퇴하면 그 자리에서 총살! ,,.
최말단 指揮者(지휘자)인 ㅡ ㅡ ㅡ '분대장, 반장, 소대장'의 3 직책은 어께에 綠色(록색)의 푸른 헝겊대기로 肩章(견장)이 붙여져 식별.구분되는데, 그것은 戰時에 재판없이 즉각 현지 총살권이 있음을 상징! ,,.
섬뜩하죠! ,,.
물론 최말단 지휘관인 중대장, 대대장 이상부터는 指揮者가 아니라 指揮官(지휘관)이기에, 指揮官 흉장(胸障)이 별도로 또 부착되지만 이들 모두들도 어께에 푸른 록색 肩章(견장)이 부착되어져 있죠. ,,.
전시 즉각 현지 총살권 부여! 이걸 아는지,,. 【軍隊에는 民主主義가 없다!】↔ 맥아더 將軍
거듭 전사하신 모든 분들에게 숙연하게 묵념을 드립니다. 그들은 1950.6.25 발발 ~ 1953.7.27 휴전 협정 체결 까지의 기간 중 UN참전 우방 16개국들에게 지은 채무 빚을 곱배기 복리 이자를 붙여서 갚으신 분들입니다. 최말단 지휘자들 가온 데는 가장 높은 돌격대장인 소총소대장을 양성 배출하면서 최말단 지휘관인 각급 보병 중대장들{대대 중화기 중대장, 대대 본부중대장, 연대본부 본부중대장, 연대본부 수색중대장, 경비중대장, 대대 소총중대장}등, 중대장 대위급 장교들에 대한 6개월 보수교육을 시키면서, 보병 연대급 이하 제대들의 敎理 개선.창안 업무를 띄는 '육군보병학교'의 구호가 '나를 따르라'입니다. 소총소대장이 선두에 서야만 한다는 것을 강조한 상징적인 구호! 그래서 6.25 때는 '탄알받이'라고 했으며, '소모 소위
'라는 말들이 ,,. 고런 모멸적인 표현들도 다 빨갱이 불순분자들이 퍼트린 사기 저하 효과를 획책하는 心理戰일 터! ,,. 빠드~득! ,,. 좀 더 다른 표현은 없었던 걸까? ,,.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제2군 휘하의 향토{예비}사단들,,,. 제31사, 32사,35사, 36사, 37사, 39사, 제50사, 53사, 61사단! ↙
http://www.systemclub.co.kr/board/data/cheditor4/1110/wyeZaiWJQ3HQGkQYwp.jpg
방공포병학교, 육군통신학교, 제3사교, 육사교, 육군대학, 교육사령부, 군수사령부, 제2군사령부, 제ⅲ군단, 제1야전군사령부 ↙
http://www.systemclub.co.kr/board/data/cheditor4/1110/YDfWBIFf8BAzvp4gMWUd6KxbZ8iHzS.jpg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전사하신 소대장님들 모두들께오서는 보병 소대장들이시었고 임관 출신구분에 관계없이 일단 무조건 '후보생' 시절이건, '생도' 시절이건,기성 장교로 임관되어버린 '소위' 시절이었건 간에, 적어도, 일단 최소한, 1번 이상은 '육군보병학교'에서 피교육자 신분이 되어 교육을 받았읍니다! ,,. 육군보병학교 구호 : 나를 따르라
http://www.systemclub.co.kr/board/data/cheditor4/1110/r1tjXJPhhdTELD4xBIaanTIeCIOFe8ZF.jpg
마르스님의 댓글
마르스 작성일
앙케전투는 6.25전쟁이후 우리 국군이 겪은 가장 길고 치열한 전투였습니다.
각종 악조건하에 준비되지 않는 작전을 수행하면서 불필요한 희생을 치른 가슴 아픈 전투이었지요.
저는 안케님이 게재한 글을 한편도 빠짐없이 다 보았습니다.
여러 전투에 대한 기록이 많지만 전쟁의 최첨단에서 직접 당하고 겪은 육체적 심적 고통을 담은 글은 처음 읽어보는 것 같습니다.
전쟁에서 겪어보는 병사들의 상세한 심리상태와 전쟁후에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 증상들은 정말 귀중한 사료가 될것 같네요.
안케님이 고엽제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고 계시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마지막 까지 용기 잃지 마시고 안케고지에서 싸웠던 투혼으로 잘 싸우시고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http://www.bomnal.net/pds/view.asp?mode=&idx=146&nowpage=2&s_string=&search=
* 죽음을 찬양하라는 주장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희생이 되는 일을 절망만하면
비통해만 하기보다는 이를 고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국가적.범국민적인 풍토 조성되지
않. 못하거나 매우 결여된 현상을 심히 우려함! ,,.
치열의 극의 다했었던 1950.6.25 동란 기간 중 출반된 유명한 노래!
【'유 호' 작사, '손 목인' 작곡, '심 연옥'님 노래, 1951년 "아내의 노래"】
이런 노래를 군부에서는 생활호, 가창시켜야만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건전하고도 발전적인 전쟁관을 조성키보다는 경박한 노래와 일시적인 불건전한 미치광이 노래들
이런 방송 문화를 조장하는 세력들도 모두 다 북괴 빨갱이들이거나 간첩 종조자들이다! ,,.
이 나라는 대대적인 적발과 추상같은 숙청이 매우 시급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