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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이긴 심미자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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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22 19:34 조회3,97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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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이긴 심미자 여인

                                             심미자, 대한민국 최고 훈장 받아야!


33인 무궁화할머니회 심미자 회장은 국가도 이기지 못한 싸움에서 일본을 이긴 인간승리자이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 때 한국의 처녀들을 강제 납치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한국정부나 국민은 그런 사실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한국정부나 국민의 누구도 일본의 주장을 사실에 입각하여 꺾어내지 못한채, 입씨름만 했다.

그런데! 오직 한 사람 심미자 회장만이 일본의 주장을 꺾었다. 일본 법원이 그녀를 “일본에 의해 강제납치당한 처녀”라는 판결을 내렸고, 일본 정부가 할머니에게 같은 취지의 편지까지 보낸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이제까지 부정해 오던 “강제납치”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는 대한민국의 승리요, 역사에 남을 엄청난 기록인 것이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아야 한다. 대통령은 그녀에게 대한민국 최고의 훈장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2005.4.15) 다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그녀는 정대협으로부터 “미친년”이라는 욕을 들었다 한다. 정대협과 심할머니는 적대관계에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앞에 일본을 글복시킨 이 할머니에 훈장을 추천하지는 못할망정, 어째서 정대협은 이 할머니를 미친여자라며 백안시할까? 그 승리가 정대협에는 어째서 못마땅한 것인가?  



                                                그녀의 공로는 왜 위대한가?     


한국정부에 등록돼 있는 128명의 ‘위안부’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위안부로 등록되었는가?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아무에게도 없다고 한다. 단지 인터뷰를 통해 정황적인 판단에 의해 등록되었다 한다. 이러한 증명방법이 일본에서도 통할까? 절대 아니다. 그러면 심미자 회장은 어떤 방법으로 일본 법정에서 이를 증명했는가? 오직 그녀의 기억뿐이다. 일본은 그녀의 기억을 믿어 주었는가? 믿어주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증명했는가? 일본인 변호사들이 심미자 회장의 기억을 기록하고, 그 기록에 따라 현지를 방문하기도 하고, 군대 자료를 찾아내서 뒷받침을 했다.

예를 들면 심미자 회장이 맨 처음 일본으로 납치돼 갔을 때, 그 부대명이 오사까에 있는 ‘기꾸부대’ ‘다이스부대’ ‘네이스부대’였다 한다. 당시 그 지역에 갈대가 무성했고, 냇물과 바다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구술하면 일본 변호사들이 당시에 그 곳에 살았던 노인들을 찾아내 당시의 지형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군대 자료를 찾아 이런 부대들이 당시에 그 지역 어느 곳에 있었는지를 확인해 주었다. 그녀가 6년간 돌아다녔던 곳들을 모두 찾아내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당시 일본군 자료를 찾아내 확인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심회장의 승리는 이러한 방법에 의해 이룩된 것이다.

심회장의 승리를 가능하게 해준 사람들은 한국인인가, 일본인인가? 일본인들이었다. 일본 변호사들이 장장 14년에 걸쳐 심회장에게 승리를 안겨준 것이다. 심회장이 일본에 가면 변호사들이 차를 가지고 공항에 나왔고, 그 이후로부터의 모든 비용을 일본인들이 부담했다. 일본인들이 이러한 노력을 제공하는 동안 한국에서는 무엇을 했는가? 누구도 그녀을 도와주지 않았다. 위안부를 보듬겠다는 뜻으로 태어난 ‘정대협’은 무엇을 했는가? 그녀를 미친 여자로 부르고 그녀와 감정싸움을 했다.


심회장을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도와준 일본인 변호사들은 어째서 일본을 심회장이라는 일개 한국인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게 했는가?  


일본이면 무조건 미워하는 한국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를 ‘을사오적’으로까지 매도한 언론들이 있다, 일본의 언론이 한국 언론들 같다면 심 회장을 도와준 6명의 변호사들은 그야말로 ‘일본을 배신한 매국노’라며 온갖 종류의 돌을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변호사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진실한 사람들이라며 갈채를 받았다 한다.    

1961년 한 해에 위안부라고 등록한 할머니는 61명, 거기에서 심회장은 회장으로  선출됐다. 그녀는 전국에 산재한 60명을 일일히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록을 했다 한다. 61명중 80%는 가난해서 스스로 몸을 판 '종군위안부'였고, 20% 정도가 억울한 규수 "일본군위안부'였다 한다. 80:20이라는 통계는 아주 정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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