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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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12-04-07 00:38 조회7,78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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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벙커로 돌아온 수색 중대원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638고지에 항공폭격과 융단폭격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게 나누고 있을 때였다.
이때, 무전기를 통해 638고지 2차 공격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638고지에 있는 적들의 벙커와 참호에 벙커파괴용 폭격과 융단폭격을 했으니까.
적들도 미리 겁을 집어먹고 도 망 갔을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도망가지 않은 적들은 그 엄청난 위력의 벙커 파괴용 폭탄과 융단폭격에 살아남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오늘 (4월20일) 정오를 기해 638고지를 2차 공격하라는 명령이었다.
이제 타작은 웬만큼 했으니 마지막으로 이삭이나 빨리 주워 오라는 셈이다.
이번 2차 공격에는 제3중대 대신 제2중대와 같이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맹호 기갑연대 제3중대는 638고지를 1차 공격 할 때, 아군 포와 안개 속에서 638고지를 정면으로 돌진해 올라가다가 엄청난 희생과 피해를 입었다.
“겨우 몇 명만 살아남았다!”
남은 병력으로는 도저히 중대 재편성이 어려웠다.
이런 관계로 제1대대 전술기지 위에 있는 제3중대 본부로 철수하였다.
“그 제3중대를 대신하여 제2중대에게 그 임무를 부여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제2중대 전술기지를 경계할 병력이 모자라게 되었다.
앙케 작전 첫 날 적에게 기습공격을 받아 병력손실이 많고 지칠 대로 지쳐 있는 기갑연대 수색중대 제1소대는 제2중대 전술기지 경계 병력으로 열외 시켰다.
그리고 638고지 1차 공격에서 17명의 사상자를 낸 제2중대 1소대원들도 열외 하였다.
수색중대 제2소대와 제3소대, 작전병력과 제2중대 전술기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2소대, 제3소대, 화기소대 등 3개소대병력과 같이 638고지를 다시 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또다시 638고지를 공격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다.
처음 638고지를 1차 공격할 때는 하늘이 도왔거나 운이 좋았던지 같이 공격에 가담했던 2개 중대는 엄청난 피해와 희생이 발생하였다.
하지만,
“수색중대는 천우신조로 피해가 경미하였다!”
수색 중대원들은 구사일생으로 기적처럼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2차 공격에도 과연 수색 중대원들이 1차 공격 때와 같이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하기 어려운 일이라 두려움과 무서운 공포가 긴 터널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중대원 전원이 전의를 상실한 상태가 되어 짜증만 내고 있었다.
상부에서 명령이 하달되어도 수색 중대원들은 불평불만이 가득 찬 얼굴로 닥쳐온 짓궂은 운명에 마냥 괴로워했다.
지금까지 앙케 작전 지휘부가 무리하게 병력만 투입하였다.
아군의 전술기지보다 약 38m가량 높은 전략상 아주 중요한 지점인 638고지에 매복과 경계를 하지 않았다.
때문에,
월맹군들에게 무단으로 점령당하도록 내어준 꼴이 되었다.
본국으로의 철수 준비관계로 어처구니없게도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미군 보급창과 월남군 제2군단의 유일한 보급로인 19번 도로마저도 적에게 차단되었다.
작전상 대단히 중요한 실수를 저지르고 낭패를 본 셈이었다.
월남군 제2군단은 보급이 전면 중단되었다.
월남군들은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앙케 작전 지휘부는 미군의 압력과 상부의 문책이 두려웠다.
때문에,
크게 확대하지 않고 소규모병력과 특공대작전으로 급히 638고지를 탈환하여 19번 도로를 장악하려고 서둘러다.
그러하다보니, 정확한 적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다.
전략과 전술작전도 무시하게 되었다.
아군들의 전술작전과 정보만 노출시킨 꼴이 되었다.
이런 주먹구구식 작전으로 무리하게 병력만 적진에 투입하였다.
때문에, 작전에 실패하였다.
아군은 많은 피해와 희생을 내고 말았다.
작전은 적들에게 이용만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638고지 특공대공격작전도 처음에는 분대단위규모, 중대단위규모 작전에서 급기야는 연대 수색중대 하루 작전으로 지원 요청했다가 실패하였다.
또, 대대규모작전과 연대규모작전으로 전환하였다.
그리고 사단규모작전을 전개하다가 역부족이란 것으로 판단하였다.
결국은 사단규모작전에서 백마부대병력까지 지원받게 되는 주 월사 작전이 되었다.
오늘은 미 항공 폭격기까지 참전하게 되었다.
단일 전투로는 이앙케 전투가 월남전 사상 최대 규모의 작전이 되었던 것이다.
씨 팔!
“처음부터 정확한 첩보와 정보만 미리 입수해서 638고지에 아군 일개 중대 병력만 주둔시켜 방어 작전과 경계만 철저히 했더라면, 월맹군들이 638고지와 19번 도로를 감히 넘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군은 큰 피해와 희생 없이 앙케 전투를 간단히 승리로 끝날 전투였다.
하루아침 때 꺼리도 안 되는 간단한 일이었는데------”
분대장 김 종일 하사가 군사 전략가(?)다운 판단을 내리면서 아쉬워했다.
츄 라이 짜 빈 동 전투에서 청룡 1개 중대가 방어를 하고 있었는데도 월맹군과 베트콩 혼합 1개 연대가 어두운 밤을 이용해 총공격을 하였다.
하지만,
“주 월 한국군 청룡부대가 크게 승리하였다!”
세계전사에서 길이 빛날 업적을 세웠던 전투였다.
반면에 이번 앙케 전투는 월맹군 제3사단 12연대가 638고지와 19번 도로를 완전 장악하여 방어 작전을 하고 있었다.
638고지와 19번 도로 일대를 주 월 한국군이 공격하였다.
그리고 이앙케 전투는 청룡 짜 빈 동 전투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었다.
‘공격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방어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이, 앙케 작전 방어에 실패한 저 지휘관 새끼들은 총살감이라고 분대장 김 종일 하사는 열변을 토하였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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