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하는 전우들[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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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12-03-23 00:07 조회8,238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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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하는 전우들
지원중대 106mm 무반동총 탄약고가 엄청난 위력으로 2차 폭발하였다.
소도산 아군 전술기지가 절반가량은 폐허로 변해버린 어수선한 일은 아침이었다.
이때였다.
저쪽 외곽 초소에서 갑자기 “탕! 탕!~”하는 M-16총소리가 두 발 들여왔다.
분대장 김 종일 하사와 권 준 병장은 총소리가 나는 외곽초소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난생 처음으로 앙케 작전에 참전하는 월남 신참인 황 시춘 일병이 하얗게 겁에 질린 모습으로 왼쪽 손으로 오른쪽 손을 움켜쥐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이고, 나 죽네!”
엄마!
“나 좀 살려 줘요!"
비명소리와 함께 초소바닥에서 피가 낭자 한 채 나뒹굴고 있었다.
김 종일 하사는 자신의 러닝셔츠를 찢어 겁에 질려 공포에 떨고 있는 황 일병 상처를 급히 지혈을 시켰다.
"황 일병, 왜 그래!"
‘괜찮아!’ ‘괜찮아’
그는 황 일병을 안심시키기에 바빴다.
권 준 병장은 얼른 벙커로 달려갔다.
중대 위생병에게 황 일병이 총상을 입어다고 말하였다.
손에 피가 낭자하다고 하였다.
빨리 치료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잠이 덜 깬 중대 위생병은 게슴츠레한 눈을 비비대며 정신을 가다듬고는 얼른 구급 대를 챙겼다.
급히 외곽초소로 달려갔다.
압박붕대로 지혈을 시켜 급히 응급조치를 취하였다.
황 일병 본인은 오발사고라고 하였다.
하지만, 위생병인 김 병장이 보기에는 오발사고가 아니었다.
“위생병 그는, 황 일병이 자해한 것 같다고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위생병 김 병장의 보고를 받은 수색중대장도 아무리 생각해도 오발사고로 보기엔 의문점이 너무 많아보였다.
그것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중대원들이 어리석게도 동요하여 똑같은 일을 저지를까 봐 더 큰 걱정이 되었다.
"며칠 전 638고지를 공격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을 때,
바로 옆 중대인 제 3중대에서 겁에 질린 초급장교, 소대장이 M-16소총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쏘아 자해를 하여 106병원으로 후송조치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우리 중대에서도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다니,”
수색중대장 한 종 석 대위는,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황 일병을 시범케이스로 아주 엄하게 다스려 놓아야, 다른 장병들도 다시는 이런 불상사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 고 생각하였다.
“중대장은 황 일병을 혹독하고 무자비하게 문초를 하기 시작했다!”
황 일병!
“솔직하게 말해봐!”
“어떻게 해서 실탄이 발사되어 오발 사고가 났는지 바른대로 말해봐!”
중대장은 고양이가 쥐를 노려보듯 무섭게 황 일병을 노려보았다.
황 일병은 잔뜩 주눅이 들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외곽 초소 안에서 M-16총구를 쥐고 넘어지는 바람에 발사되었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사건의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앞뒤가 맞지 않았다.
“도대체 총구를 어떻게 잡고 넘어졌기에 사격할 때 사용하는 검 지 손가락 한 마디만 날아가고 총알이 두 발이나 발사될 수 있느냐?”고 다그쳤다.
대답이 궁한 황 일병은 이번에는 진술을 번복하였다.
총을 땅에 떨어뜨리는 순간 얼떨결에 총구에 오른쪽 검 지 손가락을 총구에 대는 바람에 실탄이 두 발이 발사되어 맞았다고 횡설수설 하였다.
“바른대로 말 못 해!”
흔들리는 눈동자를 똑 바로 꼬나보며 중대장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황 일병의 M-16소총을 빼앗아 잠금장치 자물쇠를 풀고 황 일병이 보는 앞에서 그가 떨어뜨렸다는 높이에서 땅에다 개머리판으로 몇 번 “탁! 탁!” 쳐보는 재연을 해 보았다.
그러나
“그가 번복한 진술처럼 실탄은 발사되지 않았다!”
이것을 지켜본 황 일병도 M-16소총 노리쇠가 완전히 후퇴되지 않기 때문에 격발장치가 작동되지 않아, 실탄은 발사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모든 것을 단념하였다.
