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무현이 키운 한명숙, 아주 잘~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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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ommonsense1 작성일12-03-22 18:06 조회9,186회 댓글6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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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은 1999년 9월 이재정 당시 성공회대 총장과 김대중의 권유로 '새천년민주당' 창당 작업에 여성 분과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정계에 입문했지만, 같은 해 2월 미국에 있으면서 '참여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할 것을 수락했다가 나중에 참여연대의 중립성을 해칠것 같다는 이유로 그 자리를 그만둔다.
참여연대란 곳은, 겉으로 보기에 좋은 주장들을 하기도 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군사동맹 폐기, 핵우산 정책 폐기, 비전향장기수(남파간첩,빨치산)후원,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묘역 연화공원'이라는 이름의 간첩,빨치산 묘역 조성하고 비석엔 남파간첩을 의사 표기하며 빨치산출신을 애국통일열사로 표현하고 있으며,
비전향장기수송환 송환촉구대회, 한총련 비호, , 김정일 찬양구호인 '수령결사옹위 혈서'를 써 한총련 의장에게 선물, 6.25가 김일성이 아닌 외세의 개입 탓이라고 주장, 미군 없는 한반도 주장, 그리고, UN안보리에 천안함은 북한이 침몰시킨게 아니라고 서한을 보낸 완전 친북단체이다.
이러한 주장들을 하는 참여연대에 자신이 공개적으로 있으면 안되겠으니까 '참여연대의 중립성을 해칠까봐' 라는 꼼수를 부리면서 그만둔 것 뿐이었다.
2001년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면서, 한명숙은 세계 그 어느나라 에도 없고, 김대중의 발상에서 나온 여성부라는 곳의 장관이 되는데, 현재 많은 국민들이 마땅찮아 하는 '호주제폐지'의 1등 공신 역할을 하게된다.
2003년 2월28일 노무현이 집권을 하게되자, 한명숙은 여성부가 아닌 환경문제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환경부 장관이란 것이 되는데, 17대 국회의원에 출마하기위해 이 직위는 사퇴하고, 고양시 일산구 갑선거구에서 당선이 된다. 17대 국회 회기 동안 한명숙은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소속되어 활동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한다.
2006년 3월 24일, 한명숙은 노무현에 의해 이해찬에 이어 국무총리로 임명된는데, 장상이 총리로 지명되었다가 총리서리로 지낸거긴 하지만, 일단, 여성이 총리로 거론 된 것은 장상에 이어 두번째이며 그동안의 전과를 노무현에게 인정 받아선지 총리가 된 것이다. 노무현이야 뒤에서 김대중이 지휘하는 대로 따른 꼭두각시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눈에 들었던 이해찬과 한명숙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해찬 후유증' 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해찬이 있을때 중, 고교를 다닌 학생들은 학교평준화 문제로 대단히 그를 가리켜 욕을 한다. 이해찬이 철저한 친북인간임은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며, 그렇기에 김대중이 뒤에서 눈짓을 하고 노무현이 이해찬을 총리로 임명했던 것이지만, 한명숙을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보면되고, 그렇기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열을 냈던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나. 정치 입문 이전의 행적
한명숙은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 재학중 박성준을 만나 1967년 결혼했지만, 6개월 후인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주석참조)과 관련, 실형을 선고받았었다. 박성준은 1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다음해, 대법원에서 刑이 확정됐다. 당시에, 검찰은 박성준에게는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반공법 위반죄를 적용했는데. 한명숙은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 형을 받았다. 한명숙이 실형을 살지 않게된 상태에서,
남편 박성준이 감방생활 시작서 부터 나중인 1981년에 석방될때까지 13년간 박성준 옥바라지를 하는 와중에 졸업을 하게 되는데, 졸업을 한 후인 1970년엔 이화여자대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있게된다. 그런데, 학생들의 시위를 지원한 것이 문제가 되어 기숙사 사감을 못하게 되자. '한국 크리스천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민주화(?)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1979년, 한명숙은 체제 비판적인 이념서적을 학습,·유포한 혐의로 이우재, 신인령 등 아카데미의 동료 간사들과 함께 구속되어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었는데, 2년 6개월간 감방 생활을 하다가 1981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그의 남편인 박성준은 현재 성공회대학교 NGO 평화학 교수이며 길담서원이란 것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다. 현재의 추한 모습
간추려서 한명숙의 정치에 입문한 후 및 입문하기전 그의 행각을 살펴 보았지만, 그의 이념적 색깔에 더불어서 한명숙에겐 법원에선 무죄로 판결을 내리긴 했지만, 대한통운 사장의 뇌물문제, 한신공영 사장의 뇌물문제 그리고 동생에게 돈세탁을 지능적으로 한 것 같다는 의혹 등등이 따라 다닌 사람이고, 국가 및 조전일보를 상대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면서 고소를 했다가 패한 사람이기도 하다.
