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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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케 작성일12-02-14 00:14 조회9,613회 댓글5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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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며칠째 식사도 거르고 계곡물로 허기진 배를 채워가며 가까스로 목숨만 이어가던 신 상철 상병은 정신이 완전히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다가 히죽히죽 웃기도 하였다. 개울가 바위틈 숲 속에 반드시 드러누워 있었다.
이 모습을 발견한 김 춘주 상병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쩌면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상철이 네가 어떻게 여기에 혼자 누워있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어디 다친 데는 없니?”
“나, 모르겠어?”
“나, 김 춘주야!”
연대군수과에 근무했던 김 춘주 상병이라고 연신 소리치며 아무리 아는 척을 해도 그는 고개만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기 저 붉은 베레모를 쓴 두 놈이 총을 쏘며 자꾸만 이리로 다가오고 있어!” 헛것이 보이는지 횡설수설하였다.
계속 히죽히죽 웃기만 하였다.
그 다정했던 김 춘주 상병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김 상병은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렇게 총명하고 늘 밝은 표정이었던 전우가 갑자기 이처럼 황당하게 정신이 돌아버리게 한 전쟁이 저주스럽게만 했다.
신 상철 상병과 김 춘주 상병은 오 음 리 훈련소에서 만난 파월동기였다.
둘은 공교롭게도 오 음 리 훈련소에서부터 월남에 도착하여 맹호사단사령부의 특명을 받아 기갑연대로 배치되어 약 2주간 교육이 끝나자, 신 상철 상병은 정글만 빡빡 기는 수색, 탐색, 매복 작전 임무가 주된 수색중대에 떨어졌다.
반면에 김 춘주 상병은 운 좋게 남들이 특과라고 부러워하는 연대군수과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이 둘은 시간 날 때마다 연대PX에 들러 고향을 그리는 향수에 젖어 캔 맥주를 마셔가며 서로 남달리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다.
그 들은 피를 나눈 형제처럼 위로하고 다독거리며 전쟁의 공포에서 잠시만이라도 벗어날 수 있었던 다정한 전우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김 춘주 상병이 연대군수과에서 제11중대로 전출명령이 났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일은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월남말로 짜 웅(뇌물)을 하지 않아 그렇게 된 건지?
3개월이 넘게 근무를 하는 동안 아무 잘못도 없는데 뜻밖에도 다른 부대로 전출시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김 춘주 상병은 어쩔 수 없이 연대군수과에서 제11중대로 전출되어 정글을 기지 않아도 되었던 특과병에서 말단소총소대 정글만 빡빡 기는 소총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둘은 이렇게 헤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처참하고 기가 막히는 장소에서 서로 상봉하리라 어찌 상상이나 하였을까?
김 상병은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기진맥진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누워있는 신 상병에게 신속히 자신의 탄띠에 꽂혀 있는 수통을 꺼내어 우선 물부터 먹여주었다.
또, 배낭에서 전투식량(C-레이선) 속에 들어있는 B-1물 (과일통조림)을 꺼내어 깡통따개로 따서 플라스틱스푼으로 연신 떠먹여가면서 신 상병이 제 정신으로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김 상병이 떠먹여주는 B-1물을 아무 말 없이 넙죽넙죽 받아먹던 그는 정신이 좀 들었는지 게슴츠레 초점 잃은 눈망울로 그 때서야 김 상병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며, 여기가 어디냐고 되물었다.
그는 자신 혼자만 내 버려두고 모두 다 가 버리고 없으니까 너무나 무섭고 두렵다고 어린애처럼 굴었다.
그러더니, “여태까지 어디 있다가 왜 이제야 왔느냐?”
마치, 어물전 도마 위에 던져진 생선보다 더 흐린 눈으로 원망스럽게 김 상병을 바라보았다.
또다시 무서운 공포의 악몽에 시달리듯 몸서리를 치며 엉엉 울기 시작했다.
신 상병은 전사한 전우들의 영현수습작전이 시작되면 틀림없이 자신을 구출하러 올 것이라는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자신을 구출하러 오는 전우들이 없었다.
다시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칠흑 같은 어둠이 앙케 협곡에 내려 깔렸다.
그가 품었던 실낱같은 희망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절망과 실망에 젖어들었다.
끝없는 나락으로 한없이 내동댕이치듯 굴러 떨어지는 것 같았다.
심한 불안과 공포에 떨다가 정신이 획 돌아버린 것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산짐승들이 개울가에 물을 먹으러 눈에 파란불을 켜고 모여들고 있었다.
총이 없어 더 무섭고 두려웠다.
엄습해오는 공포와 무서움에 몸서리를 쳤다.
‘이제 이 자리에서 꼼짝없이 죽게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자신을 구출하러 오지 않는 전우들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너무나 무서워 견딜 수가 없다고 하면서 계속 울먹였다.
자꾸만 붉은 베레모를 쓴 두 놈이 죽은 전우들의 영현을 툭툭 차면서 정글화도 벗겨서 신었다.
아군전사자들의 배낭에서 전투식량도 꺼내 먹었다.
적들은 아군의 영현들을 A K-소총으로 쿡쿡 찔러보고 있었다.
붉은 베레모를 쓴 두 놈이 점점 자신의 앞으로 다가왔다.
신 상병은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는 또다시 울먹이고 있을 때였다.
이때, 중대위생병이 다가왔다.
김 상병은 위생병에게 신 상병이 A K-총알이 살짝 스쳐가는 충격에 정신을 잠시 잃었다가 깨어났다고 말했다.
적들이 확인 사살하는 것을 보고는 그 엄청난 충격으로 신 상병이 정신이 약간 이상해진 것 같다고 했다.
