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삼청교육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벽파랑 작성일12-04-17 16:31 조회4,735회 댓글4건관련링크
본문
세인들이 아는 삼청교육대라는 게 5공 정권의 약점이니 뭐니 하면서 개거품을 무는데...
제가 알기론 삼청교육대는 깡패들 잡으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언론권력들이 판치고 있어 지방 사업체들이 괴로울만큼 삥 뜯는데 혈안이 된...
양아치짓을 일삼은 지방 언론사들 때려잡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삼청교육대에 대해 답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박통 시절 보안사령관을 지낸 강창성이가 하나회 때려잡을라다 삼청교육대에 4번 끌려갔었는데...
강창성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댓글목록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제가 알기로는 '강 창성' 보안사령관님은 육사# 8기생으로 경기도 포천군 출생!
같은 육사교 # 8기생이신 '윤 필용' 사건을 수사하면서, 육사교 출신 # 11기에 중에서도 경상도 출신을 씨를 말리려다가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이시던 종합학교 ㅡ ㅡ ㅡ {1950.6.25 발발과 동시 육사교를 해체하고 경기도 시흥에 있던 '육군보병학교'를 아울러 폐교시키면서 경남 부산 동래에 새로 창설하여 육사교 생도 #2기생 ㅡ ㅡ ㅡ 최초로 4녅2ㅔ 입학시험을 치뤄 40대 1 이라는 경쟁을 돌파하여 입교했던 사실상의 육사교 11기생 출신 들 및 간부후보생들을 함께 입교시켜 소위 임관됨. 종합# 1기, 2기, 3기, ~ 6기, 7기생들! 전선에 투입되어졌다가 풍비 박산되어 전선에서 락오! 헌병들의 락오자 수집소에서 수집되어져 종합학교로 호송되어지는라고 축차적으로 임관됨} # 35기? 로 압니다. 정확한 기수는 모름. '박'통과는 6.25 발발 전 함께 중사 계급으로 육본 전투 정보과{Order Battle, 전투 서열과}에서 근무하였으며, 영어를 잘 했다함. 1961.5.16발발 당시 미군 KATUSA중대장. 소령}에게 미움받아 수사 중단! ,,.
보안사령관에서 충청북도 증평 37사단, 충청남도 대전 32사단, 충남 논산 제2훈련소, 대전 병참.통신학교들을 통합 관장하는 제3관구사령관으로 전속.보직되셨다가 예편! ,,.
'전 두환'때 3청 교육대로 가서 고생하샸다 함. '금 뒈쥬ㅣㅇ'롬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에서(?) 들어간 보안사령관! ,,. 역사적으로 볼 때, 내종 얘기 ㅡ ㅡ ㅡ 결과론적으로 국민에게 죄인이 되! ,,.
'윤 필용' 소장님은 억울하셨던 분! ,,. 작년에 작고하심! ,,. 삼가 명복이나마 빕니다.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생도 # 1기생은 육사교 # 10기생인데, 2년과정으로 모집, 1년만에 195.6.25 발발로, 경기도 광릉내 전선에 투입되어져서 생도# 2기생들과 함께 풍지 박산되었었음. ,,. 대전에서 육사교 # 10기생으로 소위 임관됨. 생도 # 2기생은 사실상 육사교 # 11기생이어야만 했지만, 육사교 폐지로, 부산 동래에서 창설된 '보병학교 + 육사교'의 후신인 국군종합학교에서 간부후보생들과 같은 학급편성되 소위 임관! 1기 ~ 7기까지? ,,. 그러므로 육사교 # 10.5기생(?)으로도 볼 수 있다 할 것입니다만,,. 대표적 인물이 바로 고 '강 재구'소령{육사교 # 16기, '장 세동'과 동기생}의 대대장 '박 경석' 준장님, 그리고 최초의 헌병총사령과 '원 용덕'중장의 동생 '원' 모 대령님! 국회의장 '신 익희'의 아들 '신'모 소위등도 모두 생도# 2기 출신!{종합#2기생}
'강 창성'은 내종에 '박'통이 비밀 방문, 특단의 파격적 조치를 취해 준다고 했다는데 미처 이루지 못하고, 서거하시는 바람에, '전 두환'에게 앙갚음성(?) 핍박을 당했다고 할 ,,.
