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데 약은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나 많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유독 많이 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고종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국가를 팔아먹은 사람은 이완용이 아니라 고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을 살해했을 때 고종은 “변장의 끔찍한 변고”라 했고, 이등 박문에 대해서는 “선지자로서 후지자를 깨우치니 진실로 현자로다!”는 극찬을 했고, 극진한 문구의 조문까지 보냈다 한다.
1909년 11월4일, 도쿄 하비야 공원에서 이등 박문의 국장이 열렸다. 고종은 거기에 10만원 조의금과 함께 ‘문충공 영전에 바치노라’는 제하에 조문을 낭독하게 했다.
이등박문에게 ‘문총공’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장충단 언덕에 박문사라는 절을 짓고, 경희궁 정문인 홍화문을 뜯어 옮기면서 “은혜는 친척보다 낫고 의지함이 깊고 두터워 대궐에는 근심이 풀렸네.”라며 찬양까지 했다 한다.
왕실의 이은공은 일본 육군 중장이었다,
왕과 왕실이 이러한데 하물며 주권이 없던 민초들은 어떠했겠는가?
조선조로부터 짓밟혀 살고, 수탈만 당해온 백성들이 무엇 때문에 조선왕보다 더 잘해주는 일본을 상대로 목숨을 내놓고 싸우려 했겠는가?
당시의 주권은 고종에게만 있었고, 백성들에게는 없었다. 그냥 민들레 꽃씨처럼 조선 땅에 뿌려졌기 때문에 조선에서 말이 통하는 이웃과 오손도손 살아왔던 인간 풀(민초)에 불과했는데, 여기에 무슨 친일의 잣대를 들이대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고종이 지금의 노무현처럼 적장에 충성하는 판에 이완용이 을사보호조약에 서명하지 않는다 하여 임금인 고종이 버린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지 않았을까?
이완용이야 말로 인도의 ‘간디’처럼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고 단 한명의 생명이라도 더 건지려 노력한 사람이 아닐까?
민비, 대원군, 고종을 포함한 왕실의 인간들이 경복궁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뒤엉켜 있는 동안 경복궁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문맹률 98%의 민초들은 조선왕조의 수탈행위로부터 해방이 됐던 것이 아니었을까?
노무현이 김정일에 충성하듯이, 고종황제 역시 일본 천황에 충성하였다.
옛날과 지금이 다른 것은 조선인에게는 주권이 없었지만 지금의 한국인들에게는 주권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무늬상으로는 주권을 가진 왕들이지만 모두가 눈먼 왕들뿐이고, 밟아도 밟아도 벌레만큼의 반작용이 없다는 데 있다.
친일파를 청산하자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시대에 따라 먼저 변장하여 남보다 잘 사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다.
지금은 좌익-빨갱이들이 정권을 잡자 더 잘 살기 위해 군력 앞에 줄을 서 있지만, 만일 이들이 일제 시대를 살았다면 헌병 오장이나 밀고자들이 됐을 것이고, 6.25 시대를 살았다면 완장 차고 인민군 앞잡이가 되어 “저 왼쪽에 있는 놈도 친일파, 저 오른 쪽에 있는 놈도 친일파” 하면서 규수를 겁탈하는 등 온갖 행패를 다 부렸을 것이다.
‘위수김동’(위대한수령김일성동지)을 외쳐온 386 주사파들, 그들이 쥐구멍을 찾을 날이 매우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