현재, 박지원이라는 골수 김대중의 수족을 옆에 최고위원이라고 두고 있는 한명숙에겐 마뜩지 않은 붉은 궤적외에 저렇게 돈과 관련된 추한 일들이 어찌되었거나 스캔들로 사회를 어지럽게 했었는데, 이제 한명숙의 최측근이라는 심 모 라는 자가 어느 사람에게, 한명숙의 재판결과가 잘 나와서 대표가 되면 도움을 줄수 있을 것이라면서 박 모라는 자에게 공천댓가로 2억을 요구했다 해서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한명숙의 측근인 심모라는 자가 11년 10월서 부터 금년 2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서 요구한대로 무려 2억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측근의 입장에서, 공천을 희망한 박 모라는 자에게 받은 2억을 한명숙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가 착복할 수 있을까? 말이 안된다. 이건 한명숙이 다 알거나, 또는 알게될 사실이고, 한명숙의 직접적 지시는 아니었다고 해도 간적적 승인, 묵시적 승인하에 이뤄진 것이므로, 결국, 최종책임에서 한명숙도 자유로울수 없는 것이다. 검찰에게 수사의뢰서 들온것은 16일, 소환조사 착수는 20일 발표는 22일.
통진당이란 곳이 여론조작 문제로 가시방석에 앉아 있으면서 대표직에서 물러나라는 여론의 공세를 받고 있는 상황에, 같은 이념적 색채를 가지고 있는 민통당에서도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인데, 과연 한명숙의 최측근이 심모라는 사람 하나 밖에 없을 것도 아니고, 설사 심모라는 자 하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과연, 저러한 공천을 빌미로한 금품요구가 어느 한 사람에게만 이뤄졌을까? 빙산의 일각이요, 드러난 것이 저것 뿐일 것이지만, 차후로 더 드러날 것이고 당연 더 드러나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명숙에겐 말바꾸기 도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바, 노무현 정권 시절 그리도 열렬히 찬성했던 제주해군기지 건설 및 한미 FTA 협정을 현재 전혀 다른 얼굴로 죽어도 안된다고 하고 있으며, 아무나 국회의원이 되어도 이 나라에 좋다는 것인지, 한때, 순악질여사로 나왔었던 김미화에게도 공천을 준다고 따라다니다가 거절 당하는가 하면, 나꼼수라는 곳에서 막말, 비속어를 마구 쏟아내는 김형민이란 자에게 공천을 주고 있다고 해서 더불어서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이다.
누워서 제 얼굴에 가래침을 열심히 뱉고 있는
붉은색 민통당과 통진당의 행위들이
그대로 효과가 있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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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혁명당사건 [統一革命黨事件]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지하당조직사건.
158명이 검거되어 50명의 구속자를 낸 60년대 최대의 공안사건이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의 발표에 따르면, 「주모급인 김종태(金鍾泰)가 전후 4차례에 걸쳐 북괴 김일성과 면담하고 북괴 대남사업총국장인 허봉학으로부터 지령과 미화 7만 달러, 한화 2,350만원, 일화 50만 엔의 공작금을 받아 가칭 <통일혁명당>을 결성하여 혁신정당으로 위장, 합법화하여 반정부·반미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통혁당사건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65년 11월 초 김종태·김질락·이문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로 무장하고 중앙당의 지도 아래 혁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통일혁명당의 창당을 선언」한 뒤, 각각 위원장·민족해방전선 책임비서·조국해방전선 책임비서로 자임, 지도부를 구성하여 조직 확대에 착수했다.
김질락은 곧 이진영과 신영복을, 이문규는 이재학과 오병철을 포섭, 전선지도부를 구성하고, 이들 전선지도부는 다시 임중빈,김희순·권오창·이종태·노인영·박성준·이영윤 등 학생운동 출신자들로 당소조를 조직, 이들로 하여금 새문화연구회·청년문학가협의회·불교청년회·민족주의연구회·경우회·동학회·기독청년경제복지회·학사주점(60년대 학사회) 등의 서클을 운영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대중활동을 전개토록 했다.
한편, 이러한 조직을 기반으로 통혁당은
△각종 학술연구 서클의 조직
△민족통일전선 구성을 위한 연합전선
△합법·비합법 및 폭력·비폭력 등 각종 전술 연구
△무기고의 설정과 무기획득 및 비축방법 연구
△특수 전술교관요원 양성
△6·8부정선거 반대투쟁, 미국 부통령 험프리
방한반대투쟁 등의 활동을 벌였다.
당국은 통혁당사건을 임자도 간첩단사건 및 서귀포 간첩선 사건과 더불어 남한에 대규모 지하당 조직을 구축하려는 북한 대남전략의 일환으로 규정했다.
common sense.
시사 view
http://cafe.daum.net/sisaview
댓글목록
호랑이울음님의 댓글
호랑이울음 작성일
글내용은 참으로 공감이가며, 한명숙이란 여자의 진면모를 확실하게 깨닷게하는데 100% 만족입니다만
좀, 아쉽다면 제목 : 김대중 노무현이 키운 한명숙 아주 잘한다 ? 와 끈부문에.......중략..그대로 효과가 있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옥에 티일까요 !@
commonsense1님의 댓글
commonsense1 작성일
"누워서 제 얼굴에 가래침을 열심히 뱉고 있는 붉은색 민통당과 통진당의 행위들이 "
그대로 효과가 있기를 충심으로 바란다.
gelotin님의 댓글
gelotin 작성일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하찮은 붉은것들이 국가의 중심에서 무쓴 놈의 배경과 전력으로 기웃거리는지 잘 해석이 되여 있어 이해가 부족한 젊은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자주 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commonsense1님의 댓글
commonsense1 작성일그럴수만 있다면 고맙지요
enhm9163님의 댓글
enhm9163 작성일
붉은 악마의 전력을 잘 요약하여 주셨읍니다. 고맙읍니다.
개인 메모장으로 퍼 가겠읍니다.
commonsense1님의 댓글
commonsense1 작성일부족한 글인데....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