그랬었다고는 해도! ,,. '금 뒈쥬ㅣㅇ'롬에 갔던 사실 및 결과론적이기야 하지만 '금 일쎄이'롬의 고용 간첩이던 '금 뒈쥬ㅣㅇ'롬에게로 간 것은 씻지 못할 큰 과오! 더우기 '금 뒈쥬 ㅣㅇ'롬은 실패한 것이거늘! ,,.
이와 또 유사했던 건 '종합# 12기생? 이시던 1979.12.12 사태 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육군총장 '정 승화'대장의 인사조치 발탁으로 경기도 의정부 제26사단장에서 수도경비사령관에 전격 보직되었던 '장 태완' 소장님도 결과론적이지만, '금 뒈쥬ㅣㅇ'로메게 간 것도 역시 결과론적이지만 역사의 죄인! ,,.
다만 旦(단)! '장 태완' 장군님의 【12.1.2 쿠테타와 나】란 저서 초반부에 실린 '장 태완'님의 6.25 동란 시 겪은 얘기는 참말로 교훈적이고도 슬프며, 격한 감정을 유발케 하는 충섬심을 기초로한 순수한 애국심의 발로였다고 봐야만 합니다. ,,. 우수하셨던 분이지만,,. 시대를 잘 못 태어난 ,,.
강원도 금성천 북방 금성군! 수도고지 및 지형 능선 전투! 이 전투에서 '장 태완' 소위가 창안한 수도고지 전투 공격 탈취 성공 후, 중공군으로부터의 역습에 피탈되지 않고 지탱해 내기 위해 창안한 마대 방책! ,,. 간단한 것이지만 당시로는 그 누구도 제시, 실천치 못하던 idea! /// ///////
Viet-Nam 파병 지원 시! ,,. 과거 육군대학 수료 논문에서 '기무사{보안사}' 기능에 관하ㅑㄴ 통.폐합을 주장한 논문 내용! ,,. 이게 문제되어져 요 주의 이눌로 락인,,. 강원도 홍천에서 Viet-Nam 파병 제수도사단 부연대장 요원으로 보직되어 훈련 중! 파병 불가로, 원복될 처지! ,,. 이때 제수도사단장 '채 명신'소장님이 '박'통께 최종 파병 준비 보고를 하실 제 '장 태와' 중령 문제를 거론하였으나, 오히려 '박'통께서 "아니, 그런 옳곧은 바른 말하는 장교가 전쟁터에서 오히려 필요할 것 아니겠오? 원복은 않 되오! 신원 조회 결과에 구애없이 파병시켜 데려가시오!" 강력히 명령, 파병케 되었다 는 일화! {자서전} ,,.
inf247661님의 댓글
inf247661 작성일
수도사단{맹호부대}는 1950.6.25 발발 시, 수도를 경비하던 사단급 부대! 그래서 아라비아 숫자가 없음.
首都師團의 '기갑연대'는 정갑차로 편제되어졌었기에 역시 숫자가 없고 '機甲(기갑)'의 상징인 △을 써서 '제△연대'로 표기하며 第首都師團도 수도를 뜻하는 영문자 CAPITAL의 두문자 C 를 써서 第C師團으로 상황도에 표기함.
지금의 '수도경비사령부'는 1961.5.16 군사 혁명 발발 이후 군사 혁명에 참가, 출동하였었던 '해병대 + 제Ⅵ군단 포병 사령부 + 공수단' 등에서 임시 혼성 조직.편성된 부대들의 후신임. ,,. 아는 체! ,,. ^*^
그러므로 '제수도사단{맹호부대}'는 6.25 발발로 인해 야전군 소속 사단으로 예속 변경되어져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임.
★ '강 창성' 장군님에 대해 다른 내용을 더 아시는 분은 언급해 주오시면 좋겠... 나도 좀 알고,,,. ^*^
gelotin님의 댓글
gelotin 작성일
inf247661 님의 귀하신 설명과 해박하신 논조에 감사드립니다.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
건안하시옵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