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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친일파는 고종과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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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11-22 19:22 조회3,7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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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친일파는 고종과 김대중


                                            안중근에 욕하고, 이등박문에 헌시 바친 고종


1907년 고종황제가 헤이그 밀사 사건으로 일본에 의해 강제퇴임당하고, 11세의 영친왕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일본 황녀인 이방자 여사와 정략결혼을 했다. 이로써 사실상 조선왕실은 일본의 보호 하에 있는 식객들의 처지로 위상이 바뀌게 됐다.

안중근은 1879년 황해도 해주의 부잣집 양반가에서 태어났고, 김구의 영향을 받아 무력만이 국가를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가 31세 되던 해인 1909년 10월 26일 아침 7시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태운 기차가 하얼빈 역으로 들어섰을 때 그는 이등박문을 저격했다.

실권을 빼앗긴 채, 의식주에 대한 일본의 대접만을 받고 있던 고종은 안중근의 이 저격사건에 대해 일본에 아부하기에 바빴다.  

안중근에 대해서는  “변장의 끔찍한 변고”라 했고,

이등박문에 대해서는 “선지자로서 후지자를 깨우치니 진실로 현자로다!” 극찬을 했다.

1909년 11월4일, 도쿄 하비야 공원에서 이등 박문의 국장이 열렸다. 고종은 거기에 10만원 조의금과 함께 ‘문충공 영전에 바치노라’는 제하에 조문을 낭독하게 했다.

이등박문에게 ‘문총공’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장충단 언덕에 박문사라는 절을 짓고, 경희궁 정문인 홍화문을 뜯어 옮기면서 “은혜는 친척보다 낫고 의지함이 깊고 두터워 대궐에는 근심이 풀렸네.”라며 찬양까지 했다 한다.

왕실의 이은공은 일본 육군 중장이었다,

당시 조정은 세 갈래로 갈라졌다. 청나라 파, 일본 파, 러시아 파 들이었다, 어느 나라가 강한 나라냐에 대한 싸움인 것이다. 청나라가 강하니 청나라에 붙어야 한다는 사람들(민비파)이 있었고, 이완용처럼 일본이 가장 강한 나라이니 일본에 붙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후 일본은 청일전쟁(1894)과 러일전쟁(1904)을 통해 두 나라에 모두 이겼다.

이후의 대세는 일본이었고, 개화파인 이완용 등의 주장(일본이 러시아나 중국보다 강하다)이 맞았던 것이다.

당시 조정은 국권의 자존심을 찾기 위한 의논을 하는 곳이 아니라, 누구에게 붙어야 왕실이 살 수 있느냐에 대한 싸움들로 날을 보내는 곳이었다.  

이미 기울어져 있는 나라, 이완용이 버틴다고 해서 바로 설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는 너무나 분석을 하지 않는다.

“개인의 힘으로는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이 말을 만고의 진리다.

조선 시스템이 일본 시스템에 패한 것이지, 이완용이라는 개인이 국가를 일본에 팔아먹은 것이 아닌 것이다.      


한국기업 해외로 몰아내고, 그 자리에 일본기업 불러들인 노무현이 최고의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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