황 일병은 고개를 푹 떨어뜨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중대장님! 살려 주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앙케 패스 전쟁터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서 이 생지옥 같은 여기를 빠져 나가기 위해서 자해를 했다고 실토하였다.
첫 발은 실패하고, 두 번째로 발사된 총알로 자해를 했다고 이실직고했다.
그는, 황 일병이 자해했다는 자백을 듣는 순간,
“저 개 상놈의 새끼 당장 군법에 회부하여 남한산성 육군형무소로 보내 버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려댔다!”
“병신새끼, 머저리 겁쟁이 같은 새끼라고 노발대발 하였다.”
그는 마치 황 일병을 잡아먹기나 할 듯이 노려보며 흥분하였다.
중대장은 격분을 참지 못해 어쩔 줄을 몰라 하였다.
그 무엇보다 죽지 않고 몸 건강히 살아서 귀국하는 것이 그 당시 우리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우리 중대원들의 하나같이 바라는 소원이었다.
때문에 모두들 말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황 일병처럼 어떻게 해서라도 이 생지옥 같은 앙케 패스 전쟁터를 탈출하기 위해 온갖 발버둥을 다 쳐보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해에 대한 고민과 묘안을 한 번 쯤은 다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을 터이다.
황 일병도 순간적으로 정신적 공황에 빠져 어리석게도 자해를 택한 모양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다들 황 일병의 처지를 어느 정도 수긍을 하는 입장이었다.
황 일병이 자해를 했다는 자백에 중대장이 황 일병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흥분하는 것을 보고, 김 영진 병장이 새파랗게 겁에 질려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자신도 죽지 않을 정도로 전상을 입고 후송이나 갔으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놈의 앙케 전투가 몸서리가 쳐 진다고 하였다.
“김 병장!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 아 라,
저기 철조망에 널려있는 시신조각들 좀 봐!”
“며칠 전 수색중대가 여기 소도산 전술기지에 도착할 때만 하더라도, 이곳에서는 이 탄약고가 제일 튼튼하고 안전하다고 하였다.
불안과 공포에 질려있는 수색중대원들에게 마음이 아프다고 위로해 주던 그 전우들이 저렇게 비참하게 전사할 줄은 그 누가 알았겠나?”
“오직 인간이 죽고 사는 운명은 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황 일병처럼 자해를 하고 김 병장 너처럼 경상을 입고 지휘관들의 눈을 속여서 다행히 여기를 벗어난다 할지라도 신만은 속일 수 없을 것이야,
여기를 탈출할 생각은 아예 그만하고 차라리 신에게 살려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훨씬 마음에 안정이 될 것이야”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옛말이 있듯이, 죽을 놈은 이 생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탈출한다 해도 결국 죽을 것이고, 살 놈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권 병장이 체념하듯 말했다.
인간의 심리는 급박한 상황일 때,
모든 운명을 신에게 맡기고 의지하는 것 같았다.
앙케 전투에 참전한 전우들은 오직 살아서 그리운 부모형제와 사랑하는 처자식이 있는 내 조국 대한민국 땅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일념뿐이었다.
기독교인은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불교인은 부처님께 간구하였다.
종교가 없는 전우들은 조상님들께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저마다 이 절박한 생명줄을 이어가기 위해 마음속에 신을 하나씩 모시고 살았다.
권 병장도 조상님과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부디! 살아서 그리운 내 조국, 대한민국 땅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나약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으니, 제발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신에게 수백 번 빌고 또 빌었다.
말 그대로, 앙케 패스 전쟁터는 생지옥과 다름없었다.
제1중대 전술기지 주변과 638고지 주변에는 여기저기에 아군과 적들의 시신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파리 떼와 구더기가 바글거리고, 시신 썩는 고약한 냄새가 온 산천에 진동했다.
모두들 이 생지옥 같은 전쟁터를 탈출하여 살아 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 했다.
중대장이 훈장 준다는 말은 꼭 저승길로 내 모는 저승사자의 목소리로 들렸고, 죽음의 낚시 미끼로 생각되었지 그 따위 훈장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 무엇 보다 죽지 않고 살아만 갈 수 있다면, 중대장이 준다는 훈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알량한 훈장 하나와 귀중한 내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결코 못 되기 때문이었다.
- 계속 -
댓글목록
그건뭐지님의 댓글
그건뭐지 작성일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안케님의 댓글
안케 작성일
그건뭐지님 오늘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