지금, 당장 106후송병원으로 후송을 보내야 되지 않겠느냐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대 위생병에게 말했다.
중대위생병은 겉보기에는 멀쩡한데 하였다.
그러면서 휴식과 안정을 취하면 정신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니 며칠만 두고 결과를 지켜본 후에 후송을 결정해야 될 것 같다고 답답한 소리를 했다.
신 상병은 그럴 리 없겠지만,
“이 치열하고 처절한 전쟁터를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인간으로 해서는 안 될 자해하는 장병들과 꾀병 앓는 나이롱환자가 너무 많아 잘못 후송시켰다간 문책당하기 십상이다” 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신 상병은 수색중대소속이라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 못 되니 일단 수색중대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복장 터지는 소리를 해 대었다.
앙케 전투 그 당시에는 106후송병원으로 후송되어 오게 되면, 정말로 적과 싸우다 전상을 당했는지? 아니면 자해인지? 꾀병인지? 나이롱환자인지여부를 따져 옥석을 가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수도 없이 실려 오는 환자들을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영향이 엄청난 역효과를 초래하는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사실이기도 했다.
전투력상실은 물론이고, 장병들의 사기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라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만일, 부정한 방법으로 후송되어 온 환자들이 있으면 곧 바로 남한산성육군형무소로 보낸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면서, 후송되어 온 환자들을 일일이 조사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비일비재하였다.
기갑연대 제3대대 11중대는 수색중대원들의 전사한 영현수습작전과 행방불명된 전우들의 구출작전을 대강 마무리하고, 앙케 고개로 철수하는 제11중대를 따라 중대위생병과 김 춘주 상병이 신 상철 상병을 부축하여 앙케 고개를 거쳐 제1중대 소도산 책임전술기지에 머물고 있는 수색중대원들에게 데려다 주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신 상병은 4월 15일 수색중대전원이 무명고지를 공격하기 위해서 출동하면서도 외상은 가벼워 보이지만 자꾸만 ‘저 붉은 베레모를 쓴 놈들이 ……’
횡설수설하며 히죽히죽 웃는 것이 정신이 온전치 않은 것 같아 작전병력에서 열외(제외)시켰다.
신 상병 그 혼자만 제1중대 전술기지에 남겨놓고 출동했다.
수색중대 신 상병은 전사한 전우들의 영현 속에서 적들의 눈을 교묘하게 피하여 며칠째 계곡물을 마셔가며 천신만고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 왔었다.
하지만 그는, 천신만고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보람도 없이 정신적 공항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정신적 공황에 빠진 신 상병은 결국 고국으로 후송되었다.
고향인 강원도 평창군 두메산골에서 같은 마을에서 자란 순애와 결혼해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러나 그는, 그때 잃어 던 정신이 안타깝게도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받은 엄청난 공포의 충격으로 정신적 공황에 빠져 획 돌아버려 반미치광이가 되다시피 변한 그는, 밭에서 일을 하다가도 산에서 내려오는 등산객들이 쓰고 있는 빨간 모자만 보기만 하면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
‘빨간 베레모’를 쓴 두 놈이 다가오고 있다‘고 기겁을 하였다.
그는 월남에서 했던 그대로 재현하였다.
그때 했던 대로, 개울가로 뒹굴며 기어 내려가서는 바위틈 속에 숨어서 불안과 공포에 오들오들 떠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고 하였다.
결국은 신 상병은 귀국 3년 후,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여왔다.
- 계속 -
댓글목록
오뚜기님의 댓글
오뚜기 작성일
긴 말 필요 없다.
파월때 국가 가 저당한 돈 농협 이자 쳐서 빨리 주어라
안케님의 댓글
안케 작성일
오뚜기님 댓글 감사합니다.
이렇게 파월장병들의 입장을 이해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내 무궁한 행운을 기원합니다.
송석참숱님의 댓글
송석참숱 작성일
얼굴도 모르고 처음듣는 이름이지만 가장 큰 국민의 의무를 수행하신 신상병님의 명복을 빌며 삼가 유족들의 행운을 축원합니다.
우리군은 625도 월남전도 겪으며 장족의 성장을 해온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아무리 의무징병이라 해도 군의 장기적인 유지발전을 위해 복무한 장병 개개인을 좀더 따듯하게 보살피는 보훈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625참전 생존노병, 월남전 고엽제로 신음하는 장병과 전장에서 정신이 이상생긴 제대장병들에 대해서 그헣다.
제대전후 좀더 따듯하게 사회적응 훈련과 치료에 국가와 군이 솔선해야 한다. 재원? 그건 쓸데없는 옥상옥 똥별 몇개만
잘치워도 충분할 것이다.
예비군 훈련장에 군병원이 파견나가 적응여부 이상유무 체크를 히가니 군범무관이 순회하며 필요한 법률구제를
제공한다면 사회도 밝아지고 군대기피도 줄일수 있고 현역들의 사기진작에도 크게 기여 할 것이다.
송석참숱님의 댓글
송석참숱 작성일
사단장님 약속하신 보급조치는 아찌되엇는지요?
아직도 않온 것은 아닐 터이고 온 이야기는 못읽었습니다. 지나쳤다면 몇회에 있는지요?
안케님의 댓글
안케 작성일
송석참숱님 안녕하세요?
6. 25참전 노병과 월남 참전 용사들의 처치를 이해해 주시니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특히! 신 상병처럼 전쟁스트레스 중후군에 걸린 전우들은 보훈혜택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불쌍합니다.
그리고 사단장님께서 약속하신 보급조치는 40회에 연재 될 예정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