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앞서 감상한 바와 같이, 우리는 지만원의 신의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런식으로까지 '한국논단' 류의 세력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에 영합하 는 것엔 결코 동의하기 어렵다. 시스템이란 인간과 완전 분리되어 별개의 것으 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안에 따라 과거청산도 필요한 것이지 무작 정 과거를 껴안자고 그러면 어쩌자는 건가.
그리고 지만원이 그로부터 3년후 '세계일보' 99년 3월 13일자에 쓴 '무기구매 계획 완전 공개를' 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좀 다른 말을 한다는것도 주목할 필 요가 있겠다.
"율곡사업(군전력증강사업) 에는 해마다 4조원 이상의 돈이 투입된다. 방대한 예산규모에 비해 이를 관리하는 메카니즘은 가히 목가적이다. 이번에 유출됐다 는 '무기구매계획'은 일명 쇼핑 리스트라 불린다. ...... 시스템적으로 보면 장교 들은 앉아서 도장을 찍어주고 오파상들이 문서를 들고 뛰는 격이다. 그래서 율 곡사업의 형식상의 주체는 군이지만 실질적인 주체는 업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군기밀이란 단지 정경유착을 위한 방패막이인 셈이다. 쇼핑리스트는 '숨기고 싶은 비밀' 이지 '안보상의 비밀' 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미국처럼 쇼핑리스트를 처음 단계부터 완전 공개하고 율곡절차를 혁신해야 할 것이다. "
언론 플레이는 프리랜서 지식인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딜레마는 아니다. 조 금 더 신중하게 대응하면 될 것이다. 오히려 지만원이 안고 있는 딜레마는 그가 시스템 밖에서 시스템화를 외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점에 있는 게 아닐까? 딜레마라는게 별게 아니다. 그는 시스템 안에선 지금과 같은 발언을 할 수 없다 그가 4성 장군이 되어 마땅한 능력과 비전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령으로 예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시스템화를 외쳤다는 이유 때문이 아닌가.
우리 사회는 여전히 문화적으로는 권위주의 체제다. 권위주의 체제 하에선 밖 에선 아무리 떠들어도 안에선 꿈적도 않는다. 그렇다고 안에 들어갈 길이 열려 있는 것도 아니다. 창의력과 용기를 거세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이건 지만원의 딜레마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딜레마인 것이다. 물론 그런 딜레마가 있다고 해 서 시스템화를 역설하는 주장이 폄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스템화가 필요 하다는 인식조차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우리 상황에선 지만원의 전도사 역할은 매우 소중하거니와 예찬받아 마땅하다.
다만 나는 지만원이 자신이 역설하는 시스템화를 자신의 사고와 전략에도 적 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게 하는데 에 있어서 일의 우선순위를 따지고 누가 더 큰 적(敵)인가 하는점을 고려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에대해서조차 '용공'운운하는 무리들이 득실대는 한 국사회에서 지만원이 주장하는 군축에 대해 더 호의적이거나 덜 적대적인 세력 이 누구일 것인지 그 점을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비판에도 우선순위와 경중 을 가리는 시스템적 사고가 필요하다. 그건 앞으로 지만원의 숙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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